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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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전설(海東傳說)8 (최종회) 전설은 시작되고

기사입력 2007.02.27 04:28 / 기사수정 2007.02.27 04:28

김종수 기자

글: 김종수/그림: 이영화 화백




"비켜! 너희들이 감당할 상대가 아니야!"

급히 최정열이 소리를 질렀다.

"잘 아는군. 그렇다면 가만히 있는게 고통을 줄이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겠지?"

삿갓에 가려진 하청의 눈에서 불꽃이 일어나고 있었다.

'……'

최정열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고있었다. 하청은 저잣거리를 통 털어서도 가장 뛰어난 칼잡이로, 자신이 주먹으로 상대할 적수가 아니었다. 막힌 공간인지라 도망을 간다는 것도 사실상 힘들었다.
대기실 안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였다.

"그만둬."

뒤쪽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하청이 움찔하며 동작을 멈추었다.

"혀…형님?"

목소리를 내뱉은 이는 다름 아닌 왕정국이었다.

"농구가 그렇게도 좋으냐?"

최정열을 노려보며 왕정국이 물었다. 부릅떠서인지 안으로 푹 들어간 눈이 어느 정도 밖으로 돌출 되어 있었다.

"재…재미있습니다."

떨리는 음성으로 최정열이 대답했다.

"재미있다…? 허허…저잣거리를 종횡 하는 것보다도 재미있다는 그 말이야?"

"……"

"하기야, 그러니까 계속해서 재미없는 소년원에 늘어붙어 있는 것이겠지."

"형님…시간이 없습니다."

왕정국을 쳐다보며 다급한 음성으로 하청이 재촉했다. 이어 왕정국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돌아가자."

"예?"

"귀가 먹었냐? 돌아가자니까!"

붉어진 얼굴로 왕정국이 소리치자 하청은 이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

최정열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왕정국을 쳐다보았다.

"계속해봐라. 농구라는 것, 오늘 보니 꽤 재미있는 것 같더라. 내가봐도."

말을 마친 왕정국은 성큼성큼 대기실을 나가버렸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흘러 다시 4년이 지났다.
저잣거리의 한쪽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리고있었다.

"우왓! 드…드디어 시작되었구나."

"이번에는 잘 될 수 있을까? 중화국(中和國)이나 양국(洋國)을 상대로…?"

"모르지,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영웅이 탄생할지. 허신같은 선수가 세 명만 나와도 해볼 만 할텐데…"

"에휴…그렇게만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벽 쪽에 붙은 커다란 공고문이었다. 굵은 글씨로 선명하게 적혀있는 글씨,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10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천하농구대전이 일년 후 중화국에서 열린 것이다. 이에 본 해동국 황실에서는 참가할 대표선수들을  직접 선발한다. 해동국을 대표할 자신이 있는 젊은이들은 일년간 부단한 수련을 쌓길 바란다.'

서울현은 물론이거니와 전주현, 정읍현, 익산현, 부산현 등등…곳곳은 앞으로 열릴 천하농구대전 얘기로 굉장히 시끄러웠다.

"……"

한쪽 구석에서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이 하나있었다. 다름 아닌 정차룡이었다. 이제 어느덧 그의 나이도 십구세, 실력만 있다면 충분히 대회참가가 가능한 나이였다.

'바…반드시 해낸다.'

주먹을 불끈 쥐어본 정차룡은 걸음을 옮겨 자신의 집, 뒤쪽 공터로 걸어나갔다.

 


"예? 그게 무슨 소리에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니요?"

"무슨 소리는 무슨 소리야, 임마. 말 그대로지."

정차룡의 물음에 박현수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꾸했다.

"저…저는 그렇게 뛰어나지 못해요."

"호오…그래도 주제는 아는구나? 그 정도만 해도 크게 성장한 것이지."

4년 동안 정차룡은 엄청난 수련을 쌓아왔다. 매일매일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농구공을 던지고, 물 속에서 방향전환연습을 하는 등 박현수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완전히 다 소화해냈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천재 급 실력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예전의 정차룡과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엉뚱한 소리하지 말고, 어서 수련해요. 천하농구대전이 일년밖에 남지 않았단 말이에요."

현재 정차룡의 실력으로 조수철이나 기타 다른 지역의 천재 급들과 실력을 겨룬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것을 스스로도 너무 잘 아는 정차룡인지라 박현수의 말은 청천벽력같이 들려졌다.

"난 한번 말한 것은 다시 주워 담지 않는다. 다시 말하겠지만 난 더 이상 널 가르칠 수 없어."

"아니, 그럼 어쩌라고요? 남은 일년동안 손가락이나 빨고있으라고요?"

"이 녀석이! 말버릇하고는…임마! 사부한테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아…몰라요. 몰라, 몰라! 한번 가르쳐 준다고 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요."

"그래, 안 그래도 그렇게 할거야. 누가 뭐래?"

"……?"

"너 뭔가 착각하고 있나본데, 내가 널 더 이상 가르칠게 없다고 했지, 널 놀게 놓아둔다고는 안 했다."

"그…그게 무슨 말…?"

그제 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정차룡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기에 적힌 대로만 찾아가라. 그러면 널 가르쳐줄 사부들이 떼거리로 몰려있을 것이다."

"떼…떼거리요?"

양피지조각하나를 불쑥 내밀며 말을 건내는 박현수가 정차룡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령님께 말씀을 내가 잘 전하려니까 그런 염려하지 말고, 당장 떠나."

"아닌 밤중에 홍두께도 아니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하라면 할 것이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결국 정차룡은 박현수에게 떠밀리다시피 해서 길을 떠나야만했다. 그리고 물어 물어 닷새만에 문제의 마을에 찾아온 순간…

'……'

정차룡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크흐흐흐…네놈이 그 영감쟁이가 보낸 애송이냐?"

"뭘 그렇게 우두커니 서있어, 앞으로 일년동안 같이 지낼 사부들한테 인사 올려야지."

다 쓰러져 가는 집에, 냄새나고 꾀죄죄한 모습들의 사내 십 여명…하지만 정작 이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외팔이, 애꾸눈, 절름발이, 심지어는 앉은뱅이에 장님까지…멀쩡한 인간이라고는 한 명도 찾아보기 힘든 모습들이었다. 구태여 공통점을 꼽아보라면 모두들 하나같이 손에 농구공을 쥐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킬킬킬…사람이라는 것은 말이야. 원래 한군데가 부실하면 나머지부분이 극도로 발달하게 되어있지. 네놈은 앞으로 일년동안 우리모두의 이런 것을 물려 받아야할 것이야."

'이런 망할 영감탱이, 어쩌자고 나를 이런 곳에……'

오싹한 느낌이 전신에 휘몰아져옴에 정차룡의 얼굴 색은 허옇게 질려가고 있었다.

 

 

백호산(白虎山).
19년 전 무등이라는 법호를 가진 노승이 여섯 명의 영웅탄생을 예언한 바로 그곳이다.

휘이이잉…
언제나처럼 이곳의 정상은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 한 명의 젊은 중이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있었는지, 온몸에 눈이 수북히 쌓여있는 모습은 사뭇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혜월…
젊은 중의 법명이었다.

"이제 스님의 유언을 쫓아 속세로 내려갈 때가 되었다."

낮은 중얼거림과 함께 혜월이 감았던 눈을 떴다.
혜월. 그는 다름 아닌 19년 전 무등과 함께 이산에 올랐던 동자승 아소였다. 무등은 십년 전 입적했고, 그를 따랐던 아소 아니 혜월은 유언대로 백호산에 머물며 농구에 대한 각종 서적을 탐독했다. 때문에 현재 혜월의 머릿속에는 온갖 농구의 전략, 전술이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이제 일년후면 전설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혜월이 몸을 일으키자 온몸에 쌓였던 눈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길었다. 정말 길었다."

형형한 안광을 번뜩이며 혜월은 성큼성큼 백호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더더욱 거칠어진 눈보라만이 혜월을 길동무해 주고 있었다.

[끝]

※ 본 작품은 프로농구잡지 월간 '점프볼'을 통해 연재된 소설입니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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