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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엔 보이지도 않았다"…'헤어드라이어 호통' 퍼거슨의 감춰진 리더십

기사입력 2024.02.12 19:48 / 기사수정 2024.02.12 19:48

이태승 기자


(엑스포츠뉴스 이태승 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지휘봉을 27년간 잡으면서 명장으로 군림했던 알렉스 퍼거슨 경은 어떤 리더십을 보였을까.

맨유 주장직을 5년간 역임했으며 퍼거슨 수제자로 널리 알려진 개리 네빌은 퍼거슨이 어떻게 팀을 다뤘는지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8일(한국시간) 잉글랜드 축구에 큰 족적을 남긴 여러 전·현직 선수들과 함께 축구 전문 팟캐스트 '스틱 투 풋볼'에서 감독의 역할과 처신에 대해서 의견을 교류했다. 해당 팟캐스트에는 네빌의 맨유 시절 동료 로이 킨, 리버풀의 레전드 수비수 제이미 캐러거, 아스널의 명망 높은 전 공격수 이언 라이트가 함께했다.

네빌은 "퍼거슨이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맨유를 맡으며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해왔다"고 운을 뗀 뒤 "퍼거슨은 주중에 훈련장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선수들은 그의 목소리를 (경기가 없는 날엔) 거의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또 "퍼거슨이 선수들에게 강압적으로 '이거 해라', '저거 해라'란 식으로 하지 않았다. 말을 걸땐 '얘야'라는 식으로 말을 걸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이는 퍼거슨이 속칭 '헤어드라이어'라고 불리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선수들에게 불같은 지시를 내리는 모습과 상반된다.

팀과 감독 위에 선수는 없다고 천명하며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이는 가차없이 내친 퍼거슨이어서 네빌의 회고는 더욱 놀랍다.

그러나 퍼거슨은 매우 영리한 감독이었다. 그가 이러한 방침을 고수한 이유는 선수들의 멘털 관리와 자신의 카리스마를 강화하기 위해서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네빌은 "퍼거슨은 조용히 수석코치를 3년에서 4년마다 바꿨다. 이는 계속 똑같은 목소리 듣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했다.

즉 퍼거슨이 훈련장을 비롯해 경기 당일이 아닌 날 선수들에게 개입하지 않은 것은 똑같은 목소리를 일주일 내내 듣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다. 만약 일주일 내내 똑같은 사람이 잔소리를 퍼붓는다면 보통 지쳐버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역학을 정확히 꿰뚫은 퍼거슨은 선수들이 자신으로부터 매일 같이 잔소리 듣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물론, 경기장에서만큼은 불호령을 더욱 강화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연유로 수석코치도 주기적으로 바꿔가며 선수들의 멘털을 세심하게 관리했다는 점 또한 깨달을 수 있다. 네빌은 "몇몇 감독들은 훈련장에서도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내리고 경기장에 들어서도 소리를 지른다"며 생각만해도 지친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캐러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활약할 당시 감독을 맡았던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나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 등 리버풀을 지휘한 외국인 사령탑들은 퍼거슨과 판이한 리더십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외국인 감독들은 선수단을 관리하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을 직접 가르치는 감독으로 활약했다"며 각각 프랑스와 스페인 출신인 울리에와 베니테즈를 언급한 뒤 "나는 훈련장에 들어섰는데 감독이 안보이면 정말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리버풀의 감독을 맡고 있는 위르겐 클롭 또한 훈련장에 매번 얼굴을 비추는 적극적인 감독이다. 이러한 모습은 대개 외국 출신 감독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킨은 "구단 수뇌부는 감독이 직접 선수들 이끄는 모습을 보고 싶을 것"이라며 외국 감독이 직접 훈련장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구단 상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아무리 해외서 뛰어난 실적을 거둔 감독이더라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를 낼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울리에, 베니테스, 클롭 모두 리버풀을 맡기 전까지 프리미어리그 무대서 검증받은 바 없었다.




한편 네빌은 퍼거슨이 경기 당일에도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을 보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킨 또한 맨유의 주장이었으니 알 것이다. 퍼거슨은 경기날이 되면 선수들 라커룸 앞에 서서 심판실과 상대팀 라커룸으로 연결된 복도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다"며 퍼거슨이 상대팀과 심판에게 압박감을 심어줬다고 발언했다.

그는 "매 경기마다 퍼거슨은 라커룸 앞에 서서 팀 선수들과 모두 악수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복도 너머까지 응시하며 심판실과 상대팀에 부담을 안겨줬다"고 전했다.

캐러거 또한 이에 맞장구를 치며 "안필드(리버풀의 홈구장)에서 맨유와 경기를 치른 적이 있는데 안필드는 (선수들이 입장하는) 터널이 매우 좁다"며 "그 너머에 서있던 매우 거대한 존재를 느낀 적이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퍼거슨은 맨유서 26시즌간 지휘봉을 잡고 프리미어리그 13번 우승을 견인한 역대 최고의 명장 중 하나다. 그는 감독이 전술을 짜고 훈련을 관리한다는 원초적인 개념의 감독에서 탈피해 라커룸을 장악하는 맹장으로서 맨유 선수단을 완벽히 통제했고 구단의 이적 정책에도 깊숙히 관여하기도 했다.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손꼽히는 퍼거슨의 일화가 또다시 세상에 공개되며 그의 지도력에 대한 평가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승 기자 taseau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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