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오승현 기자) 해외 시상식을 휩쓴 스티븐 연의 '성난 사람들'과 윤여정의 '미나리'. 두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피콕 씨어터에서 '제75회 에미상(Emmy Awards)'이 개최됐다. 이번 시상식은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는데,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BEEF, 감독 이성진)이 상을 휩쓸었기 때문.
'성난 사람들'은 에미상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Limited Or Anthology Series Or Movie) 작품상, 감독상, 작가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캐스팅상, 의상상, 편집상을 모두 수상하며 '8관왕' 영예를 거머쥐었다.
뿐만 아니라 골든글로브 시리즈 부문에서도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석권했고 크리틱스 초이스에서도 4관왕을 차지했다.
10부작으로 구성된 '성난 사람들'은 지난해 4월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해당 작품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큰 돌풍을 일으켰다. 공개 직후 시청시간 10위권에 5주 연속 포함될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끈 것.
한국계 미국인인 감독과 배우가 뭉친 '성난 사람들'이 대체 왜 주목을 받았을까.
'성난 사람들'은 한국계 미국인 대니(스티븐 연)의 이야기를 담는다. 대니는 금전적인 문제로 부모님을 한국에 다시 보내고, 돈을 벌기 위해 허덕이며 동생까지 부양하는 인물로 에이미(앨리 웡)과 슈퍼마켓 앞에서 사고로 마주치며 시작되는 일들을 담는다.
이성진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성난 사람들' 곳곳에 담아뒀다. 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특별 세션 연사를 통해 한국 이름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던 경험담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성진 감독은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창피했었다고 고백하며 학교를 다닐 땐 영어로 된 별칭 '소니'라는 이름을 사용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감독은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을 보고 결심했다. 그는 "미국인은 봉준호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좋은 작품을 만들면 내 이름을 듣고 미국인이 더는 웃지 않을 것"이라며 '성난 사람들'을 이성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와 출격했다.
그리고 시상식에서 이성진은 정확한 발음으로 호명됐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한국인 이민자의 삶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고, 빛을 발했다.
이성진 감독은 작품상을 수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극 중 극단적 선택을 하고싶어하는 충동을 느끼는 장면들은 사실 제 모습들이었다. 이 쇼를 좋아해주시고 개인적인 고통을 투영해주셔서 감사하다. 제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는 느낌이었다"
최근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미국의 콘텐츠 시장은 '다양성', '소수자' 등의 주제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앞서 주목받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오스카에서 7관왕을 달성하며 미국 주류 사회가 이민자, 교포, 교포 2세 등에게 관심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다양한 이민자 콘텐츠가 인기를 끈 결과 많은 시청자들은 '성난 사람들'을 아시아계 사람들, 동양인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코미디 콘텐츠로 받아들이고 즐기기까지에 이르렀다.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인종을 특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저 불합리함도 있고 차별도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진 분노에 공감하며 즐겼다.
OTT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Apple TV+ 오리지널 '파친코'도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을 그려냈고, '오징어게임' 못지 않은 화제성으로 이용자들에게 일제강점기 역사와 한국의 한을 접하며 신선함을 안겼다. 다른 문화권의 시청자들은 '파친코'를 동양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서사 깊은 콘텐츠로 받아들였다.
사실 윤여정에게 '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타이틀을 안겼던 '미나리'(2021, 정이삭 감독)가 한국 이민자 서사가 주목받고 있음을 알린 시작이 됐다.
'미나리'는 한국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표현하며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해당 영화는 골든글로브 후보로 올랐던 당시에는 콘텐츠가 한국어로 진행된다는 이유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만 올랐고, 아시아계 작품 차별 논란까지 불러 일으키며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에 주요 시상식들은 동양인을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짚으며 이를 비판하는 여러 목소리들을 인식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지 않은 제81회 골든글로브에서 '성난 사람들'이 큰 활약을 펼치게 됐다.
이는 지속적인 소수 이민자 콘텐츠를 향한 관심과, 이를 끊임없이 제작해 낸 제작자들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의 색이 제대로 묻은 콘텐츠도 인종·언어도 상관없이 오로지 서사가 주는 감정만으로 떨림을 줄 수 있음을 입증한 시대를 만든 것.
이것은 모든 글로벌 사회가 추구했던 다양성이 있는 세상이고, 소수자·이민자 콘텐츠들이 매번 주목을 받을 수 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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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현 기자 ohsh1113@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