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도쿄, 유준상 기자) 대회의 규모를 떠나서 '한일전'은 늘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그만큼 한일전에서 선발 중책을 맡는다는 건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에는 KBO리그 좌완 에이스 계보를 이어가야 하는 '3년 차 투수' 이의리가 책임감을 떠안았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야구 대표팀은 17일 오후 7시 일본 도쿄돔에서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23 일본과의 예선 2차전을 치른다. 성인 대표팀이 일본과 맞붙는 건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APBC는 젊은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대회인 만큼 모든 팀들이 성적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지만, 한일전인 만큼 경기 결과에도 많은 팬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대표팀 소집 전후로 선발진 구성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던 코칭스태프의 선택은 바로 '좌완 영건' 이의리였다.
2021년 1차 지명으로 KIA에 입단한 이의리는 빠르게 프로 무대에 적응해갔고,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으로 10승 고지를 밟으면서 KIA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았다. 3년 통산 성적은 76경기 380⅓이닝 25승 22패 평균자책점 3.83.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하기도 했던 이의리는 당시 ⅓이닝 3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정규시즌 성적만 놓고 본다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되기에 충분한 수치였다. 그런데 대회 출전을 앞둔 이의리를 괴롭히는 게 있었다. 바로 부상이다.
한창 정규시즌 일정을 소화하던 이의리는 8월 22일 수원 KT 위즈전에서 선발 등판을 마친 뒤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병원 검진 결과 견쇄관절 부분의 단순 염증 소견을 받았다. 로테이션을 한 턴 거르면 복귀할 수 있을 정도로 부상이 심각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의리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 건 사실이다.
회복 이후 9월 초 선발진에 복귀한 이의리는 2경기 만에 또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번에는 손가락 물집이 문제였다. 이의리는 9월 9일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 선발 등판, 4⅓이닝을 던진 뒤 왼손 중지 굳은살이 벗겨지면서 더 이상 투구를 이어갈 수 없었다.
12일 만에 마운드에 오른 이의리는 9월 21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1⅓이닝만 던지고 교체됐다. 이날 류중일 감독이 직접 야구장을 찾을 정도로 대표팀은 이의리의 몸 상태를 계속 예의주시했는데, 대표팀 소집 직전까지 고민을 풀지 못했다. 결국 이의리는 22일 대표팀으로부터 교체 통보를 받았고,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이 불발돼 외야수 윤동희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됐다.
공교롭게도 이의리는 대표팀에서 빠진 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매 경기 호투를 펼쳤고, 대표팀 하차 이후 4경기에서 모두 5이닝을 소화했다. 10월 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에서는 무려 10개의 탈삼진을 솎아내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대회 직전 이의리를 엔트리에서 제외시킨 대표팀의 결정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고, 여러모로 선수로선 한동안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고, 이의리는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APBC 소집 훈련 당시 취재진을 만났던 이의리는 ""감독님이 안 아프냐고 하셔서 괜찮다고 했다. 이제는 끝난 일이니까 괜찮다"며 "시즌이 끝난 뒤에도 대회에서 안 다치고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나중에 대표팀에 나올 수 있을 것 같고,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16일 호주와의 예선 1차전 이후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류중일 감독은 "우리나라 최고의 좌완 투수다. 또 일반적으로 일본 팀에 좌타자가 많다. 제구만 잘 된다면 막아줄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의리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의리를 상대해야 하는 일본도 한일전 승리에 대한 의지가 강력하다. 일본은 16일 대만과의 예선 1차전에서 4-0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예열을 마쳤다. 5회까지 안타 없이 퍼펙트로 끌려가다가 7회말 선취점을 뽑은 뒤 9회초 3득점으로 승기를 굳혔다.
일본 매체 '스포니치 아넥스'에 따르면, 16일 대만전 이후 기자회견에 나선 이바타 히로카즈 일본 감독은 "대만전과 같은 타격을 보인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 야구가 지난 3월 WBC 우승으로 한 해를 시작했는데, APBC 우승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17일 한일전과 그 이후까지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한 경기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 경기가 바로 한일전이다. 그 어느 때보다 부담이 큰 경기에서 이의리가 주어진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KBO, 엑스포츠뉴스 DB, 연합뉴스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