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황희찬이 3경기 연속골을 터트리며 쾌조의 컨디션을 과시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득점 랭킹 4위에 올라 2위 손흥민(토트넘)을 한 골 차로 추격하는 등 한국인 공격수 둘이 프리미어리그 득점 상위권에서 경쟁하는 진풍경을 계속 연출하고 있다.
울버햄프턴 소속 공격수 황희찬은 9일 영국 울버햄프턴 몰리뉴 경기장에서 끝난 2023/24시즌 프리미어리그 8라운드 애스턴 빌라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출격, 0-0으로 팽팽하던 후반 8분 이날 경기 선제골을 터트리면서 홈구장을 열기에 빠트렸다. 자신의 이번 시즌 6호골이자 프리미어리그로 한정하면 5호골이다. 다만 울버햄프턴은 황희찬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불과 2분 뒤 원정팀 스페인 공격수 파우 토레스에 동점포를 내줬다. 결국 1-1로 비기고 말았다. 황희찬은 이날 후반 41분 파비우 실바와 교체아웃되면서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가장 많은 86분을 뛰었다.
울버햄프턴은 무승부에 따라 2승 2무 4패(승점 8)을 기록하며 중하위권인 14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애스턴 빌라전을 포함해 최근 3경기에선 1승 2무를 기록하며 3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게 됐다. 울버햄프턴은 개막하고 첫 5경기에서 1승 4패에 그치는 극도의 부진을 드러냈으나 6라운드 루턴 타운과 원정 경기에서 1-1로 비겨 승점을 모처럼 쌓더니 지난 1일 지난 시즌 '유러피언 트레블'을 일궈낸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황희찬의 결승포에 힘입어 2-1로 이기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어 애스턴 빌라를 홈으로 불러들여 한 골씩 주고받으며 비겼다.
반면 지난 시즌 7위를 차지하며 토트넘을 제치고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 콘퍼런스리그 진출 티켓을 거머쥔 애스턴 빌라는 이번 시즌 첫 무승부를 기록하며 5승 1무 2패(승점 16)가 됐다. 순위는 5위다.
시즌 초반 교체 멤버로 그라운드를 밟다가 득점포를 꽂아넣으면서 입지가 넓어진 황희찬은 애스턴 빌라전에서도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격했다.
개막 직전 훌렌 로페테기 감독을 대신해 울버햄프턴에 부임한 개리 오닐 감독은 조세 사 골키퍼를 문 앞에 세웠으며, 안토니우 고메스(이상 포르투갈), 크레이그 도슨, 맥스 킬먼(이상 잉글랜드)를 중앙 수비수로 세우는 백3를 단행했다. 이어 미드필더에 라얀 아이트-누리(알제리), 마리우 레미나(가봉), 주앙 고메스(브라질), 넬슨 세메두(포르투갈)를 집어넣었다. 황희찬은 페드루 네투(포르투갈)와 함께 좌우에서 마테우스 쿠냐(브라질)를 보좌하는 윙어로 섰다.
스페인 출신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지휘하는 애스턴 빌라는 4-4-2 전형으로 나섰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최우수 골키퍼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아르헨티나)가 골문 앞에 선 가운데 뤼카 디뉴(프랑스), 토레스, 디에구 카를로스(브라질), 에즈리 콘사(잉글랜드)가 백4를 형성했다.
존 맥긴(스코틀랜드), 더글라스 루이스(브라질), 부바카르 카마라(프랑스), 매티 캐시(폴란드)가 중원에 포진했다. 올리 왓킨스(잉글랜드), 무사 디아비(프랑스)가 투톱을 꾸렸다.
킥오프 뒤 두 팀은 일진일퇴 공방전을 벌였다. 먼저 좋은 찬스를 맞은 팀은 원정 온 애스턴 빌라였다. 맥긴이 왼쪽 측면에서 길게 올린 크로스를 오른쪽 미드필더 캐시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오른발 발리슛으로 연결했으나 홈팀 골키퍼 사가 쳐낸 것이다.
이어 전반 17분엔 디아비 측면 패스를 받은 맥긴이 아크 정면에서 울버햄프턴 골문 왼쪽 상단으로 보고 왼발로 감아찬 것이다. 볼이 왼쪽 크로스바를 빗나가면서 득점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울버햄프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반 19분 쿠냐가 왼쪽 측면을 줄기차게 파고든 뒤 슈팅 혹은 크로스를 올리려고 했으나 원정팀이 먼저 차단했다. 이어진 코너킥도 무위에 그쳤다.
이후 황희찬이 등장했다. 전반 33분 왼쪽 측면 페널티지역 바로 바깥에서 올려준 황희찬의 크로스를 아이트-누리가 골문 앞에서 재빠르게 왼발 방향 꺾이는 슛으로 연결했으나 볼이 오른쪽 골포스트를 벗어났다. 황희찬의 빠르고 날카로운 크로스에 홈팬들이 박수를 보냈다.
전반을 소득 없이 마친 두 팀은 후반에도 빠른 공격으로 상대의 수비를 무너트리기 위해 애를 썼다.
울버햄프턴은 후반 시작과 함께 전반 도중 상대 선수와 머리를 부딪힌 아이트-누리 대신 맷 도허티가 들어갔다. 그러나 전반전처럼 초반 분위기는 이번에도 애스턴 빌라 쪽이었다.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맥긴이 빠른(얼리) 크로스를 앞에 전달 왓킨스가 슈팅으로 연결했으나 사가 몸을 날려 막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황희찬이 부상을 당했다. 황희찬이 후반 2분 루이스와 경합하는 과정에서 팔꿈치로 얼굴을 가격당한 것이다. 황희찬은 곧바로 쓰러지며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의료진 투입 끝에 황희찬에 코피 난 것이 드러났다.
정상적인 경기를 치르기 어려운 상황 같았지만 황희찬은 이 때 번뜩이는 득점 감각으로 오히려 골 넣고 몰리뉴 경기장 분위기를 띄웠다.
이번 시즌 황희찬과 함께 측면에서 펄펄 날며 지난 달 팬 선정 '최우수 선수'에 뽑한 네투가 상대 수비수 토레스를 제치며 오른쪽 측면에서 과감하고 빠른 돌파를 시도한 뒤 크로스를 올렸고, 이 때 황희찬이 쇄도하면서 왼발로 밀어넣은 것이다. 황희찬은 득점 뒤 코피를 막기 위해 콧 속에 집어넣었던 솜을 집어던지며 무릎 슬라이딩 세리머니로 자축했다.
불과 6분 전 자신에 위협적인 동작을 취해 코피 나게 했던 애스턴 빌라를 골로 응징했다.
그러나 울버햄프턴은 황희찬 골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동점포를 내주고 말았다. 오른쪽 측면 프리킥 찬스에서 3차례 이어진 패스 뒤 왓킨스가 올린 크로스를 공격 가담한 토레스가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자신의 긴 다리를 쭉 뻗어 득점으로 완성했다. 스코어는 1-1이 됐다.
이후 황희찬은 전방을 다부지게 누비며 전반전보다 나은 경기력을 애스턴 빌라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특히 네투와 좋은 호흡을 계속 선보였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 득점 상위권에 오른 황희찬을 상대가 그냥 놔두지 않았다. 황희찬은 후반 19분 루이스와 사소한 말다툼 등 충돌을 빚었는데 갑자기 목을 잡고 쓰러지며 고통을 호소했다.
결국 루이스의 폭력적인 행위에 대해서 비디오 판독(VAR)이 진행됐지만 경고나 퇴장이 나오진 않았다.
울버햄프턴은 후반 27분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잡았으나 슈팅이 약해 땅을 쳤다. 상대 수비 뒤로 침투하는 세메두에 절묘한 패스가 배달됐다. 세메두가 수비수를 제친 뒤 슈팅을 시도했으나 너무 약했다. 가까이 있는 황희찬에게 양보했다면 더 좋은 득점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황희찬도 세메두를 향해 아쉬움을 표했다.
홈팀은 계속해서 빠른 역습으로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후반 34분엔 황희찬부터 시작된 역습이 교체투입된 장신 공격수 사사 칼라이지치를 거쳐서 네투에게 이어졌으나 네투의 슈팅이 크로스바 위를 넘어갔다.
이후 황희찬은 부상을 호소하며 그라운드에 누웠다. 황희찬은 후반 40분 별다른 충돌이 없었음에도 그라운드에 누웠고 결국 실바가 황희찬 대신 들어왔다. 후반 추가시간이 무려 12분이나 주어진 가운데 울버햄프턴엔 추가시간이 3분 정도 지났을 때 이미 경고가 있던 레미나가 또 옐로카드를 받아 쫓겨났다. 승점 1점이라도 지켜야 했던 울버햄프턴 선수들은 전원 수비 모드로 돌입했다.
승리를 위해 총공세에 나선 애스턴 빌라는 결국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 왓킨스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승점 1을 따냈다.
축구통계매체 '풋몹'은 울버햄프턴-애스턴 빌라 맞대결 직후 황희찬에 평점 8.0을 부여하며 이날 경기 최우수선수로 뽑았다. 평점 8점 이상 받은 선수는 황희찬 한 명 뿐이었으며 그의 골을 도운 네투가 7.9점을 받았다. 풋몹에 따르면 황희찬은 이날 23개의 패스를 뿌려 16개를 성공시켜 성공률 70%를 기록했다. 태클은 2번 시도해 모두 성공했다.
황희찬은 축구 통계사이트 '소파스코어'에서 평점 7.7점을 받았다. '후스코어드닷컴'에선 이날 경기 최고 평점인 7.7점을 얻었다. '옵타'에 따르면 황희찬은 울버햄프턴 역사상 프리미어리그에서 홈 5경기 연속 공격에 관여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황희찬은 경기 후 프리미어리그 프로덕션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쉽게 홈에서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다. 양 팀 모두 잘 싸웠다. 매우 힘들었지만, 동시에 매우 중요한 승점을 얻었다"며 "우리 팀은 매 순간 다음 경기만 생각하고 있다. A매치 기간을 가진 뒤 휴식을 취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황희찬은 이날 경기 선취골로 프리미어리그 8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 엘링 홀란(맨시티·8골)과 손흥민, 알렉산더 이사크(뉴캐슬·이상 6골)에 이어 프리미어리그 득점 랭킹 공동 4위에 올랐다. 웨스트햄 공격수 재로드 보웬, 이집트가 낳은 세계적인 공격수 모하메드 살라와 함께 5골로 4위권을 유지했다. 리그컵까지 합치면 이번 시즌 9경기 6골이다.
특히 황희찬의 경우 이번 시는 90분 풀타임이 한 번도 없어 출전시간 대비 골 생산에선 상위권 선수들 중 최고 수준이다.
황희찬은 맨유와 개막전 후반 교체로 들어가 28분, 브라이턴과 2라운드 경기에서 역시 교체로 투입돼 36분 출전을 기록했다. 그러다가 브라이턴전 골을 계기로 선발을 조금씩 꿰찼는데 이날 애스턴 빌라전까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출전 시간이 415분에 불과하다. 83분에 한 골씩 뽑아낸다는 의미로, 경기당 한 골을 넘어선 것이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5골은 축구종가 데뷔 시즌인 2021/22시즌 기록했던 자신의 프리미어리그 최다골(5골)과 벌써 동률이다.
세계적인 명장들이 그를 떠올리며 극찬하고 나선 점은 그의 이번 시즌 활약이 얼마나 인상적인가를 잘 설명한다.
우선 리버풀을 이끄는 독일 국적 세계적인 명장 위르겐 클롭 감독이 지난달 16일 맞대결 앞두고 황희찬은 극찬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교체로 더 많이 출전하던 황희찬을 떠올리고는 "황(희찬)이나 칼라이지치 같은 좋은 선수들은 경기에 선발로 출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위협적이다"고 칭찬했다.
유러피언 트레블을 두 번이나 해낸 명장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지난달 29일 울버햄프턴 원정을 앞두고 "울버햄프턴에는 퀄리티가 좋은 선수들이 많다. 페드루 네투, 마테우스 쿠냐, 그리고 그 한국인 선수는 정말 훌륭하다"고 전해 화제를 끌었다. 황희찬 이름을 몰라 "그 한국인 선수(The Korean guy)"라고 칭한 사건은 황희찬을 반사적으로 영국에서 꽤 유명한 선수로 이끌고 있다. 울버햄프턴은 황희찬의 '코리안 가이' 셔츠까지 출시한 상황이다.
물론 황희찬이 맨시티전 결승포를 터트린 뒤엔 과르디올라 감독도 "황"이라고 발음해 그의 골을 기억했다.
황희찬은 애스턴 빌라전 6호골(리그컵 포함) 및 3경기 연속골을 기분 좋게 성공시키고 위르겐 클린스만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에 합류한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