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유준상 기자) 모두가 믿을 수 없었다.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가 또 무너졌다. 가을만 되면 작아졌던 그 모습이 올해도 나타났다.
다저스는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의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포스트시즌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스백스에 2-11로 완패했다.
결과도 결과이지만, 선발투수 커쇼의 부진이 충격적이었다. 커쇼는 ⅓이닝 6피안타(1피홈런) 1볼넷 6실점으로 1이닝도 채우지 못한 채 조기강판됐다. 커쇼의 호투와 함께 기선제압을 바라봤던 다저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빅리그 통산 210승 투수' 커쇼는 누가 뭐래도 리그와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다. 올해 정규시즌에서도 24경기 131⅔이닝 13승 5패 평균자책점 2.46을 기록하면서 팀의 지구 우승에 기여한 바가 컸다.
그런 커쇼가 오랜 시간 동안 극복하지 못한 게 한 가지 있다면, 바로 가을야구다. 2008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넘게 포스트시즌을 경험한 그는 포스트시즌 통산 38경기 194이닝 13승 12패 평균자책점 4.22를 기록 중이었다. 화려한 정규시즌 커리어에 비해 포스트시즌에서는 다소 부진한 편이었다.
지난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도 1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6피안타(1피홈런) 6탈삼진 3실점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첫 경기를 잡기 위해서 에이스를 꺼내들어야 했던 다저스로선 당연히 커쇼에게 1차전 선발 중책을 맡길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부분이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커쇼는 1회초 리드오프 케텔 마르테에게 2루타를 맞으면서 불안하게 출발했다. 다이빙캐치를 시도한 중견수 제임스 아웃맨이 포구에 실패하면서 경기 시작과 함께 득점권 위기를 자초했다.
커쇼는 무사 2루에서 코빈 캐롤에게 중전 안타를 허용하면서 2루주자 마르테의 득점을 지켜봐야만 했다. 양 팀 통틀어 첫 득점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토미 팸을 상대로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한 커쇼는 볼카운트 0-2에서 3구째 슬라이더에 안타를 허용하면서 다시 한 번 득점권 위기를 자초했고, 후속타자 크리스티안 워커에게 1타점 2루타를 맞았다. 여기에 가브리엘 모레노에게는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3점포까지 헌납했다. 아웃카운트 한 개 없이 순식간에 상대에게 5점을 줬다.
미국 현지 매체 'ESPN'에 따르면, 선발투수가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기 전에 피안타 5개, 5실점을 기록한 건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역사상 올해 커쇼가 처음이다. 그만큼 '5타자 5실점'은 팀과 선수는 물론이고 팬들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내심 커쇼가 1회초를 마무리했으면 하는 데 다저스 벤치의 생각이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루어데스 구리엘 주니어의 땅볼로 힘겹게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은 커쇼는 알렉 토마스의 볼넷에 이어 에반 롱고리아에게 좌중간을 가르는 1타점 2루타를 맞았다. 늘어나는 실점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결국 마운드로 향했고, 불펜에서 몸을 풀던 에밋 쉬핸이 구원 등판했다.
그렇게 커쇼은 자신의 등판을 마감했고, 더그아웃으로 이동한 뒤 한동안 말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경기 전까지 4.22였던 커쇼의 포스트시즌 통산 평균자책점은 4.49로 상승했다.
에이스의 부진에 다저스타디움은 침묵에 빠졌다. 얼굴을 감싸쥐는 등 충격을 금치 못하는 팬들의 모습이 중계화면에 포착되기도 했다. 여기에 2회초 3실점으로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일찌감치 승부의 추가 애리조나 쪽으로 기울어졌고, 많은 팬들은 서둘러 야구장을 빠져나갔다.
6년 전 애리조나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긴 했다. 2017년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 선발로 나선 커쇼는 6⅓이닝 5피안타(4피홈런) 3볼넷 7탈삼진 4실점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땐 많은 이닝을 끌고 갔고, 홈런을 많이 맞은 것을 제외하면 실점도 적었다. 팀도 9-5 승리를 거뒀다.
이번에는 경기 초반부터 애리조나 타선이 쉴 틈 없이 몰아붙였고, 커쇼는 돌파구를 찾을 새도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올가을 커쇼에게 다시 부진을 만회할 기회가 다시 올지는 미지수다.
반면 타선의 득점 지원에 힘입어 편안하게 마운드를 지킨 애리조나 선발 켈리는 6⅓이닝 3피안타 2볼넷 5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쳤다. 빅리그 데뷔 이후 다저스를 상대로 승리투수가 된 건 처음이었기에 캘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값진 1승이었다.
켈리의 통산 정규시즌 다저스전 성적은 16경기 83⅔이닝 11패 평균자책점 5.49로 좋은 기억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닝당 출루허용률이 1.697에 달할 정도로 다저스를 만날 때보다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다.
이날은 달랐다. 켈리는 1회말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2회말에는 2사에서 데이비드 페랄타의 2루타 이후 아웃맨의 3루수 뜬공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3회말 1사 1·2루에서는 윌 스미스의 뜬공과 맥스 먼시의 땅볼로 실점 없이 투구를 이어갔다.
4회말부터 3이닝 연속 삼자범퇴로 다저스 타선을 봉쇄한 켈리는 7회말에도 등판했다. 선두타자 J.D. 마르티네스의 볼넷 이후 제이슨 헤이워드에게 삼진을 잡아냈고, 애리조나 벤치가 투수교체 타이밍을 가져가면서 켈리의 등판이 마무리됐다. 7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동료들의 환영을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한편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에 따르면, 이날 경기 후반에는 흥미로운 진기록도 나왔다. 팀이 9-0으로 앞선 7회초 알렉 토마스가 무려 14구 승부 끝에 홈런을 때려냈는데,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88년 이후 가장 많은 투구수를 이끌어낸 홈런이었다. 종전 기록은 2012년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4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터트린 워싱턴 내셔널스 제이슨 워스의 13구 승부다. 상대 투수는 현재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랜스 린이었다.
사진=AFP, AP, UPI, USA투데이스포츠/연합뉴스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