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중국 원저우, 나승우 기자) 한국 여자 축구가 6년 만에 벌어진 남북 대결에서 상대의 거친 플레이와 심판의 석연 찮은 판정 등이 뒤섞이는 악재 속에 역전패했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30일 중국 저장성 원저우에 위치한 원저우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시작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8강전 남북대결에서 전반 11분 상대 자책골에 힘입어 앞서갔으나 9분 뒤인 전반 20분 북한 리학에 프리킥 동점골을 내준 뒤 후반 36분 안명성에 역전 결승포, 후반 45분 리학에 쐐기포, 후반 추가시간 김경영에 페널티킥 추가골을 내줘 1-4 뒤집기 패배를 맛봤다.
한국은 전반 41분 공격수 손화연이 심판의 석연 찮은 옐로카드에 경고 두 장을 받고 그라운드를 떠나면서 긴 시간 수적 열세에 시달렸다. 이 때부터 승부가 허탈하게 북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한국은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까지 여자축구 3회 연속 동메달을 따낸 상태였다. 이날 북한을 이기면 준결승에서 한 수 아래인 우즈베키스탄을 맞기 때문에 결승을 갈 수 있는 좋은 찬스였으나 악재가 겹치면서 결국 고개를 숙였다.
벨 감독은 이날 180cm가 넘는 신장으로 제공권 장악에 능한 박은선(서울시청)을 활동량 왕성한 최유리(버밍엄 시티), 손화연(현대제철)과 함께 최전방에 세웠다. 간판 지소연은 전은하(수원FC), 천가람(화천 KSPO)과 중원에서 호흡을 맞췄다.
후방 백4엔 장슬기, 김혜리(이상 현대제철), 심서연, 추효주(이상 수원FC)가 포진했다. 1984년생으로 팀 내 최고령인 김정미(현대제철)가 꼈다. 반면 베테랑 미드필더 이민아(현대제철)는 부상 탓에 출전 명단에서 제외됐다.
북한은 김은희 골키퍼를 비롯해 리명금, 리금향(이상 내고향), 위정심(425), 리혜경(압록강)이 수비라인에 섰다. 주효심, 리학(425), 최금옥(내고향)이 미드필더에 섰으며, 전방엔 안명송과 홍성옥(이상 압록강), 김경영(내고향)이 맨 앞에서 스리톱을 구성했다.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리는 벨 감독은 지난 28일 홍콩과 조별리그 E조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북한전을 '꼭 이겨야 하는 경기'로 표현했다. 한국은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2014년 인천 대회 준결승전 패배를 비롯해 북한을 5번 만나 모두 졌다. 역대 A매치에서도 19번 만나 1승3무15패에 그칠 만큼 열세다.
두 팀은 경기 시작 전부터 악수를 세게 하는 등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쳤다. 이런 양상은 전반 초반부터 나타났다. 전반 2분 한국의 에이스 지소연이 북한 수비진에서 돌파할 때 홍성옥이 거친 양발 태클을 감행한 것이다. 이에 두 팀 선수들이 '벤치 클리어링'을 연상시키는 몸싸움을 하는 등 그라운드에서 일찌감치 붙었다.
전반 5분엔 리학이 페널티지역에서 반칙을 범했으나 태국 주심이 그냥 넘어갔다. 이번 대회에선 비디오 판독(VAR)이 아예 없다.
이후부턴 북한이 강한 전방 압박으로 한국을 공격 의지를 봉쇄하는 식의 경기가 흘러갔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서 캄보디아가 불참함에 따라 싱가포르와 함께 8강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에서 친선경기 같은 2경기를 치러 체력을 좀 더 비축한 상태다. 또 한국이 조별리그 3경기를 하고 하루 쉬고 북한전을 치르는 반면 북한은 이틀 쉬고 남북 대결에 나섰다.
하지만 태극낭자들도 이를 예상한 듯 측면 돌파를 통해 북한 문전을 휘저었으며 전반 10분엔 손화연의 슛이 상대 골키퍼를 맞고 코너킥으로 연결됐다.
그리고 이게 득점으로 연결됐다. 김혜리가 오른쪽 측면 코너킥을 올렸는데 박은선과 북한 선수가 공중볼 다툼을 하는 사이 볼이 뒤로 흘러 리혜경 발 맞고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자책골로 연결된 것이다.
리혜성은 볼이 골문 안으로 들어가자 낙심한 듯 그라운드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이후 북한은 공격 비중을 더욱 늘렸고 전반 16분 안명송이 한 차례 슛을 시도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후 세트 피스 찬스에서 동점포를 터트려 일찌감치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아크 왼쪽에서 얻은 전반 20분 프리킥 기회에서 리학이 오른발 감아차기를 시도했는데 이게 골키퍼 김정미도 손을 쓸 수 없도록 오른쪽 구석 가운데를 가른 것이다.
자책골로 긴장했던 북한 코칭스태프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기쁨을 누렸다.
두 팀은 한 골씩 주고받은 뒤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북한이 앞 선에서 압박을 하며 한국 문전을 다시 노렸으나 태극 낭자 역시 공격수와 미드필더, 수비수간 간격을 잘 유지하면서 북한 거친 플레이를 적절히 봉쇄했다.
그러나 한국은 전반 40분 심판의 석연 찮은 판정으로 공격수 손화연이 퇴장 당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박은선이 후방에서 긴 프리킥을 쐈고 이 때 손화연이 머리받기로 연결하기 위해 돌진하다가 북한 골키퍼 김은희 주먹에 맞았는데 오히려 주심이 휘슬을 불어 손화연에게 경고를 준 것이다.
전반 도중 한 차례 옐로카드를 받았던 손화연은 경고 누적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손화연도 터치라인을 벗어난 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 대기심 등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북한은 이후 전반 44분 지소연과 공중볼 경합하던 리학이 지소연을 고의로 넘어트리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지소연이 데굴데굴 굴렀음에도 주심은 아무런 경고 없이 한국에 반칙만 선언했다.
리명금이 추가시간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오른발 대각선 슛을 날렸으나 무위에 그쳤다. 결국 한국이 선제골을 넣고도 동점골을 허용한 뒤 한 명 열세까지 떠안은 상태로 전반전을 마쳤다.
북한은 후반 들어 공격 쪽으로 서서히 밀고들어오면서 특히 한국의 수적 열세를 이용하려는 듯 2대1 패스를 자주 시도했다. 그러면서 리학이 다시 한국 선수들 발을 밟는 등 몰상식한 플레이도 서슴치 않았다. 태국 주심은 북한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에 거의 제동을 걸지 않았다. VAR이 아예 없어 이런 식의 편파 판정이 가능했다.
북한 대표팀에서 골도 넣고 거친 반칙도 하는 리학은 후반 15분 페널티지역 외곽 오른쪽에서 강한 왼발 슛을 날렸으나 무위에 그쳤다. 후반 16분엔 자책골을 넣은 리혜경이 전은하를 거칠게 대하다가 '모처럼' 북한 대표팀에 경고가 주어졌다. 전반 20분엔 북한 대표팀 핵심 공격수 김경영이 한국 측면 수비수 김혜리와 머리끼리 충돌했다. 김경영은 경고를 받은 반면 김혜리는 한참 일어나지 못하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한 명이 부족한 한국의 위기를 계속 됐다. 페널티지역에서 혼전 도중 교체로 들어간 북한 공격수 명유정이 오른발 슛을 날렸으나 볼이 크로스바 위로 떠서 한숨 돌렸다. 이어 홍성옥이 2대1 패스 뒤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위협적인 오른발 대각선 슛을 시도했지만 역시 오른쪽 골포스트를 벗어났다.
후반 25분엔 천가람이 왼쪽 측면에서 돌아뛰면서 좋은 찬스를 잡으려고 할 때 경고 한 장 받은 리혜경이 손으로 잡아 넘어트렸으나 주심은 옐로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후반 26분엔 전은하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밀고 들어가다가 상대 수비에 걸려 넘어졌으나 주심은 그대로 경기를 진행시켰다. 위기를 넘긴 북한은 후반 28분 아크 왼쪽에서 명유정이 묵직한 오른발 중거리슛을 시도해 한국 간담을 서늘케 했다. 북한 신예 선수들은 이날 슈팅 능력 자체는 굉장히 좋은 것으로 드러났다.
두 팀은 조금씩 연장 승부도 대비하고 나섰다. 북한이 옐로카드 한 장 있는 리혜경을 불러들였다. 한국도 공격수 경험이 있는 수비수 이은영, 그리고 공격수 문미라를 집어넣으고 천가람과 박은선을 빼면서 체력 안배를 단행했다.
하지만 북한은 한국의 전열 재정비에도 체력적 우세를 앞세워 계속 밀고 들어왔다. 결국 이런 전력이 효과를 봤다.
후반 36분 문전 혼전 도중 베테랑 위정심이 공중볼 싸움에서 이긴 북한은 볼이 떨어지자 최금옥이 앞으로 살짝 밀었다. 이를 달려들던 22살 공격수 안명성이 오른발 옆으로 밀어넣어 한국 골망을 출렁였다. 인천 아시안게임 준결승처럼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북한과 잘 싸우고도 마지막에 집중력 부족으로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도 비록 한 명이 부족했으나 마지막 10여분을 지키지 못하면서 연장전 및 승부차기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을 놓쳤다.
실점한 골키퍼 김정미도 아쉬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 반면 북한은 선수들과 벤치가 일제히 뛰어들어 역전골 기쁨을 만끽했다. 200여명이 경기장 한 켠에 자리잡은 북한 여성 응원단도 목소리를 높이며 기뻐했다.
한국은 수적 열세 속에서도 동점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오히려 후반 45분 첫 골 주인공 리학의 오른발 중거리포에 쐐기골을 내줬다. 후반 추가시간엔 페널티킥을 허용해 김경영이 이날 4번째 골도 헌납했다.
사진=연합뉴스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