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중국 항저우, 김지수 기자) '비매너 논란'을 빚었던 한국 남자 테니스의 간판 권순우가 어떤 변명도 없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경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과격한 행동을 했던 점을 반성하고 고개를 숙였다.
권순우는 홍성찬과 호흡을 맞춰 27일 오후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테니스장(Hangzhou Olympic Sports Centre Tennis Centre)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 복식 준준결승에서 일본의 하자와 신지-우에스기 가이토 조를 2-0(6-2 6-4)으로 꺾고 4강에 진출했다.
세계랭킹 112위 권순우와 195위 홍성찬은 549위 하자와, 1082위 우에스기를 상대로 다소 고전하기도 했지만 승부처 때마다 한 수 위 기량을 과시했다. 권순우, 홍성찬은 복식 공식 경기에서 자주 호흡을 맞춰 보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경기력이 탄탄해 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은 권순우-홍성찬조가 남자 복식 준결승 진출에 성공하면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9년 만에 이 종목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게 됐다. 한국 테니스는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아직 금메달을 수확하지 못한 상태다.
경기 종료 후 믹스트존에서 취재진과 만난 권순우는 승리 소감 대신 사과의 뜻을 먼저 밝혔다. "며칠 전 있었던 태국의 삼레즈 선수와 남자 단식 경기를 마친 뒤 내가 성숙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며 "내 불필요한 행동으로 실망하셨을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과 태국 선수에게도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권순우는 지난 2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 단식에서 세계랭킹 636위 태국의 카시디트 삼레즈에게 1-2로 패했다. 이번 대회 최대 이변 중 하나의 희생양이 되면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이어 또 한 번 이 종목 금메달 도전이 좌절됐다.
문제는 경기가 끝난 다음이었다. 권순우는 패배에 크게 화가난 듯 라켓을 바닥에 강하게 내리치면서 분을 삭이지 못했다. 태국의 삼레즈는 권순우와 악수를 하기 위해 게임이 끝난 뒤 권순우와 악수하기 위해 네트 부근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권순우가 삼레즈 쪽으로 시선을 전혀 돌리지 않았고 라켓을 바닥, 의자에 내리치는 과격한 행동만 이어가자 심판과만 악수 후 코트를 떠났다.
권순우와 삼레즈의 단식 경기는 TV 중계가 없었지만 현장에 있던 관중들이 SNS에 권순우의 과격한 행동을 사진, 영상으로 찍어 올리면서 논란이 커졌다.
권순우의 행동은 큰 비판을 받았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줬다. 테니스 종목에서 경기에서 진 선수가 라켓을 내리치며 화풀이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결코 바람직한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삼레즈가 권순우와 경기에서 1세트 후 10분 넘게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권순우가 좋은 흐름으로 경기를 펼치고 있을 때 갑자기 인저리 타임을 신청하는 등 권순우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권순우의 악수 거부와 라켓을 바닥에 내리치며 화를 냈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항저우에 체류 중인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도 권순우 문제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장 차관은 대한민국 역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포츠 영웅이다. 행정가이기 전에 스포츠인 선배로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국제무대이기 때문에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권순우는 일단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지난 26일 자신은 경기가 없었지만 태국 삼레즈의 훈련장을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했다. SNS를 통해 자필 사과문을 게재하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삼레즈도 '엑스포츠뉴스'와 단독 인터뷰에서 "권순우는 내게 사과했고 진심이 느껴졌다. 그의 행동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어 나는 괜찮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순우는 "경기 중에 상대 선수와 서로 감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화장실 다녀오기, 인저리 타임 요청)는 삼레즈 선수가 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그때는 내가 너무 많이 흥분했고 불필요한 행동을 많이했다"고 이번 논란이 자신의 불찰로 빚어졌음을 인정했다.
또 "남자 단식은 깔끔하게 내 실력으로 졌다. 상대 선수가 어떻게 행동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 행동으로 실망한 분들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권순우는 다만 이번 논란이 경기력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집중했다는 점도 밝혔다. 복식에서 짝을 맞추는 파트너 홍성찬이 자신의 문제 때문에 피해를 보지 않도록 게임에만 몰두하기 위해 노력했다.
권순우는 "(논란 직후 첫 경기가) 개인 단식이 아니라 홍성찬 선수와 함께하는 복식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피해를 안 주려고 했고 그래서 더 집중했다"며 "일단 4강에 진출해 동메달을 확보해 기분이 좋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고 나는 금메달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아쉬움을 풀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권순우는 당시에도 남자 단식 8강에서 인도의 군네스와란에게 무릎을 꿇으며 금메달 도전이 좌절됐다. 남자 복식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중국의 공 마오신-장 제를 상대로 16강에서 패하며 빈손으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마감했다.
권순우는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남자 복식 준결승, 결승 상대가 어떤 팀으로 결정되더라도 항상 우리가 최고라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길 팀은 없다는 생각으로 게임에 임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남자 복식은 한국 테니스의 남자 복식 전통적인 효자 종목이다. 지난 1982 뉴델리 대회에서 김춘호-김우룡 조와 송동욱-전영대 조가 결승에서 만나 김춘호-김우룡 조가 금메달을 따낸 적이 있다.
이어 1986년 서울 대회에선 지금도 많은 테니스 팬들이 좋아하는 유진선과 김봉수가 짝을 이뤄 3세트에서 엄청난 듀스 끝에 17-15로 이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진선은 남자 복식에서의 우승을 바탕 삼아 서울 아시안게임 4관왕에 올랐다.
이후 1998년 방콕 대회와 2002년 부산 대회에선 한국 테니스 사상 처음으로 ATP 투어 우승을 안겨준 이형택이 윤용일, 정희석과 각각 짝을 이뤄 연달아 은메달을 차지했다. 방콕 대회에선 태국 테니스의 영웅인 파라돈 스리차판과 그의 형 나라토른 스리차판에 패했다. 부산 대회에선 세계적인 복식 전문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인도의 레안더 파에스가 마헤시 부파티와 짝을 이룬 조에 졌다.
한국은 2014년 인천 대회에서 다시 왕좌를 되찾았다. 2019년 호주 오픈 4강에 빛나는 정현이 고교 시절에 임용규와 짝을 이뤄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일찌감치 병역 특례를 받은 것이다. 이 때 우승을 계기로 정현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단식에 비해 두 선수의 기량이 함께 좋아야 하다보니 한국은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보태기 위해 국내 최정상급 선수들을 내세우면서 우승에 도전하곤 했다.
권순우는 한일전을 이기면서 중국 조를 이긴 사케트 미네니-람쿠마르 라마나탄(인도)와 준결승에서 격돌하게 됐다. 이제 두 관문 남은 상태에서 어느 정도 진정성 있는 사과로 자신에 대한 논란을 결자해지한 만큼 홀가분하게 금메달 도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권순우-홍성찬 조는 인도 선수들을 누르면 태국-대만 승자와 금메달을 다툰다.
한편, 한국은 홍성찬이 남자단식 3라운드에서 롱콩의 웡 착 람 콜먼을 2-1(4-6 6-4 6-3)으로 누르고 8강에 오르는 등 남자 단·복식에서 그래도 순항하고 있다. 권순우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세계랭킹이 두 번째로 높은 홍성찬은 이번 대회 2관왕을 위한 도전을 계속 이어가게 됐다. 한국은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전종목 결승 진출에 실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번 대회에선 권순우, 홍성찬 등 남자 테니스 원투펀치를 앞세워 명예회복을 노리고 금메달에도 도전한다.
사진=중국 항저우, 김한준 기자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