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클린스만호 핵심 미드필더 황인범이 자신의 생일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에서 82분을 뛰며 자신의 기량이 충분히 유럽 정상급 무대에서 통할 수 있음을 알렸다. 지난 시즌 챔피언이자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맨체스터 시티(맨시티)를 상대로 자신의 기량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이달 초 세르비아 명문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입단한 황인범은 20일 영국 맨체스터 에티하드 경기장에서 열린 2023/24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G조 1차전 맨시티와 원정 경기에서 등번호 66번을 달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해 후반 37분까지 82분을 누볐다. 황인범은 이날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부터 최후방 수비수까지 그라운드를 두루 누비면서 맨시티 선수들과 비교해 밀리지 않는 실력을 선보였다.
다만 팀이 선제골을 넣고도 역전패해 승점 없이 돌아가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즈베즈다는 전반 45분 2선 공격수 오스만 부카리가 선제골을 넣어 맨시티를 침묵시켰으나 후반 상대팀 아르헨티나 스트라이커 훌리안 알바레스에 동점포와 역전포를 연달아 내준 뒤 미드필더 로드리에도 한 골을 얻어맞아 1-3으로 패했다. 승점 1을 얻어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말았다.
이날 홈팀 맨시티를 이끄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에데르송 골키퍼가 골문을 지키는 가운데 백4엔 왼쪽부터 세르히오 고메스, 나단 아케, 후벵 디아스, 카일 워커가 투입됐다. 더블 볼란테는 로드리와 마테우스 누네스 몫이 됐다. 2선엔 필 포든과 알바레스, 베르니르두 실바로 채워졌다. 전방 원톱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한 엘링 홀란이 나섰다.
맞서 싸우는 원정팀 즈베즈다는 옴리 글레이저 골키퍼를 비롯해 밀란 로드리치, 알렉산다르 드라고비치, 나세르 지가, 스르단 미야일로비치가 백4를 형성했다. 마르코 스타메니치와 황인범이 중원에 위치했으며 스테판 미트로비치, 미르코 이바니치, 부카리가 2선, 셰리프 은디아예가 최전방에 섰다.
1996년 9월20일 태어나 이날이 생일인 황인범은 맨시티전 선발로 출전하면 한국인으론 13번째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는 역사를 썼다.
앞서 지난 2001년 벨기에 안더레흐트에서 뛰던 설기현이 챔피언스리그 한국인 출전 1호 기록을 썼으며 이후 송종국,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박주호, 박주영, 손흥민, 황희찬, 정우영, 이강인, 김민재가 지난해까지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무대를 차근차근 밟았다. 그리고 황인범이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누비는 또 다른 한국인으로 기록에 남았다.
황인범은 이날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을 지난 시즌 우승팀이자 '세계 1강' 맨시티와 싸웠음에도 "개처럼 뛰겠다"는 약속처럼 자신의 약속에 어긋나지 않는 플레이와 활동량을 선보여 유럽 수준급 미드필더임을 알렸다.
이날 맨시티는 전반에만 무려 22개의 슈팅, 7개의 유효슈팅을 쏠 만큼 즈베즈다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역습 한 방에 수비라인이 무너지면서 전반을 0-1로 뒤진 채 마쳤다.
맨티시는 전반 5분 워커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크로스를 올렸으나 황인범이 이를 앞에서 넘어지며 발로 정확히 막아내 공격 시도가 무위에 그쳤다.
이어 전반 14분엔 수비형 미드필더 로드리가 아크 정면에서 상대 선수를 한 명 제친 뒤 오른발 강슛을 날렸으나 상대 골키퍼 글레이저의 동물적인 선방으로 땅을 쳤다.
전반 24분엔 로드리가 볼을 잡았을 때 황인범이 태클로 걷어내 공격이 끊어졌다. 이어 1분 뒤인 전반 25분엔 포든의 크로스를 홀란이 골지역 왼쪽에서 헤더로 연결했으나 크로스바 맞고 나오면서 첫 골에 또 다시 실패했다.
이날 즈베즈다 선수들은 몸을 날리면서 맨시티 공세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여기에 이스라엘 국가대표 골키퍼인 글레이저가 계속 선방 쇼를 펼치면서 홈팀의 세계적인 선수들과 5만 관중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글레이저는 전반 29분 공격 가담한 아케의 헤더슛을 반사적으로 펀칭해 최고의 컨디션임을 알렸다. 전반 30분엔 즈베즈다의 찬스 때 황인범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으로 빠져 크로스를 올렸으나 에데르송이 원정팀 선수에게 연결돼 슛으로 이어지기 전에 걷어냈다.
맨시티가 좀처럼 상대의 두꺼운 수비벽을 뚫지 못하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선수를 교체하는 과감한 용병술을 단행했다. 전반 44분 실바를 빼고 지난 여름 새로 영입된 예레미 도쿠 교체투입한 것이다.
하지만 즈베즈다는 결연하게 맨시티 공격을 막아냈고 전반 45분 즈베즈다의 깜짝골이 터지면서 에티하드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흔치 않은 즈베즈다 공격 찬스에서 이바니치가 전방으로 뛰어들던 부카리에 날카로운 침투패스를 내줬고 이를 부카리가 오른발 슛으로 연결해 맨시티 골망을 출렁인 것이다.
득점 순간 부심의 깃발이 올라가면서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왔으나 비디오판독(VAR) 결과 온사이드 판정으로 바뀌면서 즈베즈다는 맨시티를 상대로 선제골을 터트리는 이변을 썼다.
그러나 전열을 정비한 맨시티는 후반 2분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일찌감치 원점으로 돌렸다.
후반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마자 공세를 강화한 맨시티는 홀란이 아크 오른쪽에서 전진 패스한 것을 알바레스가 글레이저를 순식간에 제치더니 볼이 골라인을 넘어가기 전 오른발을 뒤로 빼서 살짝 방향만 바꾸는 슛으로 1-1 동점에 성공했다. 황인범이 끝까지 쫓아가며 골을 막아보려고 했으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과르디올라 감독도 두 팔을 치켜들며 환호했다.
이후에도 즈베즈다는 무승부를 챙기려는 듯 물러서지 않고 맨시티 공격에 몸을 던졌으나 엉뚱하게 역전 결승골을 내주고 만다. 후반 15분 페널티지역 오른쪽 외곽 프리킥 찬스를 알바레스가 찼는데 이날 꾸준히 좋은 선방을 펼치던 글레이저가 이를 걷어내려다 펀칭에 실패, 볼이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지난 시즌 홀란에 밀려 백업 스트라이커 역할을 하다가 이번 시즌 세계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케빈 더 브라위너가 부상으로 장기 결장하면서 그의 대체자를 맡고 있는 알바레스는 이날 멀티골로 자신의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냈다.
경기는 맨시티의 2-1 리드로 뒤집히면서 홈팀 분위기로 완전히 바뀌었다. 황인범이 후반 16분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오른발 슛을 쏜 것이 후반 중반 이후 즈베즈다의 눈에 띄는 공격이었다.
결국 후반 28분 이날 경기 쐐기골이 나왔다. 로드리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동료 선수와 패스를 주고받은 뒤 반박자 빠른 오른발 감아차기를 즈베즈다 골문 하단에 꽂아넣은 것이다. 스트라이커 뺨치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슈팅 실력에 즈베즈다 선수들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두 골 차로 벌어지면서 두 팀은 과감한 공격을 진행하기보다는 체력을 아끼면서 추가골 혹은 만회골을 노리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포든의 공격 때 몸을 던지는 태클을 과감하게 펼친 황인범은 이후에도 경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활동량을 줄이지 않았다. 결국 후반 37분 킹스 캉그와와 교대하면서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를 인상적으로 마쳤다.
유럽축구 통계사이트 '풋몹'에 따르면 황인범은 패스를 총 25번 시도해 19번 성공, 성공률 76%를 기록했다. 평점은 6.5점을 받아 부카리와 글레이저(이상 7.6점), 이바니치(7.1점), 은디아예(6.7점)에 이어 선발로 투입된 즈베즈다 선수들 중 5위를 차지했다. 양팀 합쳐 최고 평점은 멀티골을 터트리며 9.5점을 받은 로드리였다.
즈베즈다는 오는 10월5일 오전 4시 홈구장인 라이코 미티치 경기장에서 스위스 영 보이스와 G조 2차전을 치른다. 비록 맨시티전에서 역전패했으나 경기력이 나쁜 편은 아니어서 영보이스와의 홈 경기에서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첫 승을 낚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황인범도 즈베즈다 입단 뒤 첫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제 기량을 펼친 만큼 영보이스전에선 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앞서 열린 G조 다른 경기에선 독일 분데스리가 강자인 RB라이프치히가 영보이스를 적지에서 3-1로 완파했다.
라이프치히는 전반 3분 수비수 모하메트 시마칸의 선제골로 앞서나간 뒤 전반 33분 상대 공격수 메차크 엘리아에 동점포를 내줬으나 후반 28분 사베르 슐라거, 후반 추가시간 벤야민 세스코의 동점포와 역전포가 각각 터지면서 쾌승했다. 맨시티와 골득실, 다득점까지 같아 G조 공동 1위가 됐다.
일단 이날 경기 결과에 따라 G조는 지난 시즌 유러피언 트레블을 일궈낸 맨시티, 그리고 지난달 독일 슈퍼컵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3-0으로 완파한 라이프치히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가운데 즈베즈다가 다크호스로 위협하는 모습이 전개될 전망이다.
사진=연합뉴스, 즈베즈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