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스마일 점퍼' 우상혁(27·용인시청)이 한국 육상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우상혁은 17일(한국시간)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 필드에서 열린 2023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남자 높이뛰기 경기에서 2m35를 넘어 정상에 올랐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우상혁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우상혁은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우승 상금 3만 달러(약 4000만원)도 챙겼다.
우상혁 뒤를 이어 2위 노베르트 코비엘스키(26·폴란드)와 3위 주본 해리슨(24·미국)이 나란히 2m33을 넘었으나 시기 수가 달랐다.
이날 우상혁은 2m15, 2m20, 2m25, 2m29를 모두 1차 시기에 넘었다. 2m29까지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바를 넘은 선수는 우상혁과 해리슨, 두 명뿐이었다.
우상혁은 메달 색깔이 갈린 2m33를 1차 시기에 넘어 단독 선두로 나섰다. 2m25와 2m29에서 한 번씩 실패한 코비엘스키도 2m33은 1차 시기에서 성공했다. 반면 해리슨은 3차 시기에서 2m33을 넘으며, 우상혁을 압박했다.
그러나 우상혁은 흔들리지 않았다. 2023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챔피언은 우상혁이었다. 우상혁은 자신이 2021년 도쿄 올림픽(4위)과 2022년 유진 세계선수권(2위)에서 작성한 실외 경기 한국 기록과 같은 2m35을 3차 시기에서 넘고 포효했다.
대한육상연맹은 남자 높이뛰기 실내와 실외 기록을 통합해서 관리한다. 남자 높이뛰기 한국기록은 우상혁이 보유한 2m36(실내)이다. 코비엘스키와 해리슨이 2m33을 3번 시도에서 모두 넘지 못하면서, 우상혁은 우승을 확정했다.
우상혁은 해리슨 등 경쟁자들의 축하를 받았다. "꼭 가지고 싶다"고 말한 다이아몬드 모양의 트로피를 들고 기쁨을 만끽했다.
이날 우승과 함께 우상혁은 2024 파리 올림픽 출전도 사실상 확정했다. 파리 올림픽 기준 기록은 2m33이고, 기록 인정 기간은 2023년 7월 1일부터 2024년 6월 30일이다. 대회가 10개월 남은 상황에서 일찌감치 파리 올림픽 기준 기록을 통과했다.
한국 선수 중 최초로 출전한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파리 올림픽 기준 기록을 통과해 기쁨은 배가 됐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하는 다이아몬드리그는 1년에 총 14개 대회를 치른다. 13개 대회에서 쌓은 랭킹 포인트로 순위를 정해 '챔피언십' 격인 14번째 파이널 대회에서 '최종 승자'를 가린다.
각 대회 1∼8위는 순위에 따라 차례로 승점 8∼1점을 받는데, 남자 높이뛰기는 총점 상위 6명이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출전 자격을 얻는다. 남자 높이뛰기를 편성한 2023 다이아몬드리그 개별 대회는 도하, 로마·피렌체, 스톡홀름, 실레지아, 런던, 취리히 등 총 6개다.
우상혁은 4개 대회에 출전했다. 도하(2m27)와 로마·피렌체(2m30)에서 2위에 올라 7점씩을 얻었고, 스톡홀름에서는 기록을 남기지 못해 다이아몬드리그 포인트를 추가하지 못했다.
마지막 개별 대회인 취리히 대회에서 3위에 올라 6점을 추가한 우상혁은 총 20점, 4위로 파이널 진출권을 손에 넣었다.
육상 선수들이 올림픽, 세계선수권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 한국 선수가 출전한 것 자체가 올해 우상혁이 최초였다.
지난해 우상혁은 1점이 부족해 7위로 파이널에 출전하지 못했다. 올해 파이널에는 '현역 최고' 무타즈 에사 바르심(카타르)과 지난 8월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장마르코 탬베리(이탈리아)가 불참했다.
하지만 올해 다이아몬드리그 개별 대회에서 3번이나 우승한 해리슨 등 최정상급 선수 6명(우상혁 포함)이 출전해 파이널 우승에 도전했다. 최종 승자는 우상혁이었다.
우상혁은 지난달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6위(2m29)에 그친 아쉬움도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우승 트로피를 들면서 털어냈다.
지난해 유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육상 선수 중 세계선수권 메달 2호, 최초의 은메달리스트가 된 우상혁은 올해 '은빛'을 '금빛'으로 바꾸려고 했으나 메달권에 들지 못한 것은 물론 6위에 그쳤다.
우상혁은 2m20, 2m25, 2m29를 모두 1차 시기에 넘고 메달 경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2m33에서 1차 시기에 실패하며 기세가 꺾였다. 탬베리, 해리슨, 바르심, 루이스 엔리케 사야스(쿠바) 등 4명이 1차 시기에 2m33을 넘자 우상혁은 2m33에 더는 도전하지 않고 2m36으로 바를 높였으나 연거푸 바를 건드리면서 6위로 밀렸다.
그러나 한 달 만에 이번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우승으로 자신감을 되찾았다. 자신의 평생 소원 중 하나를 이룬 그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17일 연합뉴스를 통해 "정말 열심히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우승하려면 운도 따라야 하는데, 오늘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며 "지난 8월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 6위(2m29)에 그쳤지만, '남은 대회는 많다'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강박에서 벗어나니 기록이 더 좋아졌다"고 '우승의 비결'을 설명했다.
우상혁이 '은인'이라고 부르는 김도균 국가대표 코치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의 아쉬움을 빨리 털어내고자 애썼다"며 "(9월 1일) 취리히 다이아몬드리그에서 3위(2m31)를 했지만, 경기력은 좋았다. 부담에서 벗어나니 오늘 '올 시즌 최고의 경기'를 했다"고 떠올렸다.
사실 올해 우상혁은 발뒤꿈치 통증, 부비동염 수술 등 시즌 초에 부상으로 고전했다. 5월 도하, 6월 피렌체 다이아몬드리그에서는 아쉽게 2위에 그치고, 한국 최초로 2회 연속 세계선수권 메달 획득을 노렸던 8월 부다페스트 대회에서는 6위에 머물렀다.
우상혁은 좌절하지 않았다. 우상혁은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경기 당일 하루만 아쉬워했다. 남은 대회에 더 집중하고자 했다"며 "세계선수권이 끝난 뒤, 내 남은 목표는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과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이었다. 파이널 우승의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는 '현역 최고 점퍼' 무타즈 에사 바르심(카타르)이 불참했다. 하지만 9월 23일에 개막하고 10월 4일 남자 높이뛰기 결선이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는 바르심이 출전한다.
우상혁은 "바르심이 출전하면, 더 재밌는 경기를 할 수 있다"며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은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아니다. 파이널 우승을 차지한 오늘과 수상자 전체 세리머니가 열리는 내일까지 기뻐하고, 다시 체중 관리 등 아시안게임 준비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우상혁은 2024 파리 올림픽 출전권도 사실상 확보했다. 우상혁은 "파리 올림픽 기준 기록 2m33을 넘은 뒤 김도균 코치님이 "이제 더 편하게 뛰어도 된다. 네가 원하는 경기를 하고 오라'고 말씀하셨다"며 "파리 올림픽 기준 기록을 통과해 부담을 덜어내니, 2m35도 가뿐하게 넘을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은 18일까지 열린다. 모든 경기가 끝난 뒤에는 각 종목 1위가 모여 '챔피언 세리머니'를 펼친다. 우상혁은 "상상만 하던 장면이 내일 펼쳐진다. 오랜 노력을 이렇게 보상받는다"며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파리 올림픽에서도 이런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경기 뒤 우상혁은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우승은 내 인생 목표 중 하나였다"며 "정말 기쁘고, 감격스럽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 김도균 코치님을 포함해 나를 일으켜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상혁의 다음 목표는 10월 4일 결승이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내년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 우승이다. 우상혁은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며 "바르심이 참가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 파리 올림픽 우승을 향한 노력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한국 육상 첫 다이아몬드리그 챔피언이 된 우상혁은 18일 각 종목 우승자와 함께 '세리머니'를 펼치고, 19일 귀국한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