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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고교야구 서스펜디드 선언, '한 편의 코미디'

기사입력 2011.05.30 14:37 / 기사수정 2011.05.30 14:37

김현희 기자

[엑스포츠뉴스=목동, 김현희 기자] “정규방송 관계로 프로야구 중계를 여기서 마칩니다. 경기 결과는 스포츠뉴스 시간에 확인 바랍니다. 시청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프로야구 중계가 케이블TV 없이 공중파로 중계되었을 때에는 위와 같은 아나운서들의 멘트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많은 이들은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그래도 공중파니까 야구만 중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고 이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케이블TV 방송이 활성화된 시점에서 위와 같은 멘트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됐다. ‘정규방송' 타령은 이제 1980~90년대 이야기가 됐다.

그런데 29일 목동구장에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정규방송’을 운운하지 않았지만 프로야구 일정 때문에 황금사자기 고교야구가 중단되는, 다소 황당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랬다. 28~9일 목동 구장은 오전에 고교야구가, 오후 6시 30분부터 프로야구가 진행하기로 돼 있었다. 통상 2시간 30분 걸리는 고교야구 일정을 감안했을 때 정상적으로 경기가 진행됐다면 오후 3시에 모든 경기가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고교야구가 연장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이 펼쳐진 것이다. 이에 28일 경기는 오후 4시가 돼서야 끝이 났고 넥센 선수들은 고교 야구가 끝나자마자 그라운드에서 몸을 푸는, 다소 이색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29일 야탑고와 장충고의 16강전에서 발생했다.

9회까지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 팀은 10회 연장 승부치기에 돌입했다. 그러나 10회에도 두 팀은 2점씩 주고받으며, 11회를 맞이해야 했다. 이 때가 오후 4시 20분이었다. 순간 장내 방송이 들려왔다. “프로야구 일정 관계로 본 경기는 서스펜디드 선언되었습니다. 중단된 경기는 내일(30일)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됩니다.” 황당한 내용이었다. 양교 선수들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 16강전임에도 불구, 야탑고는 자신의 학교를 응원하기 위해 응원단까지 동원했다. 이러한 응원단 앞에서 대회 본부는 ‘서스펜디드 경기’를 선언했다.

왜 굳이 프로/아마 경기를 동시에 배정했나

결국 양 팀은 쫓기듯 짐을 챙겨 야구장을 빠져 나갔다. 경기가 중단된 채로 그라운드를 나온 야탑고 김성용 감독과 장충고 송민수 감독은 하나같이 “이게 말이 됩니까”라며 입을 모았다. 후속 일정 때문에 전국 대회를 중단한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그보다 한, 두 이닝 마저 하자고 다시 야구장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경기’가 아닌, ‘서스펜디드’가 선언된 이상 두 팀은 연장 11회 승부치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빠르면 1이닝 만에 경기를 끝낼 수 있다.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와 대한야구협회(이하 KBA)가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지난 해만 해도 목동구장에서 전국대회가 있는 날이면 넥센 경기를 원정으로 배치하도록 배려했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주말 리그로 인해 경기 숫자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 경기를 아마 경기 일정과 겹치도록 방치했다.

물론 이러한 결정 뒤에는 ‘아마야구 경기는 통상 2시간 30분이면 끝난다’라는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그리고 고교야구 선수들은 이러한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생각 없는 ‘어른’들의 결정에 애꿎은 고교야구 선수들만 피해를 본 셈이다. 목동구장이 아니더라도 텅 비어 있는 수원구장을 협조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이번 황금사자기에서는 일부 경기가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리기도 했다.

고교야구가 종료되는 시점에 프로야구를 보러 오는 팬들과 ‘충돌’이 생긴다는 점도 문제다. 고교야구가 끝나면 야구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애를 쓰는 이들과 야구를 보러 오기 위해 목동구장 밖에서 기다리는 팬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 한국야구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듯한, 씁쓸함이 묻어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 서스펜디드 경기 선언 이후 쫓기듯 목동구장을 빠져나간 장충고 선수들. 이 모습이 한국 고교야구의 현주소다.

KBO와 KBA는 서로 같은 건물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왜 서로 대화를 통하여 프로/아마야구 일정을 조정하지 않았을까. 두 단체 모두 각성해야 마땅하다.

황금사자기 일정이 종료된 이후에는 청룡기 대회가 열린다. 그때에도 ‘프로야구 일정 관계로 고교야구를 여기서 마칩니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진 (C) 엑스포츠뉴스 김현희 기자]



김현희 기자 SPORT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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