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5.25 09:37 / 기사수정 2011.05.25 09:38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빠른 배구를 하지 않으면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아시아권만 보더라도 대부분의 국가가 빠른 배구를 추구하고 있어요. 일본과 이란, 그리고 중국의 배구는 우리보다 한층 빠릅니다. 누군가 반드시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죠. 안전한 수비형 배구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이탈리아 리그 팀과 이란 대표팀을 이끌었던 박기원(60) 감독이 십자가를 짊어졌다. 그동안 한국 배구 발전을 위해 필요한 요소로 지적된 '빠른 배구'를 시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이후, 끊임없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배구를 살릴 키워드로 박 감독은 '빠른 배구'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빠른 배구란 세터가 일직선으로 던지는 토스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배구다. 빠른 토스를 때리기 위해서는 공격수의 스텝과 움직임도 한층 빨라져야 한다. 그동안 한국 남자배구는 수비와 리시브에 중심을 두는 배구를 추구해왔다. 하지만, 장신 공격수들의 서브리시브와 기본기 등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며 완벽한 조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남자배구 대표팀은 지난해 11월에 열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준결승전에서 일본에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1,2세트를 먼저 따내며 결승 진출을 눈앞에 뒀지만 내리 3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국내 선수들 중, 서브리시브가 가장 좋은 석진욱(삼성화재)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대표팀은 전체적으로 흔들렸다. 리시브에 구멍이 생긴 점도 문제였지만 한국보다 한층 빠른 플레이를 펼치는 일본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한국 남자배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출전에 실패했고 아시안게임 3연패도 좌절됐다. 이러한 침체기를 타파하기 위해 박기원 감독은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예전부터 한국배구가 추구해온 수비형 배구를 하면 쉬운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지요. 세계 배구의 추세인 빠른 배구를 하려면 모든 부분을 세세하게 바꿔야 합니다."
날개 공격수가 모두 줄 부상,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결한다
대한배구협회는 지난 19일, 오는 28일과 29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2011 FIVB 월드리그 남자배구' 쿠바와의 1,2차전에 출전할 최종 엔트리 13명을 발표했다. 이 명단에는 국내 간판 날개공격수인 문성민(25, 현대캐피탈)과 박철우(26, 삼성화재), 김요한(26, LIG손해보험) 그리고 김학민(27, 대한항공) 등이 모두 제외됐다.
장기레이스인 정규 프로리그를 마친 각 팀의 주전 공격수들은 모두 부상 중에 있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은 부상 선수가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문성민과 김학민 등 날개공격수들이 모두 빠져있는 상태에요. 이번 월드리그는 대학선수들을 비롯한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시즌 신인왕에 등극한 박준범(23, KEPCO45)은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다. 차와 포를 모두 뗀 남자배구 대표팀은 경기대의 ‘주포’인 최홍석(23)과 전광인(20, 성균관대), 그리고 곽승석(23, 대한항공) 등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박준범을 레프트로 기용할 생각이지만 몸 상태가 안 좋은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라이트 포지션에는 최홍석을 투입하려고 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가 모두 빠졌지만 박 감독에게 그나마 위안인 것은 '월드 리베로' 여오현(31, 삼성화재)의 가세다. "대표팀의 보석"이라고 여오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박 감독은 "여오현과 함께 리시브를 담당해줄 또 다른 선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D조에 속한 한국 대표팀은 쿠바(세계랭킹 4위)와 이탈리아(세계랭킹 6위), 그리고 프랑스(세계랭킹 12위)와 총 12경기를 치른다. 각 국가는 홈앤드어웨이 형식으로 경기를 펼치지만 쿠바는 홈경기가 없다. 대회가 열릴 체육관이 공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주전 선수가 모두 뛸 수 있었다면 4승 정도를 목표로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수가 부족한 현 상황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고 주전 선수 부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쿠바는 높이와 빠르기를 모두 갖춘 강팀입니다. 프랑스는 유럽 팀들 중, 수비가 가장 탄탄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이탈리아는 세대교체가 진행되는 상황이지만 워낙 선수층이 두텁기 때문에 만만하게 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1승 이상을 올릴 수 있는 팀으로 박 감독은 이탈리아를 꼽았다. 현재 세대교체 중인 이탈리아는 지난해와 비교해 젊은 선수들이 많이 가세한 상태다. 반면, 쿠바와 프랑스는 지난해와 동일한 멤버 구성을 갖춘 팀을 이끌고 이번 대회에 임하고 있다.
박기원 감독, "문성민, 김학민 등은 빠른 배구에 쉽게 적응할 것"
박기원 감독의 최종 목표는 2012년 런던올림픽 출전이다. 한국배구는 남녀 모두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러한 과오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이 한국 배구의 지상과제로 떠올랐다.
"현재 상황은 어렵지만 절망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빠른 배구를 완성하기 위해 체계적인 단계를 밟아나가려고 해요. 국내 공격수들 중, 문성민과 김학민은 빠른 배구에 충분히 적응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리그로 돌아온 문성민은 지난 2년 동안 독일과 터키 리그에서 뛰면서 빠른 배구에 적응이 된 상태다. 뛰어난 탄력과 스피드를 지닌 김학민도 빠른 배구에 녹아들 것으로 박 감독은 전망하고 있다.
'스피드 배구'는 절대로 단시일에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고쳐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박 감독은 "한국배구가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길"이라며 험난한 과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국제무대에서 2명의 블로킹을 상대로 공격을 하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빠른 배구로 상대의 높은 블로킹을 따돌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스피드가 넘치는 배구를 하기 위해서는 체력 훈련도 변해야 합니다. 유산소 운동에서 탈피해 순발력 운동을 강화하는 체력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한국배구는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상대의 빠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다. 국내 선수들은 포물선을 그리는 높은 토스를 장신의 외국인 공격수가 처리하는 국내 리그에 익숙해져왔다.
조금 늦은 감도 있지만 한국배구도 세계배구의 추세에 발맞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럽과 북미 선수들의 높은 블로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터의 빠른 토스와 선수들의 민첩한 움직임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진 = 박기원, 남자배구 대표팀 (C)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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