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지수 기자) 한국 야구가 자랑하던 '철옹성 불펜'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됐다. 국제 대회 영광을 가능케 했던 마운드의 강력함이 사라졌다는 걸 확인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었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13일 2023 WBC 본선 1라운드 B조 3차전에서 중국을 22-2로 이겼지만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 9일 호주전 7-8 패배가 발목을 잡았다. 2승 2패로 조 3위에 그치며 2013, 2017년 대회에 이어 1라운드에서 짐을 쌌다.
한국의 2023 WBC 조편성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승후보 일본을 제외하면 호주, 체코, 중국까지 객관적인 전력에서 모두 우리보다 한수 아래로 여겨졌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호주, 체코는 적어도 단판 승부에서 쉽게 볼 상대들이 아니었다. 호주 투수들은 140km 중후반대 빠른볼, 타자들은 장타력을 앞세워 한국을 무너뜨렸다.
여기에 한국 불펜의 허약함도 문제였다. 호주를 상대로 0-2로 끌려가다 5회 양의지의 역전 3점 홈런, 6회 박병호의 1타점 2루타로 4-2 리드를 잡았지만 7, 8회 연이어 3점 홈런을 허용하면서 무너졌다. 소형준, 김원중, 양현종까지 KBO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일본전은 말 그대로 참사였다. 곽빈, 정철원, 김윤식, 김원중, 구창모, 이의리까지 일본의 강타선 앞에 제구 난조로 힘을 쓰지 못했다. 구위와 구속을 앞세워 아웃 카운트를 늘렸던 건 KBO리그에서나 가능했다.
한국 야구가 과거 호성적을 거뒀던 2006 WBC,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WBC, 2015 프리미어12는 탄탄한 불펜진이 고비 때마다 실점을 최소화 했던 부분이 컸다.
2006 WBC에서는 박찬호, 구대성, 김병현, 오승환이 든든하게 중심을 잡았다. 일본, 멕시코, 미국 등 우리보다 전력이 강하다고 평가 받았던 팀들을 꺾을 수 있었던 데는 불펜의 신구 조화가 있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은 류현진, 김광현 원투펀치 못지 않게 윤석민, 정대현이 게임 후반을 책임져 준 부분이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2009 WBC에서도 정현욱, 임창용이라는 확실한 카드가 뒷문을 책임졌다.
2015 프리미어12 우승도 마찬가지였다. 차우찬, 정대현, 이현승, 정우람이 난적 일본을 상대로 선전하면서 준결승에서 기적 같은 역전승의 발판을 놨다. 'K-불펜'은 한국 야구의 힘 중 하나였다.
그러나 2023 WBC에서 한국 불펜은 강점이 아닌 약점이었다. 전문 불펜 요원을 적게 뽑고 선발투수들을 승부처에서 짧게 짧게 끊어가려고 했던 코칭스태프의 구상이 엇나간 부분도 있었지만 제구력도 구위도 큰 대회에서 경쟁력이 없었다.
마무리 투수로 작점했던 고우석이 담 증세로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는 변수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이번 대회 졸전에 변명이 될 수는 없다. KBO리그 톱 레벨 선수들의 수준과 민낯을 확인한 씁쓸한 4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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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