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역삼동, 윤승재 기자) 금메달 11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박지원(27‧서울시청)이 2022/2023시즌 열린 4번의 월드컵과 한 번의 4대륙선수권 등 총 5번의 국제대회에서 거둔 성적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 황대헌(24‧강원도청)과 곽윤기(34·고양시청)가 부상 등으로 이번 시즌 대표팀을 이탈한 상황에서 박지원이 국제대회 메달을 대거 수집하며 남자 쇼트트랙 '뉴 에이스'로 떠올랐다.
사실 박지원은 오래 전부터 기량을 인정 받은 실력파 쇼트트랙 스케이터다. 2015/2016시즌 처음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이후 시니어 7시즌 중 4시즌이나 태극마크를 달았다.
2022/2023시즌 전까지 국제대회서 금메달 12개를 수확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실력과 성적에 비해 박지원 이름 석자가 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올림픽과 유독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지원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 올림픽 출전이 번번이 무산됐다.
올림픽 시즌만 되면 유독 불운이 뒤따르며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 두 번의 올림픽 좌절…"메달보다 더 값진 경험 얻었죠"
두 번의 올림픽 무산으로 좌절할 법도 했지만 박지원은 다시 일어섰다.
박지원은 지난 달 말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엑스포츠뉴스 본사에서 진행한 신년인터뷰를 통해 “올림픽 메달보다 값진 경험을 얻었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평창 대회 국가대표 탈락 땐 충격도 먹고 화도 많이 냈는데, 이번(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발전)은 달랐다. 보완해야 할 부분을 수없이 복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새 시즌 준비도 철저히 할 수 있었다”며 베이징 올림픽 선발전 부진과 이후의 시간이 값진 경험한 나날들이었다고 얘기했다.
마인드 컨트롤하는 법을 배웠다.
국제대회 성과와 올림픽 좌절 등 부침을 거듭하면서, 차분하면서도 경쟁심을 잃지 않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미묘한 마인드 컨트롤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박지원은 “이전엔 열정만 가지면 잘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링크 위에선 변수가 많더라. 평정심과 승부욕을 함께 표출하기 위해선 열정만 내세우는 것보단 내면부터 단단하게 다져야겠다고 깨달았다”라고 했다.
마음을 다잡으니 자신감이 따라왔다. “링크 위에선 조금 더 건방지려고 한다”라는 그는 “박지성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는데, 모든 관중에 내가 주인공이라는 마인드로 경기장에 들어간다고 하더라. 자만과 자신감 사이에서 잘 조절해야 하지만, 일단 빙판 위에선 내가 최고다, 주인공이라는 마인드로 나서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올림픽 설움, 월드컵에서 훌훌…쇼트트랙 '뉴 에이스' 올라선 박지원
수많은 복기와 노력은 본연의 실력과 조화를 이루며 결과로 이어졌다.
새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 3년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품에 안은 박지원은 이번 시즌 월드컵 4개 대회와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11개를 쓸어 담는 기염을 토했다.
개인전에서만 7개를 따냈고, 계주에서도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며 동료들과의 좋은 호흡도 이어갔다.
특히 남자 1500m는 5개 대회에서 금4 은1를 따내며 이번 시즌 이 종목 세계 최강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실력 면에서도 일취월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폭발적인 아웃코스 추월이 강점이었던 그는 이번 시즌엔 인코스에서도 번뜩이는 모습을 보이며 레이스를 주도했다.
박지원은 “난 원래 인코스도 잘 탔다”라고 웃으면서도 “상대들도 내 장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웃코스만 경계하다가 기회가 많이 난 것 같다. 이전보다 자신감도 붙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후배들과의 찰떡 호흡도 좋은 성적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시즌 남자 대표팀 주장 완장을 단 박지원은 오랜만에 태극마크를 단 후배들(임용진, 홍경환)과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나선 어린 선수들(김태성, 장성우)을 이끌고 남자 쇼트트랙 새 전성기를 열어젖히고 있다.
황대헌, 곽윤기가 빠졌다는 우려 속에서도 남자 대표팀은 4차례 월드컵 대회에서 금8 은9 동6을 획득하며 캐나다(금6)과 네덜란드(금3)을 제치고 가장 좋은 성적을 내는 중이다. 4대륙선수권에서도 1000m와 1500m를 석권하며 2관왕이 된 박지원 활약에 힘입어 캐나다와 중국(이상 금1)을 제쳤다.
2000m 혼성계주에선 4번의 월드컵 중 3번을 우승해 이 종목을 한국의 새 메달밭으로 만들었다.
다만 박지원은 후배들이 잘했다며 자신을 낮췄다. 그는 “후배들이 잘 따라와 줘서다. 그 덕분에 내가 탈 것만 잘 집중했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 “메달 무게로 비행기 오버차지 내고 싶어요.”
이제 박지원의 시선은 이번 시즌 두 번 남은 월드컵 대회와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으로 향한다.
박지원은 2019/20시즌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12개를 포함해 23개의 메달을 쓸어 담아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번 시즌 금메달 두 개를 추가하면 자신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새롭게 쓴다.
“선수라면 메달 욕심은 당연하다”라고 말한 박지원은 “메달 무게로 항공기 오버차지를 낼 만큼 많이 따고 싶다”라며 메달 향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아울러 한국에서 열리는 쇼트트랙 세계 최고의 대회, 세계선수권 출전을 위해 부상 없이 몸을 잘 만들어 놓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아직 먼 얘기지만 4년 뒤 올림픽 출전에 대한 욕심도 있지 않을까.
이에 박지원은 “물론 올림픽 출전 욕심은 있지만, 올림픽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지금은 국제무대에서 스케이팅을 하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행복하다”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단순히 작은 목표를 갖고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계속 즐기고 작은 목표를 세운다면 올림픽도, 메달도 따라오지 않을까”라며 “그러기 위해선 더욱 건강하게, 꾸준히 국가대표에 승선해야 한다. 더 잘 준비하겠다”라며 새해 각오를 다졌다.
박지원은 2022년 마지막 날 밤,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울렸다.
마침 그와 함께 타종식에 나선 이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를 빛낸 영웅 조규성이었다.
조규성과 함께 제야의 종을 울리게 돼 "내가 그런 대단한 사람이 오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가도 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지만, 박지원이 2022년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충분히 그 자리에 설만큼 대단했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맞이한 2023년 새해다.
쇼트트랙 팬들은 그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가장 먼저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을 박지원이 2023년 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시상대 맨 위에 우뚝 서기를 고대하고 있다.
사진=역삼동 박지영 기자, AP/연합뉴스
윤승재 기자 yogiyoon@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