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수원, 윤승재 기자) ‘좌승사자’라는 말이 있다. ‘좌타자들의 저승사자’라는 뜻으로 좌타자에게 유독 강한 투수들일 일컫는 단어다. 하지만 보통 이 수식어는 좌완 투수들이 많이 단다. 좌완 투수가 좌타자에게 강한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KT엔 ‘우투수’ 좌승사자가 있다. 주인공은 우완 쓰리쿼터 투수 엄상백. 엄상백의 올 시즌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0.243으로, 우타자 상대 0.281보다 4푼이나 낮다. 우완 투수가 좌타자에게 약하다는 일반화를 깨고 ‘좌승사자’로 군림하고 있는 엄상백이다.
13일 수원 삼성전도 그랬다. 이날 삼성은 엄상백을 상대로 6명의 좌타자를 배치해 경기에 나섰다. 특히 1~3번 상위타선이 모두 좌타자였고, 이후엔 우타자를 번갈아 배치해 엄상백을 상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6⅓이닝 5안타 1득점. 7개의 삼진 중 6개의 삼진이 좌타자를 상대로 만들어졌다. 엄상백이 삼성의 좌타선을 꽁꽁 묶었다.
경기 후 만난 엄상백도 놀란 결과였다. “저, 좌타자한테 얼마나 강해요?”라고 취재진에 반문할 정도로 평소 신경을 쓰지 않는 수치인 듯했다. 이내 그는 “체인지업이라는 결정구가 있고 좌타자를 상대로 한 슬라이더가 잘 통하고 있는 게 비결인 것 같다”라며 ‘좌승사자’의 비결을 진단했다.
오히려 우타자를 상대가 더 까다롭다는 그. 엄상백은 “결정구인 체인지업이 요새 우타자에겐 잘 안 먹히는 것 같다. 오히려 결정구로 뭘 던져야 할지 고민이 되는 정도다”라면서 “(고)영표 형처럼 느린 커브를 하나 장착하는 걸 생각하고 있는데 어렵다. 새 구종 장착은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좌타자에게 강한 우완투수가 있다는 것만 해도 KT에는 큰 힘이다. 더군다나 KT 선발진은 ‘우완 일색’이다. 새 좌완투수 웨스 벤자민이 가세하긴 했지만, 엄상백을 제외한 4명의 투수가 모두 우완 투수에 좌타자 피안타율이 우타자보다 높은 선수들이라 ‘좌승사자’가 한 명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엄상백의 존재는 KT에 큰 힘이다.
KT는 2연전에 돌입한 후반기엔 6선발 체제로 나설 예정이다. 엄상백도 이제 스윙맨이 아닌 선발진 한 축을 담당한다. 엄상백은 “선발 중에 내가 제일 부족한 건 맞다. 하지만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보직이 어떻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항상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나서겠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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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재 기자 yogiyoon@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