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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노트북] 송강호가 '수상요정'으로 다시 거듭났던 날 (엑:스피디아)

기사입력 2022.06.19 12:10 / 기사수정 2022.07.12 11:47


[낡은 노트북]에서는 그 동안 인터뷰 현장에서 만났던 배우들과의 대화 중 기사에 더 자세히 담지 못해 아쉬웠던, 하지만 기억 속에 쭉 남아있던 한 마디를 노트북 속 메모장에서 다시 꺼내 되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수상요정이요?(웃음) 천만요정은 들어봤어도, 수상요정은 처음 들어보네, 하하하! 그래서 '기생충' 제작보고회 때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송강호의 출연작이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 수상하는) 전통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건 뭐 전통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터져버려 가지고…(웃음) 정말 기분 좋습니다!" (2019.05.29. '기생충' 인터뷰 중)

배우 송강호는 지난 달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남자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를 통해서였죠.

올해를 포함해 이미 7번이나 칸을 방문한, 명실공히 '칸의 남자'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 대표 배우 송강호는 여러 번의 칸 방문 경험만큼이나,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들에게 칸 트로피를 안기는 전도사 역할까지 톡톡히 해왔습니다.

올해의 남우주연상 수상이 있기 전, 2019년 열린 72회 칸영화제는 송강호에게도 한국 영화계에도 잊지 못할 기록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송강호가 기택 역으로 열연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한국영화 100주년이었던 그 해, 칸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폐막식까지 함께 한 송강호는 이 모든 시간의 벅찬 감동을 고스란히 두 눈과 마음에 가득 담았었죠. 

전례 없던 경사로 현지에 있던 국내 취재진 역시 한국행 비행기를 다시 타기 전까지 쏟아지는 기사 작성으로 쉴 틈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몸은 고됐지만 당시 칸에서 영화제를 취재하며 황금종려상 수상을 누구보다 기뻐하고 봉준호 감독을 더욱 응원하던 송강호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던 것은 영화를 담당해 온 기자의 입장에서도, 대중의 한 사람으로도 그야말로 의미 있었던 '직관(직접관람)'이었다 싶었죠.


영화제 폐막 후 곧바로 한국에서도 '기생충'의 개봉이 예정돼있었기에, 송강호도 바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영화 관련 국내 일정들을 소화했습니다. 그렇게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4일 만에 다시 송강호를 만나 못 다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라운드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마주한 송강호는 여전히 조금은 상기된 모습이었습니다. 워낙 좋은 일을 겪고 돌아온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송강호는 물론 취재진과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까지 모두 평소보다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물 흐르듯이 이야기를 이어갔죠.

이른 오전 인터뷰 첫 시간에는 평소보다도 조금 많은 취재진이 송강호를 만나기 위해 자리했습니다. 10명이 넘는 취재진에게 고루고루 이야기가 잘 들리도록 송강호는 테이블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고, 그 주위를 기자들이 빙 둘러 앉았죠.

노트북을 들고 인터뷰 장소로 걸어가며 배우가 먼저 앉은 모습을 확인하고, 동료들 사이 빈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그 빈자리는, 송강호의 바로 맞은편이었죠.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그를 비스듬히, 두어 뼘 정도 가깝고도 먼 거리에서 바라본 적은 있었지만 많은 이들 틈에서 이렇게까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특유의 위트와 호탕함을 더해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가는 송강호의 눈을 마주치던 잠깐의 순간순간 동안 TV 화면이나 스크린에서, 또 멀리서만 봐도 고스란히 전해졌던 배우의 기운을 그대로 체감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와 연기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이 이 눈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에너지를 받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그 짧은 시간동안 혼자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네요.

그렇게 칸에서의 못다한 여운이 계속해서 전해졌습니다. 송강호는 폐막식까지 남아있던 이유를 전하며 "원래 저는 시상식 날 아침에 귀국하는 일정이었어요. 그런데 억울했던 게, 비행기 시간을 보니 제가 그대로 귀국하면 주연 배우가 수상 결과를 대한민국 5천만 국민들 중에 제일 늦게 알게 되는, 이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죠. 이럴 수는 없었어요"라고 유쾌한 입담을 자랑해 웃음을 안겼죠.

이어 '밀양'(2007)과 '박쥐'(2009)가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당시에도 폐막식에 참가했던 일화를 전하며 "제가 상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운 좋게도 수상('밀양' 전도연 여우주연상, '박쥐' 박찬욱 감독 심사위원상)을 다 했었잖아요. 가만히 보니까 다른 배우 분들은 먼저 귀국한 상황이고, 저라도 있어야 봉준호 감독이 외롭지 않겠다 싶었어요. 시상식에 참석을 한다고 해도 누가 상을 받는지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어떤 촉을 느껴서 시상식에 남아 있는다? 그럴 수는 없거든요. 폐막식까지 남아있던 건 그런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올해 그의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다시 회자되고 있는 '수상요정' 애칭이 태어난 것이 이 순간이었습니다.

좋은 의미로, 배우의 카리스마에 조금은 기가 빨린 상태에서 두 눈은 계속 송강호를 바라보고 두 손으로는 키보드를 분주하게 두드리며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죠. 폐막식에 남아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을 마친 그에게 이내 "수상요정의 전통을 이어가셨네요?"라고 말을 던졌습니다. 

송강호는 "수상요정이요?"라고 두 눈을 크게 뜨며 "천만요정은 들어봤어도, 수상요정은 처음 들어보네!"라며 파안대소했죠. 이어 "그래서 '기생충' 제작보고회 때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전통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건 뭐 전통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터져 버려가지고… 정말 기분 좋습니다!"라고 다시 한 번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토끼눈을 뜨고 놀라던 송강호 만큼이나 높은 데시벨로 함께 웃던 취재진의 웃음소리까지, 다시 찾아 들어본 녹취록 안에는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었던 밝은 기운들이 담겨 있었죠.

카리스마 넘치고 선 굵은 매력을 자랑해 온 송강호에게 갑자기 치고 들어온 '요정' 표현이라니요. 그렇게 저를 포함해 함께 인터뷰를 하던 몇몇 취재진들은 ''수상요정' 송강호'라는 표현을 기사 속에 담아냈습니다. 글자로 '수상요정'이라는 수식어가 송강호 앞에 붙은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죠. 

그리고 3년 후, 송강호는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한 '브로커'로 7번째 칸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배우 본인이 주연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안았죠. '송강호가 출연한 작품이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 어떤 상이라도 꼭 받는다'는 것을 입증했고, '수상요정'의 전통도 네 번이나 이어지게 됐습니다.

금의환향 후 '브로커' 국내 개봉에 앞서 진행된 취재진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송강호에게 ''수상요정'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상을 받았다'는 질문을 남겼죠. 송강호는 "아이고, 그러게 말이에요. 계속 상을 받게 되네요"라고 껄껄 웃으며 "정말 좋아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이나 박찬욱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처럼 최고의 작가이자 감독님들의 성과라고 생각해요. 저는 운이 좋아서 같이 간 것뿐이라는 생각이죠"라고 겸손하게 답했습니다.

돌이켜보니, 2019년 당시 ''수상요정'의 전통을 이어갔다'고 전한 말은 미리 준비했던 질문이 아니었기에 이 말을 던졌던 마음은 의식의 흐름 속에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나온 표현이었다 싶습니다. '천만요정'은 들어봤다던 송강호의 말처럼 어떤 수식어로 지금의 상황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갑작스레 떠오른 '요정'이라는 단어, 그리고 대화 중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던 '수상'이라는 말이 합쳐져 반 즉흥적으로 나오게 된 셈인 것이죠.

올해 본인의 수상으로 그야말로 진짜 '수상요정'으로 알차게 활약한 송강호를 보며 이전 송강호의 칸영화제 활약상에 대한 기사들을 다시 찾아봤었습니다. 그러면서 '수상요정'이라는 표현이 3년 전 이 때 처음 나오게 된 말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이제야 알게 된 것이죠.

아, 그렇다고 이 표현을 거의 처음 사용했다는 것을 지금 이렇게 글로 굳이 적어 남겨두는 것에 대해 어떤 가벼운 형태의 비공식적인 저작권을 주장하거나, '내가 이 말을 처음 썼으니 알아주세요'라고 으스대려는 것은 아닙니다. 

'괴물'(2006, 감독주간), '밀양'(2007, 경쟁부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비경쟁부문), '박쥐'(2009, 경쟁부문), '기생충'(2019, 경쟁부문), '비상선언'(2021, 비경쟁부문·심사위원), '브로커'(2022, 경쟁부문)까지 국내 배우 중 칸 경쟁 부문 최다 진출, 한국 남자 배우 최초의 경쟁 부문 심사위원 경력을 갖고 있는 송강호의 칸영화제 속 기분 좋은 전통에 '수상요정'이라는 표현이 글자로나마 좋은 기운을 이어가는 데 보탬이 된다면 좋은 일이다 싶죠. '수상요정'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은 부끄러운 듯 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송강호의 푸근한 미소를 보는 것 또한 반가운 일입니다.

칸영화제에서의 활약, '브로커'의 국내 개봉에 이어 최근 신작 '거미집' 촬영을 마친 송강호는 지난 해 칸 비경쟁부문에 진출했던 '비상선언'으로 8월 다시 스크린 컴백을 알렸죠.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1승'까지, 송강호의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을 향한 궁금증과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시간입니다.

사진 = 엑스포츠뉴스DB, CJ ENM, 각 영화 스틸컷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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