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2.07 23:41 / 기사수정 2011.02.07 23:41
[엑스포츠뉴스=박문수 기자] '캡틴 박'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태극 마크를 반납했다.
박지성은 31일 오전 은퇴 관련 기자회견에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대표팀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국가를 대표해 축구 선수로 활동하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며 자랑이었다"라면서 "무엇보다 나를 대신할 눈부신 성장세에 있는 선수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전했다.
A-매치 통산 100경기에 나서 13골을 기록한 박지성이었지만, 시작은 무명이었다. 그는 왜소한 체구와 덜 다듬어진 기술 때문에 K-리그 팀들로 외면받았고, 고교 졸업 후에는 프로 입성이 아닌 대학 진학을 선택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9년 2월 허정무 감독에 의해 올림픽 대표팀 테스트 명단에 뽑혔고, 2000년 4월 5일 라오스와의 평가전을 통해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다. 이후 그는 같은 해 6월, 이란에서 열린 4개국 대회 마케도니아와 경기에서 A매치 첫 득점을 올렸다.
당시만 해도 박지성은 평범한 선수였다. 오히려 이천수와 이동국 등, 또래 선수들과 비교해 활약이 미미해 존재감이 미미했다. 이런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2002 한일 월드컵이었다.
월드컵 직전 열린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헤딩골에 성공하며 주가를 올렸고, 프랑스와의 최종 평가전에서는 0-1로 뒤진 상황에서 막강한 포백을 허무는 왼발 동점 골로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월드컵 D조 예선 포르투갈과의 최종전에서 이영표의 크로스를 환상적인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2003년 교토 퍼플상가를 떠나 PSV 에인트호번(이하 PSV)에 입단한 그는 유럽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2004/05시즌에는 소속팀 PSV의 UEFA 챔피언스리그(이하 챔스) 4강 진출을 이끌면서 내로라하는 클럽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2005년 여름에는 챔스에서의 선전으로 말미암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로 이적하며 인생의 꽃을 피웠다.
맨유 이적 후, 박지성은 자신의 기량을 만개했다. 투박하다는 지적이 많았던 플레이 성향이 세밀해졌으며, 중앙과 측면을 오가는 활동량은 대표팀과 맨유 모두에 힘을 실어줬다.
큰 기대 속에 출전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박지성은 강호 프랑스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동점 골을 기록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실어줬다. 당시 박지성의 득점은 문전 혼전 상황에서 공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은 그의 장점이 돋보인 대목이었다.
4년 후에도 그는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쐐기골을 넣으며 대표팀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의 도화선이 되었다. 나아가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3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서 득점하는 신기록도 세웠다.
대한민국의 전설이 된 박지성은 이번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 마크를 반납했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주장으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줬으며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한국 선수로는 8번째로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다. 10년 9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를 새롭게 장식한 박지성은 전설 그 자체로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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