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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남산르네상스'와 전통 활터 '석호정'의 공존 방안

기사입력 2011.01.23 16:31 / 기사수정 2011.01.23 16:31

무카스 기자

[엑스포츠뉴스/무카스= 나영일 객원 칼럼리스트/서울대 교수] 남산은 명산이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명당 중의 명당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수도를 보더라도 이 정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남산은 조선 시대 이후 다양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고, 생태환경의 중심이면서 서울시민들의 대표적 휴식공간이자 관광명소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시장 오세훈)는 ‘남산르네상스’를 통하여 남산의 생태·역사성의 지속적인 회복과 시민과의 소통을 통한 새로운 남산 자락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전략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전통이미지를 기반으로 남산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기본구상과 추진방향을 제시하며, 총 30개 사업에 2,325억 원이 들어가는 거창한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남산르네상스의 계획이 발표되고, 체육시설 이전에 대한 여러 가지 잡음이 일어났다. 남산공원 내 15개소 1,718명이 이용하고 있는 생활체육 시설의 철거로 중구민들의 수많은 민원을 제기되고 있다. 현재 2만7097명의 중구민이 서명한 철거반대 서명부를 서울시에 제출한 상태다.


석호정은 원래 조선 선조 때인 1630년 도성, 오늘날 장충단 뒤편에 들어선 활터다. 380여 년 동안 대를 이어오면서, 전쟁으로 몇 년간 명맥이 끊긴 적도 있다. 1894년 갑오경장 때 옛 풍습이라는 이유로 폐쇄됐다가 1899년 고종에 의해 어렵게 부활 됐으나, 1940년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으로 다시 폐쇄됐다. 1945년 광복 직후 다시 석호정이 재건됐다. 그만큼 석호정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함께 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전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석호정은 원래 모습을 찾아갔다. 1990년 8월 17일 ‘남산제모습사업’이 승인되어 이듬해 전 서울시 고건 시장은 ‘남산제모습찾기’ 기본계획을 수립됐다. 1992년도에는 ‘남산제모습가꾸기’로 명칭이 바뀌어 계속해서 사업이 시행됐다.

그 당시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서울시립대 이규목 명예교수는 “‘제 모습을 찾는다’는 것이 남산의 파괴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일제강점기 이전으로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인지 불분명해 토론 끝에 ‘가꾸다’라는 용어로 대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남산경관관리를 위한 시뮬레이션연구에서는 남산의 문화적 경관을 조선의 도읍지의 안산으로서 남산, 국가방위의 중심, 명산․명승․명당 그리고 시민의 풍류와 놀이터 등의 특성을 네 가지로 구분했다. 그런 의미에서 석호정은 국가방위의 중심이고 시민의 풍류와 놀이터라는 두 가지 특성을 잘 갖추고 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지난 2004년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일반시민들의 공원이용목적은 휴식․산책 27.7%, 운동이 26.7%, 자연감상 9.7%, 관람/구경 9.3%이며, 서울 시민들이 남산공원에 바라는 개선 사항으로는 이용시설 부족(20%)이 가장 많았다. 가장 보완이 필요한 사항은 편익시설(21%)과 운동시설(21%)로 나타났다. 서울 시민들, 특히 중구민들은 남산에 아주 쉽게 접근하여 푸른 숲을 거닐며 남산과 더불어 즐기고자 한다. 그저 공원을 바라만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남산르네상스는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예산이나 규모로 보나 역사성으로 보나 매우 원대한 사업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일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석호정과 관련된 정책결정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석호정은 단순히 1970년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시설물이 아니다. 석호정은 사람처럼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고 최소한 법에서 말하는 법인격을 가진 존재이며 역사적 생명체이다.

2007년 전국 240여개의 정을 조사한 결과, 시와 군에서 소유하고 있는 곳이 186개, 정 자체가 소유한 것이 56개로 나타났다. 그리고 인구비례로 보았을 때, 서울특별시의 활터가 8개밖에 안 된다는 것은 서울시가 전통문화를 저버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활터의 수를 보면, 경기도가 81개, 인천이 10개, 울산이 8개, 대전도 5개나 되는데, 서울은 없으나 마찬가지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국유지나 시유지 위에 가건물 등을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이 자체의 재산보다는 국가나 시도 등의 자치단체에 경제적으로 의존하여 유지되고 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개발사업 등이 시행될 때 취약함을 드러낸다. 대체할 공터를 확보하지 못하면 정이 사라지는 경우도 생긴다”고 이미 지적하였다.


우리의 전통문화인 활터의 취약함이 바로 이것이다. 몇몇 자치단체에서는 자기 지역의 활터를 복원하고 사정을 건립하는데 수십억원의 예산을 들이는 곳도 있고, 신입사원이 들어오지 못해서 사정을 운영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사정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기관장의 의지에 따라 전통문화가 보존되거나 폐기되는 상태가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석호정이 무너지면 전국 대부분의 활터가 같은 상태로 무너지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석호정 사원들이 필사적으로 사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헌법보다 높은 상위법은 없다. 또한 2008년 전통무예진흥법안(법률 6009호)이 만들어졌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도 헌법과 법률에 있는 조항을 지키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국궁은 전통문화로서 그리고 민족문화로서 지켜져야만 한다. 그리고 전통무예진흥을 위해서 만들어진 법적 근거에 따라서 예산 지원까지도 이루어져야만 한다.

남산르네상스계획에 의하면, 장충자락은 과거 남쪽에서 침입하는 왜군을 막았던 남쪽 방비의 가장 중요한 장소로서 영조 이래 남소영이 위치하던 곳으로 이곳을 ‘근대역사문화를 느낄 수 있는 교육공간’으로 조성한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무엇으로 이러한 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일까? 그저 성벽과 장충단을 더 높이 쌓아야만 하겠는가? 장충자락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누가 무어라 해도 석호정은 존속시켜야 마땅한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출생지가 있고, 그의 유년시절을 보낸 중구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한 충무공 이순신장군 탄생기념행사를 진행해 왔다. 석호정에서는 오래전부터 그 목적으로 어린이들에게 궁도체험을 시키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사다. 이런 경험을 석호정과 훈련원이 있던 중구 말고 어디에서 하는 것이 좋겠는가?

조선 시대 말인 1800년에 서울에만 40여개의 사정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서울의 사대문 안에 7개가 존재했다. 그런데 이제는 황학정과 석호정만이 사대문 안에 있고, 백운정이 폐쇄되어 이제 서울시내에는 겨우 8개가 있을 뿐이다. 은평구에도 활터가 생기는 것은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뜻깊은 일이다. 그러나 전통문화의 보고인 남산 석호정을 이전하는 것은 보물을 발로 차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글] 무카스 제공



무카스 나영일 객원 칼럼리스트(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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