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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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노트북] 배성우 "소소한 행복, 쉽지 않다는 것 알아요"

기사입력 2020.12.27 10:00 / 기사수정 2020.12.27 08:26


[낡은 노트북]에서는 그 동안 인터뷰 현장에서 만났던 배우들과의 대화 중 기사에 더 자세히 담지 못해 아쉬웠던, 하지만 기억 속에 쭉 남아있던 한 마디를 노트북 속 메모장에서 다시 꺼내 되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삶의 중요한 가치요? '행복' 아닐까 싶어요. 행복이라는 것이 모호하고 포괄적인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저는 그렇거든요. 그 단어 안에서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들이요. 관객들이 제가 나오는 영화의 제 대사에서 웃어주고 소통이 될 때, 그런 것들이 소소한 행복이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알죠." (2020.02.05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인터뷰 중)

[낡은 노트북]을 연재하기 시작하며 처음 했던 생각은, 배우들이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들 중 기억에 남는 말을 최대한 따뜻하게 다시 풀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렇구나' 하고 지나갔던 말들도 다시 되짚어보며 때마다의 시기와 상황에 맞게 또 다른 의미들을 부여해보거나 생각해볼 수 있었고요. 이번 이야기는 배우의 지난 발언을 아름다운 의미로 되짚을 순 없겠지만, 안타깝고 화났던 마음을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빌려 말해보려 합니다.

지난 12월 10일은 배우 배성우의 음주운전 적발 소식이 알려진 날이었죠. 이미 지난 달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된 상태였고, 이날 기사가 보도되며 하루 종일 배성우의 이름과 '배성우 음주운전'이 대중의 입에 올랐습니다.

배성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자숙의 뜻을 전했고, 권상우와 투톱으로 활약하며 출연 중이던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까지 파장이 미쳤습니다. 결국 다음 날 배성우의 하차 소식이 공식적으로 알려졌고, 그렇게 '날아라 개천용'에서는 배성우의 흔적들이 지워졌죠. 21일 소속사 식구인 정우성이 대신 합류한다고 알리며 상황은 그렇게 잠시 매듭지어졌습니다.


'배성우 음주운전'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어?" 당황스러운 마음이 육성으로 고스란히 나왔습니다. 이어 한숨과 함께 "아, 진짜 왜…" 탄식하게 되더군요.

또박또박 건조하게 써내려가야 하는 사건·사고 기사 속에서는 글자로 마음속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소식들을 전하는 것도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라지만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접하고 쓸 때는, 아무렇지 않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같아도 마음의 동요가 일기도 하죠. 특히 그 대상이 배성우처럼, 개인적으로 알 일은 전혀 없지만 어찌하였든 1년에 한 두 번은 배우와 기자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통해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한 뼘 정도는 가까이에서 만나왔던 사람이라면 그 여파가 조금 더 세게 와 닿곤 합니다.

지난 2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인터뷰에서 배성우를 만났습니다. 코로나19가 조금씩 번지고 있을 무렵 개봉일을 연기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때였죠. 영화가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후, 사업에 실패한 뒤 야간 사우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가장 중만으로 분한 배성우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가 특히 좋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인생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때가 있었냐'는 물음에 배성우는 "지금도 굉장히 많다"고 껄껄 웃으며 "연극할 때 경제적으로도 고민이 있었다. 제가 영화처럼 어떤 큰 사건을 만나서 그런 적은 없지만, 하루하루 그렇게 간당간당하게 살았던 것 같다"고 무명 시절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가 돈 가방 앞에서 변해가는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을 담은 만큼 돈이나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레 오갔습니다.

"제 삶에 있어서요?"라고 한 번 되물은 배성우는 "그걸 평소에 어떤 한 단어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아서 쉽지 않은데…"라고 잠시 머뭇하더니, 이내 "'행복' 아닐까 싶어요. (이 단어에)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굉장히 모호하고 포괄적인 말로 들릴 수 있지만, 그 단어 안에서 그렇게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들인 것 같아요. 저는 그렇거든요."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자 "아무래도 제가 배우니까, 시사회에서 제가 대사를 할 때 사람들이 웃으면 너무나 행복하더라고요. 다행이기도 하고요. 내가 연기한 것이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이 될까 생각하며 보는데, 그게 소소한 행복이지만 쉽지 않거든요"라며 연기로 대중과 교감하는 순간들을 꼽았습니다.

배성우는 1999년 뮤지컬 '마녀사냥'으로 데뷔한 후 이미 연극계에서도 동료들이 인정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 팬들 사이에서는 '나만 알고 싶은 배우'로 이름을 알려왔죠. 이후 영화와 드라마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며 착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왔습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적은 비중에도 강렬한 존재감으로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더해왔고, 지난해에는 '변신'으로 첫 주연작까지 도전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날아라 개천용' 역시 권상우와의 남다른 조화로 입소문을 타며 관심을 얻고 있었죠.


음주운전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현재 촬영 중인 작품이 있음에도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쉬이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작품 속에서의 좋은 연기는 물론 동료들과의 살가운 어우러짐까지 소탈한 인간미로도 많이 사랑받던 그였기에 대중이 받은 충격 또한 더 컸죠.

배성우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털털한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가곤 했습니다. 오랜 무명 생활을 겪어오며 연기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작품 얘기에는 한없이 진지했고, 때때로 오갔던 틈새 수다에서는 특유의 넉살이 묻어나왔죠. 배성우의 인터뷰 녹음본을 다시 듣다 보면, 그가 그냥 툭 던진 듯한 말에도 작은 웃음들이 끊이지 않아 유독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를 다시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그 때 그 시간을 지금 가장 후회하고 있는 것은 배우 본인이겠죠. 당시 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소소한 행복이라고 꼽았던 그의 행복 지키기는 당분간 이어지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의 행동을 두둔해서도 안 되고, 결코 두둔할 수도 없고요. 그가 말했던 소소한 행복의 가치를 누리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거듭 생각해도 아쉬운 그의 잘못을 통해 새삼스레 다시 곱씹어보게 됩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SBS·영화 스틸컷·엑스포츠뉴스DB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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