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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들' 설민석, '왕의 남자' 정약용 업적 탐사…영탁·김세정 등장 [종합]

기사입력 2020.05.17 22:36

나금주 기자

[엑스포츠뉴스 나금주 기자] '선녀들-리턴즈' 설민석이 정조대왕, 정약용의 업적에 관해 밝혔다. 

17일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8회에서는 김세정, 영탁이 게스트로 등장했다. 

이날 설민석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만드는데 동원된 백성들에게 품삯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국가 예산이 아닌 정조의 내탕금이었다고. 설민석은 정조대왕의 애민정신 덕분에 백성들이 요역을 오히려 반겼다고 했다. 김세정은 "애민 받고 애민 더 얹겠다"라며 "인부들이 다칠 수 있지 않냐. 일당 50%까지 지급했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김상욱 교수는 "2년 9개월 만에 완성됐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했냐"란 질문에 "일단은 사람을 재우지 않거나, 기계를 쓰면 되는데, 조선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던 수많은 기구가 쓰였다"라고 밝혔다. 


김상욱은 거중기의 원리에 관해 설명하며 "제작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정약용 선생님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유형거는 보다 크고 무거운 짐도 실을 수 있게 설계했고, 녹로는 건물 2~3층 높이로, 지금의 지브크레인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김상욱은 "정조대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청나라로부터 5,000권에 가까운 도서를 사온다. 그중 '기기도설'에 관심을 보이다 정약용에게 책을 건넸다. 이를 참고해서 만든 게 거중기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상욱은 "높이 평가를 해서 교과서에도 실리는데, 저 같은 물리학자가 보기엔 18세기에 이걸 만들었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좋은 장치는 복잡한 장치보단 고장이 안 나는 단순한 장치"라고 밝혔다. 

김상욱은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투입된 장치와 남은 장치를 알고 있는데, 거중기는 1대가 투입됐는데 1대가 남았다. 의미는 깊지만, 실제 많이 쓰였을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대신 유형거는 10대가 투입돼서 1대만 남았다고.  


김상욱은 "기술적 측면으론 당시 세계와 비교했을 땐 아쉬운 수준이나, 르네상스가 시작됐단 게 중요하다. 정조대왕의 통치가 이어져갔으면 우리도 근대화로 갈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김상욱은 "'화성성역의궤'야말로 과학의 산물이라고 본다. 모든 걸 기록한 실험 노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성성역의궤'엔 정작 정약용의 이름이 없다고. 전현무는 "반대 의견 때문에 정조대왕이 비밀리에 정약용에게 맡겨서 기록에 없단 얘기도 있고, 천주교 사건에 연루돼서 정약용의 이름을 지워버렸단 얘기도 있다"라고 밝혔다. 

설민석은 "수원화성 건설의 총감독이 있다. 채제공 선생이다"라고 밝혔다. 채제공은 영조 때부터 사도세자, 이산의 교육을 담당했다. 안 맡은 직책이 없다. 영의정, 우의정이 공석일 때도 좌의정으로 정사를 다 이끌어갔다. 정조의 모든 업적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다"라고 했다. 


한편 김세정과 영탁이 등장한 가운데, 정약용 특집이 시작됐다. 설민석은 "정약용이 암행어사를 해서 적이 많이 생긴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다. 매형이 우리나라 최초로 셰레를 받은 천주교 신자였다"라고 밝혔다. 그러던 중 진산에서 윤지충이란 자가 부모의 신주를 불태웠다는 고발이 들어왔다. 윤지충은 정약용의 친척이었고, 노론 벽파들은 정약용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설민석은 "정약용을 치겠다는 건 정조의 오른팔을 자르겠단 말이었다. 정조가 윤지충을 사형시키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다"라고 했다. 이어 설민석은 "근데 정약용은 직접 백성들과 호흡할 기회라고 생각해서 곳곳을 다니고, '목민심서'를 쓰는 자양분이 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약용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정조가 승하하고, 정약용은 모든 걸 내려놓고 남양주로 와서 호를 만든다. 

호는 바로 '여유당'. 정약용의 당시 불안했던 마음이 드러난 이름이었다. 결국 노론 벽파는 천주교 성물을 숨기다 발각된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종을 참수하고, 둘째 형 정약전과 정약용을 강진으로 유배 보낸다. 

설민석은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갈고 닦는 시간으로 보낸다. 방 앞에 '사의재'란 푯말을 단다. 생각을 맑게 하고, 용모는 엄숙하게 하고, 입은 무겁고 행동은 진중하게 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이곳에서 정약용은 '여유당전서'를 썼다고. 이어 선녀들은 정약용 유적지로 향했다. 설민석은 정약용의 '흠흠신서', '마과회통' 등 다양한 업적에 관해 설명했다. 

enter@xportsnews.com / 사진 = MBC 방송화면

나금주 기자 nkj@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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