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8.30 13:41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중국 대표팀 출신 측면 수비수가 적극적인 공격가담으로 브라질 수비수를 제쳐낸다. 우즈벡 대표팀 주장의 환상적인 크로스를 받은 몬테네그로 대표팀 공격수가 헤딩골을 성공시키고, 이에 상대편 한국 대표팀 미드필더는 날카로운 패스로 일본 대표팀 공격수의 골을 이끌어내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해외리그나 국제 올스타 자선 축구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아니다. K-리그 최고의 라이벌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수퍼매치'가 열린 2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FIFA(국제축구연맹)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더비 매치로 꼽는 서울과 수원의 라이벌전에서 아시아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맹활약했던 이 장면은 K-리그에 불어오는 국제화의 바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였다.
이날 그라운드에는 6개국(한국, 일본, 중국, 몬테네그로, 브라질, 우즈베키스탄)의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선수들이 뛰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브라질-동유럽 외에는 K-리그에서 다른 국적의 선수를 찾아볼 수 없던 것과 다른 풍경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이다. K-리그는 좀 더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뛰는 기회의 무대로 변하고 있고, 팬들도 좀 더 수준 높은 축구를 관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브라질 출신 일색이던 K-리그 외국인선수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아시아쿼터 제도가 등장하면서부터다.
K-리그 각 클럽이 기존 팀당 3명의 외국인 선수 제한과는 별도로 AFC(아시아축구연맹) 소속 국가 선수에 한해 1명을 추가로 영입할 수 있는 아시아쿼터제는 시행 2년째가 되는 올해 K-리그에도 적지 않은 이점을 안겨주고 있다.
시행 첫해에는 아시아 선수의 스펙트럼이 넓지 않았다. 호주의 사샤(성남), 제이드 노스(인천), 중국의 리웨이펑(수원), 펑샤오팅(대구), 완호우량(전북), 일본의 마사(강원), 오까야마(포항) 등 3개국 선수가 전부였다. 아시아쿼터제를 활용하는 클럽도 6개 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 시즌은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아시아선수를 보유한 구단 수는 7개 팀으로 크게 늘어나진 않았지만, 활용의 폭이나 무게감은 커졌다.
특히 강팀들이 아시아쿼터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K-리그 디펜딩 챔피언' 전북은 대구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던 수비수 평샤오팅을 영입해 최초로 아시아쿼터제 선수가 국내에서 이적하는 사례를 남겼고, 사샤는 성남에서 여전히 수비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 중인 네 팀(전북, 성남, 포항, 수원) 모두 아시아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리그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서울과 수원의 아시아 선수의 적극적인 활용은 앞으로 K-리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쿼터제의 적극적인 활용은 비단 K-리그의 질적 향상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이 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 남미가 아르헨티나·브라질이란 확실한 프로축구 시장의 리더가 있는 것과 달리 현재 아시아 프로축구에는 아직 확실한 리더가 없다.
K-리그는 그러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오랜 기간 월드컵 출전하며 가장 훌륭한 성적을 거둬왔고, 3년 전부터 강화된 AFC챔피언스리그에서도 전북(2006년)과 포항(2009년)이 우승했고 올 시즌에도 출전 4팀 모두 8강에 오르는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러한 K-리그와 한국 축구의 명성은 아시아권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높다. 우즈벡 리그 최고의 스타였던 제파로프의 에이전트와 얼마 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제파로프는 자국뿐 아니라 중동 어느 팀을 가더라도 거액의 연봉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제파로프는 선수로서 더 큰 꿈과 목표를 위해 도전을 선택했고 그 목적지가 K-리그와 FC서울이었다.
K-리그가 비록 자본력에서는 J리그나 중동리그에 뒤질지언정, 국제적인 명성과 리그 수준으로 아시아 최고 선수들에게 매력적인 무대로 접근하는 것은 충분하다는 얘기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처우도 결코 뒤떨어지는 수준만은 아니다. 특히 샐러리 캡(연봉상한제도)이 있는 호주 프로축구 선수들에게 K-리그는 훨씬 많은 돈을 쥐여줄 수 있다.
이처럼 K-리그와 한국 축구의 명성을 통해 아시아 최고 선수들을 하나 둘씩 K-리그에 모을 수 있다면 K-리그는 아시아 프로축구 무대에서 독보적인 리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K-리그가 아시아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로서 명성을 공고히 할 때 리그 수준은 물론이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큰 이점을 얻게 된다. 특히 동남아시아는 우수 선수 시장과 마케팅 면에서 거대한 잠재력이 있다.
동남 아시아 축구 수준을 무시할 것만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축구 열기가 높은 국가에서 뛰는 최고 선수 몇 명은 1985년 K-리그 득점왕이었던 피아퐁(태국)처럼 K-리그에서도 충분히 즉시 전력감으로 통할 수 있다.
실제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각지에서는 한국이나 일본 프로축구 무대에서 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들도 있고, 자국 선수들의 한국·일본 등 아시아 축구 선진국 무대 진출이 자국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동남아 축구 관계자의 목소리도 분명히 있다.
피아퐁이 K-리그에서 뛰던 당시, 그의 활약상이 언론보도를 통해 태국으로 전해지면서 태국 국민이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한국 리그에 관심을 가졌던바 있었다. 동남아시아는 아니지만 중국에서도 리웨이펑이 K-리그에 진출했을 때 대대적인 언론보도와 함께 리웨이펑이 뛰는 수원경기에 전담 취재팀을 보낼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동남아시아 축구팬들은 아시아에서 한국 축구가 차지하는 위상을 잘 알고 있기에, 자국 선수들이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우리가 유럽무대에서 뛰는 해외파에 관심을 갖듯이 K-리그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별한 여가문화가 없는 국내 수십만 명의 아시아 노동자들 역시 경기장 관중으로 즉시 편입될 수 있다.
따라서 아시아권 선수들이 K-리그에서 뛰는 것은 현지 팬들의 K-리그에 대한 관심 증대로 이어지며 축구의 '한류'를 경험케 할 수 있다.
이는 역으로 K-리그의 국내 인기에도 한 몫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에 밀려 우리 스스로 한국의 대중문화에 가지고 있던 자괴감이 '한류'의 바람을 타고 자신감으로 변했던 것은 K-리그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K-리그가 국내 흥행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스스로 K-리그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K-리그가 아시아의 능력있는 선수들을 활용함으로써 아시아에서 주목받는 리그로 성장하고 아시아에서 인기를 누린다면, 우리 내적으로도 K-리그를 재평가하고, 가치있는 문화상품으로서 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아시아쿼터제를 더욱 확대해 21세 이하 아시아권 선수에 한해서 외국인 보유 제한을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럴 경우 아시아의 유망주를 영입해 육성하면 선수 영입 비용도 줄일 수 있고, 다른 팀이나 리그에 이적시킬 경우 이적료 수익도 거둘 수 있다. 이런 방식은 특히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도민구단이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하다.
한국 축구와 K-리그는 이러한 기회를 놓쳐서 안된다. 이미 유럽과 일본에서는 동남아시아 시장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시장 개척 노력을 펴고 있다. K-리그도 우수한 아시아 선수들의 활용을 통해 이를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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