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8.01 10:58 / 기사수정 2010.08.01 10:58
[엑스포츠뉴스=김현희 기자] 부산고는 올 시즌 청룡기 고교야구에서 4강에 오르며 ‘깜짝 활약’을 펼친 바 있다. 비록 준결승에서 경남고에 분패하며 결승 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김민호 감독은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이르면 내년, 늦어도 2년 안에는 정상을 바라본다는 계획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 왔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좋은 1, 2학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룡기 대회에서 부산고 라인업을 책임졌던 9명의 선수 중 3학년은 네 명(좌익수 박근우, 포수 문휘람, 2루수 진영호, 1루수 박은빈)에 불과했다.
그러나 화랑대기를 앞두고 상황은 달라졌다. 선발타자 9명 가운데 3학년이 두 명으로 줄어들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 눈에는 부산고의 전국대회 우승이 더욱 요원해 보일 뿐이었다. 실제로 부산고는 화랑대기 본선에서 ‘강원의 복병’ 원주고를 비롯하여 ‘디펜딩 챔프’ 개성고 등 만만치 않은 상대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럼에도, 팀 우승을 자신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부산고에서 타격과 수비 지도를 맡고 있는 차정환(30) 코치였다.
“재미있으면서도 조마조마했던 경기 많아”
화랑대기 1회전에서 주전 유격수 정현(16) 없이도 원주고에 콜드게임으로 승리했던 부산고는 8강으로 가는 길목에서 최대의 라이벌을 만난다. 바로 전년도 우승팀 개성고등학교였다. 좌완 에이스 김민식(19)과 발 빠른 포수 강동우(19)가 버티고 있는 개성고는 여전히 우승 후보 0순위였다. 부산고가 16강에서 탈락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때 사실 맹장수술에서 회복한 (정)현이를 투입했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본인이 경기에 출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 어쩔 수 없이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켰지만, 저는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습니다.”
차 코치의 말대로 개성고와의 16강전 승부의 열쇠는 1학년 정현이 쥐고 있었다. 부산고가 낸 두 점이 모두 정현의 손과 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희생 플라이로 선취 득점을 한 이도, 1-1 상황에서 다시 희생 플라이를 기록한 이도 모두 정현이었다. 정현이 타선에서 북치고 장구 치는 동안 마운드에서는 2학년 에이스 이민호가 9이닝을 완투하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다음 상대는 ‘호남의 복병’ 광주 동성고등학교였다.
공교롭게도 부산고는 올 시즌 황금사자기를 포함하여 지난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광주 소재 학교에 승리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화랑대기에서는 유경국(LG 트윈스)이 버티고 있는 동성고에 패하며 1회전 탈락했던 뼈아픈 기억을 안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1학년 선발 김희원과 주장 박근우를 대신하여 출전한 2학년 윤회송의 활약으로 동성고를 7-2로 물리쳤다. 시즌 두 번째 4강 진출.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선전에 모두 박수를 쳐줄 줄 알았다. 그러나 김민호 감독을 비롯하여 차정환 코치는 선수단을 향하여 ‘쓴소리’를 했다.
▲ 동성고와의 화랑대기 8강전 이후 선수들을 향하여 훈시하는 차정환 코치
“사실 시원하게 점수를 낸 것은 (윤)회송이가 친 적시타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 5점은 상대 실수로 얻은 점수였죠. 그런데 이 친구들이 못 쳤다면서 짜증을 내고, 또 얼굴에 싫은 표정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경기 후에 싫은 소리를 좀 했죠.”
김 감독을 비롯한 부산고 코칭스태프가 강조하는 것은 단 하나다. 실수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기 외적인 요소, 즉 ‘학생선수’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차 코치는 8강전 직후 선수들에게 “자기가 못한 것이 있으면, 연습을 통해서 고치면 그만이잖아. 그런데 우리가 언제부터 못 쳤다고, 못 던졌다고 싫은 표정 했나? 나중에 안 보이는 곳에서 자책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라운드에서는 그런 행동 하지 마라!”라며 선수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부터 먼저 가르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기본’을 강조한 코칭스태프의 격려 덕분인지 이후 부산고는 준결승전에서 만난 대전고에 완승한 것을 비롯하여 결승전에서도 상대적 열세를 딛고 북일고에 2-1로 승리하며 2007년 이후 3년 만에 화랑대기를 품에 안았다.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우승이었다.
화랑대기 우승 직후, 차정환 코치에게 무슨 일이?
그러나 차 코치의 화랑대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화랑대기 우승은 오히려 차 코치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대회 전,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미리 밝힌 차 코치의 계획은 ‘여자친구를 향한 프러포즈’였다.
모교인 대구고등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던 차정환 코치는 경주고 야구부를 거쳐 다시 모교로 돌아왔던 2007년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야구부 코치 겸 기간제 체육 교사로 재직중이었던 당시에 한문교사 손강영씨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차 코치는 여자친구와의 첫 만남부터 범상치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좀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도 단 한 번도 도서관에 간 일이 없었습니다(웃음). 도서관이 야구부와는 조금 먼 곳에, 그것도 맨 위층에 있었거든요. 기간제 체육 교사를 할 때 학생 지도서를 받으러 도서관을 찾았는데, 생전 처음 가는 것이라 도서관 찾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에게 겨우 물어물어 갔는데, 거기서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저를 학생으로 알았는지, 대뜸 ‘어떻게 왔니?’라고 말하더군요(또 웃음). ‘기간제 체육 교사로 있는 차정환인데, 학생 지도서 좀 받으러 왔다.’라고 이야기하니까 그제야 무안한 듯 ‘아, 그러세요?’라고 하면서 책을 건네주었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다 그러하듯이 차 코치와 손씨의 만남은 그야말로 ‘친구’와 같았다. 대구구장으로 교사들끼리 단체 관람을 할 일이 있으면, 차 코치가 나서서 표를 구하기도 했고, 교내에서는 서로 스스럼없는 사이로 지내기도 했다. 특히, 손씨가 무거운 책을 운반해야 하는 등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차 코치를 부르곤 했다. 그때부터 서서히 가까워진 둘의 관계는 대구고 박태호 감독으로 인하여 더욱 가까워지게 됐다고 한다.
▲ 차정환 코치의 ‘인생 사’에 있어서 대구고 박태호 감독은 ‘스승이자 아버지’다.
“박태호 감독님께 신세진 일이 참 많습니다. 박 감독님 덕분에 야구부 공식적인 모임에도 많이 갔었고요. 그런데 제가 감독님께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더니, 정식으로 식사 한 번 사신다고 근사한 일식집을 데려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여자친구에게 ‘정환이 잘 부탁한다.’라고, 그리고 예쁜 사랑 하라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감독님께서 차 뒤에서 귀한 술을 한 병 꺼내 오셨습니다. 적당히 마시라고 했는데, 그걸 또 통째로 비워버렸습니다(웃음). 그리고 사실 이런저런 핑계 대면서 훈련도 많이 빼먹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감독님께서 다 알고 계시면서 모른척하고 넘어 가주신 것 같습니다(또 웃음).”
박태호 감독은 차정환 코치가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 늘 곁에 있던 이였다. 모교에서 코치로 일할 때 경주고 코치로 차정환을 정식 추천한 이도 박 감독이었고, 경주고 야구부 해체 이후 다시 그를 맞아들인 이도 박 감독이었다. 차 코치가 그를 ‘은사이자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그 만남이 벌써 수년째 이어져 왔다. 그리고 마침내 부산고가 화랑대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순간 차 코치는 ‘미리 계획한 대로’ 여자친구에게 구덕야구장 정 중앙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선수들이 차 코치와 손씨를 둘러싸고 ‘장미꽃 비’를 선사했던, 평생 기억에 남는 프러포즈였다. 우승 직후까지 그 어떤 일도 예상하지 못했던 손씨로서는 차 코치의 ‘깜짝 선물’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승하고 나면 프러포즈하겠다는 다짐을 지켜서 이제야 속이 시원하네요(웃음).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환한 웃음을 머금고 손씨와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차정환 코치. 지도자 데뷔 4년 만에 거둔 첫 전국대회 우승을 기점으로 ‘또 다른 인생’ 역시 훌륭하게 설계하기를 기원한다.
[사진=차정환 코치 (C) 엑스포츠뉴스 김현희 기자, 대구고 박태호 감독 (C) 엑스포츠뉴스 변광재 기자, 차 코치와 여자 친구 손강영 씨 (C) 차정환 코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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