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자극적이거나 드라마틱하진 않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에 젖어 들고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이야기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한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고 있다.
김광탁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사실주의 연극이다. 간암 말기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건과 가족의 기억하는 지점들을 섬세하게 풀어나간다. 2013년 초연해 2014년 앙코르 공연까지 이어왔다. 제6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으로 2016년 차범석 선생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추모 공연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 네 번째 시즌으로 관객을 맞았다.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의 시골집이 배경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 극의 서술자인 둘째 아들, 며느리, 옆집에 사는 푸근한 정씨 아저씨까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들이 등장한다.
어머니 홍매는 남편에게 온갖 정이 다 떨어졌다고 하면서도 막상 죽는다고 하니 많이 불쌍하고 아프다며 울컥한다. 이북실향민 아버지는 살갑지 못하고 툴툴대는 전형적인 아버지이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에 대한 속내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득하다.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 좋은 회사에 다니는 형 때문에 차별받고 자라고, 자신만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것에 불만이 있지만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가슴 저리게 바라보는 둘째 아들, 푼수 같은 며느리, 한 가족같이 친밀한 이웃 아저씨의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전개된다.
사람 냄새나는 연극이다.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인 노부부, 아버지의 진심을 뒤늦게 깨닫고 마당에서 마지막 추억을 함께하는 아들이 큰 축을 이룬다. 대화와 독백, 방백이 어우러져 먹먹함을 낳는다. 어떻게 보면 뻔해 보이고 결말도 예측할 수 있어 보이지만, 정서적 울림과 흡인력이 뛰어나 몰입하게 한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큰 묘사 없이도 가족이란, 또 삶이란 무엇인지 관객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생사를 앞둔 아버지와 병간호하는 가족의 이야기에 치중하면 극이 무겁게만 흘러갔을 터지만 곳곳에 웃음 코드를 배치해 균형을 맞춘다. 그러나 그 웃음마저도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베테랑 배우의 연기는 감동을 배가한다. 연극계의 기둥 신구와 손숙은 50년 연기 인생의 내공을 발휘한다. 삶의 고뇌와 아픔을 남들에 표현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아버지, 겉은 괴팍하지만 속은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를 먹먹하게 소화한다. 홍매에게 “이건 내 병이 아닌데”라고, 또 아들에게 나약한 모습으로 “나 좀 살려주라”고 흐느낀다. 언제나 강한 존재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늙고 나약해진 아버지를 섬세하게 연기한다.
아픈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아내 홍매를 연기한 손숙도 명품 연기로 감동을 준다. 남편과 티격태격하지만 누구보다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슬퍼하는 홍매와 하나 된 그의 연기는 관객의 눈시울을 붉힌다.
조달환 역시 현실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차남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홀대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죽어가는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는 아들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주책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며느리 캐릭터를 맡은 서은경과 정 많은 이웃집 아저씨 정씨 역을 맡은 최명경도 감초 노릇을 톡톡히 한다.
3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한다. 100분. 만 7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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