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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을 '레전드'로 만들어 준 여섯 장면

기사입력 2010.07.27 08:28 / 기사수정 2010.07.27 08:28

이동현 기자



[엑스포츠뉴스=이동현 기자] '양신' 양준혁(41,삼성 라이온즈)이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난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그는 오는 9월 중 은퇴 경기를 치르고 시즌 종료 후 공식적으로 은퇴할 예정이다.

양준혁은 199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1998년 12월 14일 해태로 트레이드됐고 2000년 3월 24일에는 LG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2002년에는 FA 자격을 얻어 다시 삼성으로 돌아갔다. 정상급 기량을 갖췄으면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 입단

입단 과정부터가 남과 달랐다.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하는 대신 상무행을 택했다. 고향팀 삼성에서 선수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결국 그는 이듬해 삼성 지명 선수가 돼 대구 구장에 서게 됐다. 몸속에 푸른피가 흐른다던 양준혁의 삼성행은 그렇게 결정됐다.

▲ 해태 이적

1998시즌 플레이오프에서 LG에 1승3패로 패퇴한 삼성은 그해 겨울 어마어마한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킨다. 타격은 어느팀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삼성이었기에 투수력 보강에 초점을 맞췄고, 그 대상은 임창용이었다.

1998년 규정 이닝을 채우며 8승7패34세이브 평균자책 1.89를 기록했던 임창용은 당시 최고 수준의 마무리 투수였다. 그를 데려오는 대가로 삼성은 양준혁 카드를 꺼냈다. 양준혁은 갑작스러운 이적에 큰 충격을 받은 듯 은퇴 시사 발언까지 했으나 1999년 3할2푼대의 높은 타율을 기록하며 제몫을 했다.

▲ 선수협 파동

2000시즌에 앞서 야구계를 회오리 속으로 몰아넣었던 선수협 파동. 양준혁은 이른바 '적극 가담 선수'로 분류돼 구단에 미운털이 박혔다. 결국 그는 LG로 트레이드돼 서울에서 뛰게 됐다.

쌍둥이 유니폼도 꽤 잘 어울렸다. 2000년에 타율 3할1푼3리를 기록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고, 이듬해인 2001년에는 타율 3할5푼5리로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당시 LG 사령탑이었던 김성근 감독은 양준혁을 1번 타자로도 기용하는 등 그의 다양한 쓰임새에 주목했다.


▲ 2002년 삼성 우승

FA로 파란색 유니폼을 다시 입은 양준혁은 2002년 타율 2할7푼6리에 머물렀다. 데뷔 후 줄곧 3할대 타율을 기록했던 양준혁에게는 충격적인 성적표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즌에 삼성은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포효했다. 한국시리즈에서 양준혁은 10타수 5안타를 쳤다.



▲ 2천 안타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고지에 양준혁이 올라섰다. 2007년 6월 9일 잠실 구장. 상대는 두산 베어스 이승학이었다. 9회초 마지막 타석에서 그는 초구를 받아쳐 센터 앞으로 날아가는 통산 2천번째 안타를 때렸다. 2천 안타는 그만큼 꾸준하게 선수생활을 했다는 증거였다. 양준혁이 작성한 수많은 개인 기록 가운데 유난히 돋보이는 이정표다.

▲ 마지막 3점 홈런

이보다 더 극적인 피날레가 있을까. 13년만에 대구에서 벌어진 이번 시즌 올스타전에서 그는 그동안 응원해 준 홈 팬들에게 큼지막한 홈런 선물을 안겼다. 6회초 대수비로 출장해 7회말 첫 타석에서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3점 아치를 그려 대구 구장을 뜨겁게 달궜다.

마침 이날 올스타전 경기에 앞서 1980년대 삼성을 이끌었던 '전설'들이 그라운드에 나와 대구 팬들을 만나는 행사가 진행됐다. 바로 이어진 본경기에서 양준혁은 영웅이 됐다. 마치 자신도 이제 '삼성 레전드'의 한 축이 되었음을 웅변하기라도 하듯이.

[사진 = 양준혁 ⓒ 삼성 라이온즈 제공]



이동현 기자 honey@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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