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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전설(海東傳說)5(3) 자존심

기사입력 2006.09.17 00:03 / 기사수정 2006.09.17 00:03

김종수 기자



글: 김종수/그림: 이영화 화백

"끌끌끌…잘한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박현수가 씩 웃었다.
비웃음이 가득 서린 표정이었다.

"웃지 마요.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오기가 피어오른 정차룡은 엉덩이가 아픈 것을 꾹 참으며 성큼성큼 나무숲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몇 번을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달리다가 원안에서 멈추는 것도 쉽지 않았고, 또 거기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제대로 된 자세에서 공을 뿌릴 수가 없었다. 결국 열 개중에서 한 개도 그물주머니를 통과하지 못했다. 아니 근처의 나무판도 맞히지 못했다. 전부 엉뚱한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제 알겠냐? 가만히 서서 공을 던지는 것과 이렇게 뛰어다니면서 던지는 것의 차이를 말이야."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는 정차룡을 내려다보며 박현수가 말했다.

"치이…"

정차룡은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박현수의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왠지 울화통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오호라, 아무 말도 못한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의미더냐?"

"인정은 무슨 인정이에요! 말로만 자꾸 그러지 말고, 할아버지도 직접 해 보라고요. 입으로는 누가 못해요?"

"우유부단한 녀석으로만 알고있었는데 생각보다 성깔도 있는걸… 좋아. 그렇다면 직접 실력으로 보여주지."

박현수는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나무숲 쪽으로 걸어갔다.

'흥! 저런 팔자걸음으로 제대로 뛰기나 하겠어?'

정차룡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박현수를 주목했다.
파파팟.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농구공을 들고 뛰어가는 박현수의 모습은 지극히 빨랐다. 정차룡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타탁.
걸음을 멈춰 원안에 양발을 붙이고 펄쩍 뛰어오르는 동작도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철썩…
공은 정확히 그물주머니를 갈랐다.

'……'

정차룡의 부릅떠진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봤냐? 이렇게 하는 것이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박현수가 말했다.

"치이…운이 좋아 하나 성공한 것 가지고 뭘 그래요."

"끌끌끌…하나 가지고는 인정하지 못하겠다 그것이렷다?"

손가락 끝으로 공을 빙글빙글 돌리며 박현수가 히죽 웃었다.
철썩! 촤악…
박현수가 던진 공은 계속해서 그물주머니를 갈랐다.
던진 열 개중에 실패한 것은 한 구도 없었다.

'도…도대체…'

그제 서야 정차룡의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그려졌다.
약간 호흡이 거칠어 졌을 뿐 그다지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는 박현수였다.

"봤냐? 난 말이야. 말로만 떠드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

"이것이 네 녀석과 나의 실력차이이다. 아니지, 아니야.  다른 여러 가지를 해봐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니까 그 차이는 하늘만큼 땅 만큼이라고 할 수 있겠지. 끌끌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잔뜩 뿔이 난 정차룡이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 정도 인정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박현수의 이죽거리는 말투를 들어볼라치면 괜스레 알 수 없는 반발심이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니?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고도 내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하느냐? 무슨 되 먹지도 않은 똥 고집인지 모르겠군."

"이제 보니 할아버지는 맨날 그것만 연습했죠? 그러니까 잘하는 것이죠. 농구는 그런 광대 놀음 같은 것이 아니라고요."

"광대놀음? 지금이게 광대놀음이라고…? 그럼 네 녀석이 생각하는 농구는 뭔데?"

"노…농구요. 그러니까 농구란…"

"이 녀석아. 인정할 때는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사내야. 할말도 없으면서 끝까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무슨 경우냐?"

"거리만 봐도 그렇잖아요. 시합장보다도 더 먼 곳에서 뛰어와서 이렇게 작은 원에 발을 넣고 뛰어올라 공을 쏘는 것이 농구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어쭈…할말이 없으니까 별 트집을 다잡는구나. 실제로 경기를 펼칠 때 상대방의 수비가 얼마나 강력한지 몰라서 이런 멍청한 질문을 하는 것이냐? 네 녀석이 아무리 공을 정확하게 쏜다고 해도 상대가 거칠게 막아서면 바늘 구멍 만한 틈이나마 제대로 포착하기 쉬울 것 같으냐? 거기다가 매순간 전력으로 몸을 움직이다보니 숨은 얼마나 가빠오고, 아마 경기가 격렬하게 진행될 때는 수비가 붙지 않아도 체력 때문에라도 공 던지기가 용의 치 않을걸…"

구구절절 이어지는 박현수의 말은 정차룡의 입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날 사부 님이라고 깍듯이 인정해주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주겠다. 어차피 네 녀석 같은 둔재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돼.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지. 어떠냐? 괜찮은 제안 아니냐? 끌끌끌…"

"사…사부님요?"

"그래, 네 녀석 입장에서는 수지맞는 거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내가 왜 할아버지를 사부 님으로 모셔요!"

고함을 벌컥 내질러 보인 정차룡은 농구공을 집어들고 자신의 거처 쪽으로 걸어갔다. 기분이 완전히 엉망이 된 상태인지라 연습이고 뭐고 다 귀찮아진 것이었다.

"후회할텐데…"

등뒤로 박현수의 말이 이어졌지만 정차룡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괜히 나타나 가지고 멀쩡한 사람 기분 잡치게 만들고있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박현수를 인정하기 싫은 정차룡이었다.

※ 본 작품은 프로농구잡지 월간 '점프볼'을 통해 연재된 소설입니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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