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2.19 11:15 / 기사수정 2010.02.19 11:15
[엑스포츠뉴스=조성룡 기자] 축덕후를 아십니까.
축덕후는 축구와 오덕후(오타쿠)의 합성어로 축구와 관계된 것들을 '심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축덕후, 그들을 야심차게 찾아 나섰다. 그 첫번째 이야기, 여성들이 처음 축구에 입문하게 되는 많은 경우인 '선수팬' 이야기다.
요즘 K-리그 신인 중에 단연 오재석은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다. 그의 재미있는 어록과 친절한 팬서비스는 수원 팬 뿐만 아니라 다른 축구팬들에게도 호감을 사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어떻게 데뷔전도 치르지 않은 프로 선수가 국가대표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까?'
한 지인이 내게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오재석이 그렇게 관심 많이 받은 건 아마 오재석 팬 하나가 인터넷에다 오재석 홍보를 많이 해서 그럴걸? 걔 때문에 오재석 알게 된 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이렇게 헌신적인 소녀팬, 찾아보기 드문 케이스일 것이다. 과연 이 소녀는 누구일까.
그 주인공은 바로 광주에 사는 이시영씨(가명·20). 오재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8년 9월 19일.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그녀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몰래 DMB로 TV를 보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이것이 그녀를 바꾸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날 대한민국 U-19 대표팀은 아르헨티나와 친선 경기가 있었다. 한창 경기를 보던 그녀에게 눈에 띈 6번 선수. 그는 수비수였다. 여고생에게 시원하게 골을 넣는 공격수도 아닌 수비수가 보였다는 것은 운명일까, 그렇게 그녀는 오재석을 알게 되었다.
경희대학교 신입생 오재석, 아직 유명하지 않은 탓에 팬의 존재는 매우 신기했고 또 중요했다. 그저 그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겠지만 몇 년 후, 그 어린 여고생이 그의 인지도를 놀라울 정도로 높여놓을 줄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오재석과 더불어 그녀가 알려진 것은 2009년 7월이었다. 한창 수능에 몰두하고 있어야 할 고3 수험생 이시영은 공부 대신에 한 축구 커뮤니티에서 오재석을 알리는 작업에 몰두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네티즌들도 차츰 '도대체 걔가 누구야?'하며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네티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일부 기자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그들 또한 오재석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이후 맹활약을 펼치는 오재석을 세상에 소개하게 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마침 그때는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대표팀이 이집트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에 나가기 직전, 오재석도 대표팀의 당당한 일원이었고 홍명보 감독의 데뷔 무대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참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의 활약은 그녀에게 몽땅 스크랩되어 오재석의 생일 선물로 보내졌다.
모두가 알다시피 오재석과 청소년 대표팀은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어냈고 얼마 후 열린 K-리그 드래프트에서 오재석은 수원에 1순위로 지명되는 영광을 누린다. 한 지인이 내게 농담조로 이런 말까지 했다. "차범근 감독이 걔 글 읽어본 거 아니야?"
얼마 전 오재석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말 특이해요, 열정이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요. 그런 팬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죠." 물론 그의 실력과 노력이 없다면 그가 이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만을 가지고는 유명해질 수 없는 법. 오재석에게 그녀는 천운 같은 존재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시영 씨에게 오재석에게 바라는 것을 물어봤다. '나와 결혼해줄래' 같은 대답을 예상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오재석에 대한 그녀의 무한한 지지를 묻어냈다. "긍정적인 마음과 최선을 다하는 초심을 유지해주길, 그게 오재석에 대한 저의 바람입니다"
선수를 응원하면서 축구를 좋아하게 되는 여성들은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명 '빠순이'라는 낙인을 찍고 그들을 바라본다. 뭐 어떤가, 선수를 좋아해도 구단을 좋아해도 결국은 다 같이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이거늘, 그들 또한 진정한 '축구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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