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11.09 03:15 / 기사수정 2009.11.09 03:15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곽)민정이는 정말 재능이 뛰어난 선수입니다. 국내 선수들은 스핀과 스파이럴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민정이도 예외는 아니죠. 거기에다가 점프의 회전력도 아주 좋아요. 점프는 타고난 면이 있어야 하는데 도약하는 탄력도 뛰어나고 나머지 기술들도 좋은 편입니다. 게다가 똑똑한 머리도 큰 재능 중의 하나죠"
한국 피겨계의 원로이자 1세대 선수였던 이인숙 국민생활 전국스케이팅연합회장은 곽민정(15, 군포수리고)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8일부터 9일까지 노원구 태릉 실내아이스링크에서 벌어진 '2009 회장배 전국남녀 피겨 스케이팅 랭킹전'은 올림픽에 진출할 단 한 명의 여자 싱글 선수가 결정되는 대회였다.
지난 시즌까지 회장배 랭킹전과 전국종합선수권을 휩쓴 김나영(19, 인하대)과 '시니어 여자 싱글의 숨은 진주'인 김채화(20, 일본 간사이대), 그리고 김현정(17, 군포수리고)등이 유력한 올림픽 진출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올림픽 티켓은 만 15세의 곽민정(15, 군포수리고)에게 돌아갔다. 곽민정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다른 선수들을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제쳤다.
1994년 1월 23일에 태어난 곽민정의 나이는 만으로 15세 10개월이다. 올림픽 출전 연령인 만 15세를 넘은 곽민정은 국내 피겨 선수로는 역대 최연소 선수로 참가하게 됐다.
그러나 올 시즌에 치러진 국제대회에서 곽민정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2009 ISU(국제빙상경기연맹) 피겨 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 미국 레이크 플레시드 시리즈'에 참가한 곽민정은 108.21의 점수로 11위에 머물고 말았다.
곽민정은 작년 여름에 벌어진 '2008 주니어 그랑프리 멕시코시티 3차 시리즈'에서 117.42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국내 주니어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상승세를 이어가던 곽민정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연기 중, 잦은 실수를 범한 곽민정은 프로그램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했다. 연습 때는 잘하지만 실전에 들어가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주변의 소리도 들려왔다.
"실전에서 연습만큼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조금은 속상했어요. 하지만, 이번 랭킹전을 대비해 정말 많은 훈련을 소화했습니다.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제가 연습했던 것을 믿고 시합에 임하게 됐죠. 이러한 자세가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김연아 이후, 한국 피겨 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곽민정의 연기
8일 벌어진 '전국 피겨 스케이팅 랭킹전' 여자 싱글 시니어(만 13세 이상)부 프리스케이팅에 참가한 선수들 중, 곽민정은 가장 마지막에 링크에 나타났다. 전날 있었던 쇼트프로그램에서 53.99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곽민정은 확실히 성장해 있었다.
곽민정은 자신의 장기인 트리플 러츠 뒤에 '더블 토루프'를 붙여 콤비네이션 점프를 구사했다. 안정된 점프를 구사한 곽민정은 7.30의 기초점수에 가산점도 챙겼다. 다음 과제는 '트리플 플립'이었다. 러츠에 일가견이 있는 곽민정은 상대적으로 플립에서 약점이 나타나고 있다. 랜딩에는 성공했지만 이 점프에서 곽민정은 롱에지(e로 마크 : 잘못된 점프)를 받았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진 더블 악셀 + 더블 토루프로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체인지 콤비네이션 스핀에서 '레벨 4'를 기록한 곽민정은 단독 트리플 러츠를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급상승시켰다. 한층 나아진 스파이럴 시퀀스에서 레벨 4를 받았지만 두 번의 트리플 살코에서는 다운 그레이드를 받았다.
그러나 한결 나아진 스텝 뒤에 더블 악셀을 성공시켜 가산점을 얻는 데 성공했다. 플라잉 싯 스핀에서 역시 레벨 4를 받은 곽민정은 프리스케이팅을 깨끗하게 마무리 지었다.
150여 명이 꽉 들어찬 태릉 실내아이스링크는 환호성으로 들끓었다. 링크에는 선물 세례가 쏟아졌고 곽민정의 연기를 본 피겨 관계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19, 고려대) 이후, 이 정도의 난이도를 지닌 프로그램을 깔끔하게 연기했던 선수는 드물었다.
곽민정은 한국 피겨 여자 싱글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트리플 점프는 물론, 콤비네이션 점프와 고난도의 스핀 등이 섞인 프로그램을 김연아가 등장한 이래 이 정도로 소화한 선수는 없었다.
많은 피겨 관계자들은 "한국 피겨에 경사가 일어났다"며 곽민정의 연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트리플 플립이 롱에지를 받았고 트리플 살코가 다운그레이드 됐지만 곽민정의 연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쇼트프로그램와 프리스케이팅을 합친 143.87은 주니어 그랑프리 무대에서 메달 권에 들어갈 수 있는 점수다.
이제 겨우 만 15세의 곽민정을 생각할 때, 발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게 열려있다.
재능도 많았지만 실패도 겪었던 스케이터, 이제 극복하는 일만 남았다
2008-2009시즌을 보낸 곽민정은 지난 시즌을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시즌을 돌이켜 볼 때, 만족할만한 점은 없었어요. 성적을 떠나서 프로그램 자체를 단 한 번도 깔끔하게 연기하지 못했었죠. 이 점이 가장 아쉬웠는데 새로운 시즌에 연기할 프로그램은 완벽하게 연기했으면 좋겠습니다"
곽민정은 오랫동안 실전 무대에서 만족할만한 연기를 펼치지 못했다. 연이은 실패로 인한 자신감 결여와 컨디션 난조는 곽민정의 발목을 잡았다. 김나영와 김현정 등이 국내무대에서 분전하고 있을 때, 곽민정은 '가능성이 큰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곽)민정이를 가르치고 느낀 점은 재능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었어요.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습득 속도가 매우 빨랐다는 점입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좋은 일도 있었지만 실패도 있었어요. 이러한 점을 극복하고 일어나는 것이 민정이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곽민정을 다듬고 피겨의 세계로 인도해준 이는 바로 이규현 코치였다. 곽민정은 이규현 코치를 떠나 다른 지도자들 밑에서 스케이트를 배웠지만 최근, 다시 자신의 첫 스승에게 돌아왔다.
곽민정은 올림픽에 참가한 점도 좋았지만 큰 실수 없이 프로그램을 마무리한 점에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다. 프리스케이팅 곡인 '레미제라블'의 음악에 맞춰 적절한 동선을 그리는 움직임은 예전의 곽민정에게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표현력에서도 곽민정은 성장했다. 또한, 유연해진 스케이팅과 기술의 요소를 연결하는 흐름도 매우 자연스러워졌다. 이 부분에 대해 곽민정은 이렇게 대답했다.
"점프도 중요하지만 나머지 요소들도 발전시키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어요. 자연스러운 동작과 스케이팅에 힘을 많이 쏟았습니다"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스케이터는 연아 언니, 그러나 '곽민정'으로 기억되고 싶다
곽민정 역시 가장 좋아하는 스케이터로 김연아를 꼽는다. 또한, 남자 싱글에도 관심이 많은 곽민정은 예브게니 플루센코(27, 러시아)와 에반 라이사첵(24, 미국)을 좋아한다. 늘 목표였던 올림픽 진출이 일찍 다가온 것에 대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곽민정은 대답했다.
그러나 꿈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곽민정은 현존하는 최고의 스케이터인 김연아와 함께 올림픽에 참가하게 됐다.
"연아 언니와 함께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올림픽에서 대단한 결과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경험을 쌓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곽민정은 김연아 이후에 나온 선수들 중, 남다른 재능을 가진 스케이터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보완해야 할 과제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선, 비거리와 탄력이 좋은 점프의 질을 지금보다 더욱 견고하게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플립을 좀 더 다듬고 살코의 완성도도 높이는 것도 곽민정의 과제이다.
곽민정의 연기가 끝나자 많은 피겨 전문가와 팬들은 흥분했다. 바로 '포스트 김연아'에 목말라 있던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연아가 나름대로 길이 있듯이 곽민정도 자신만이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
벌써 섣불리 곽민정을 '제2의 김연아'로 부르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곽민정이 '포스트 김연아'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김연아 이후,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연기를 깔끔하게 소화한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될 부분이다. 이번 2009 피겨 랭킹전에서 곽민정은 다른 선수들을 큰 점수 차로 제치고 만 15세의 나이에 올림픽에 진출했다. 이 장면은 한국 피겨 역사에 길이 남는 한 페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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