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10.21 19:24 / 기사수정 2009.10.21 19:24
[위클리엑츠=김경주] 빙판에 김연아가 있다면 슬로프에는 서정화가 있다.
2010년 2월 제21회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잠시 귀국한 프리스타일 모굴 스키 선수 서정화(19살)를 청담동 HIPC매장에서 만났다.
서정화는 올해 3월부터 내년 2월까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장학금을 받고 있어 중복지원 문제로 국가대표로 지정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내년 올림픽에서 가장 메달권이 유력한 선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 모굴 스키를 대표할 남매
서정화는 올해 초 일본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세계선수권대회 자유형 여자 듀얼모굴 경기에서 듀얼 7위, 싱글 15위를 기록할 정도로 탄탄한 스키 실력을 갖추고 있다.
당시 서정화는 토리노 동계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랭킹 2위였던 캐나다 선수 제니퍼 헤일과 듀얼 게임에 나서 우승하여 주목을 받았다.
서정화는 2007년 일본에서 열린 스프링 모굴 캠프에서 제니퍼 헤일의 헤드 코치인 도미니크를 만났었다. 그는 서정화의 모굴 턴을 보고 장래에 정말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고 칭찬하면서, 제니퍼 헤일과 기념 촬영도 주선하고 제니퍼와 월드컵 등에서 만나게 되길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불과 2년 만에 서정화가 제니퍼 헤일을 꺾었다는 것은 서정화 자신에게는 물론 우리나라 스키계의 자부심이다.
스키를 취미로 타는 사람은 많지만 이렇게 선수급으로 성장하는 것은 흔치 않다. 서정화가 스키를 타게 된 것은 우리나라 모굴 스키 1세대 마니아라 할 수 있는 아버지인 서원문씨의 영향이었다.
유아용 스키용품을 시중에서 구하기도 힘든 시절, 서원문씨는 그저 딸이 스키를 재미있어 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렵사리 장비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선수가 되려고 일부러 스키를 탄 것은 아니었지만 재미있으면 뭐든 열심히 하는 까닭에 서정화는 국가대표가 되었고, 누나의 영향으로 동생 서명준도 국가대표가 되어 우리나라 모굴 스키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전교 1등, 엄친딸
흔히 공부 못하면 운동시킨다, 운동 잘하는 학생은 공부는 소홀히 한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서정화를 보면 얼마나 좁은 시야에서 본 것인지 알 수 있다.
서정화는 남양주 진건 중학교 시절 줄곧 전교 1등을 했고, 서울 외고에 진학하여 법관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현재 미국 남가주대학(USC)에 재학 중인 서정화는 일리노이주립대(Urbana-Champaign), 조지워싱턴대, 뉴욕대(NYU), 에모리대학까지 총 5개 대학에 동시에 합격하기도 한 재원이다.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데 공부만 하지, 혹은 스키만 하지 왜 힘들게 공부와 스키를 병행하느냐는 질문에 서정화는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하나의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자신은 스키라는 길을 일찌감치 찾았고, 거기에 더하여 앞으로 하나의 길을 더 갈 것이니 행복하단다.
현재 서정화의 전공은 '휴먼 퍼포먼스'로 인간의 신체 능력을 최대화하는 것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명랑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서정화는 매사에 있어 차분하고 침착하며 진지하게 대한다. 스키를 타듯 학과 공부를 하고, 학과 공부를 하듯 스키를 타며 양쪽 실력 모두 차근차근 다져온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다.
후원 적어 전문적이고 집중된 훈련 아쉬워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나라에서 스키선수들에 대한 지원은 많지 않다. 서정화는 작년 국가대표 시절 연간 3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 장학금으로 현재 매월 1500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 년에 수차례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월드컵대회와 2년에 한 번씩 있는 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비용을 대기에도 벅차다.
훈련비는 당연히 개인 부담. 서정화가 중학교 3학년 시절, 가능성을 본 이케다 야쓰시 일본 주니어대표팀 코치가 먼저 개인코치를 제안했지만 함께할 수 없었다.
대신 서정화는 철저한 자기주도적 훈련을 하고 있다. 연 5만 달러의 장학금을 주는 조건의 조지 워싱턴 대학을 포기하면서 USC를 간 이유는 스키 때문이다.
스키장과 가까운 서부에 위치했고, 체육시설과 프로그램을 많이 갖추고 있어 학과 공부를 하면서도 스키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환경이다.
턴과 순발력이 뛰어난 서정화는 머리가 좋아 이해력이 빠르고 표현력이 좋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장기간 집중훈련을 받지 못하다 보니 체력이 부족하여 점프가 다소 미흡한 상태.
학기 중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스키장 폐장 기간인 여름에는 트램폴린과 수영장 워터 점프대에서 공중 동작 훈련을 반복했다.
11월 한 달간은 매주 금토일 사흘간 스키 연습을 하고, 12월부터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1월 말까지는 월드컵대회에 참가하여 실전에 대비할 예정이다.
국내외 업체 후원 이어져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외 스키업체에서 장비 등을 지원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슬레이트, 바인딩, 부츠, 폴 등 다양한 장비가 이용되는 스키는 실력을 다지는 것만큼이나 자신에게 딱 맞는 장비를 갖추는 것이 필수. 실력과 상관없이 부상을 당하기 쉬운 종목이고, 부상을 입을 경우 훈련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에 부상을 방지할 수 있도록 부츠를 올바르게 선택해야 한다.
서정화는 이번 귀국 직전 일본에 들려 렉삼(REXXAM) 크로스 9.0 230mm 부츠를 후원 받아 왔다. 그리고 귀국하자마자 HIPC 매장의 신데렐라핏코리아(CFK) 피팅센터로 향했다.
올해까지 세 시즌 연속 서정화는 CFK 피팅을 받고 있다. 핀란드 성형 스키 부츠 브랜드인 '신데렐라핏'으로 아웃셀을 교정하고, 기존의 이너부츠 대신 우레탄폼을 주입하여 발을 감싸 안도록 제작한 맞춤 이너부츠를 삽입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풀커스텀(Full custom) 인솔인 '붓닥(Bootdoc)'을 이용하여 발의 아치를 탄탄하게 받쳐주고, '부스터스트랩'으로 부츠의 탄성을 더 좋게 만들어 주었다. 아웃셀, 이너부츠, 인솔 피팅과 부스터스트랩 장착은 발을 편안하게 하고 피로를 덜 느끼게 할 뿐 아니라 턴이나 점프를 할 때의 반발력과 충격을 줄여줘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된다.
2010년 동계올림픽, 메달 기대
발이 작고 발볼이 좁으며 살이 없고 다리가 날씬한 서정화는 그간 작은 부츠를 구하기 어려워 240mm의 다소 헐거운 부츠를 신어왔다. 사실상 이번 시즌 처음으로 가장 자신의 발에 잘 맞는 부츠를 신게 되었다.
CFK 피팅센터에 기록된 서정화의 3년간의 풋밸런스와 자세를 보면 올해가 가장 이상적이다. 꾸준한 인솔 착용과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한 근력 강화 덕분으로 추측된다.
지금 추세로만 간다면 서정화의 밴쿠버 메달 가능성은 상당히 커보인다. 특히 여자 모굴 스키의 전성기가 20대 중반 이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하계올림픽에 비해 메달이 귀한 동계올림픽에서 서정화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모굴 스키란?
모굴(Mogul)은 여러 사람이 스키를 타고 슬로프를 달리는 동안 눈이 패여 한 곳으로 쌓이는 일이 반복되면서 작은 언덕처럼 울퉁불퉁하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
모굴 스키는 인위적으로 모굴을 만들어 놓은 슬로프에서 점프와 턴 기술을 이용하여 타는 프리스타일 스키의 한 가지이다. 심판이 점수를 매기는 '싱글'과 두 명의 선수가 대결하는 토너먼트 형식의 '듀얼' 두 종류 경기가 있다.
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에는 싱글과 듀얼 모두 있으며, 올림픽에서는 싱글 경기만 있다.
모굴 스키는 1992년에 열린 제16회 동계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현재 에어리얼 스키와 함께 프리스타일 스키의 한 종목으로 치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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