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8.24 06:12 / 기사수정 2009.08.24 06:12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지난 6일부터 7일까지 경기도 김포시 김포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제22회 회장기 전국리듬체조선수권대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선수는 '리듬체조 미소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손연재(15, 광장중)와 '국가대표 에이스'인 신수지(19, 세종대)였다.
신수지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본선에 출전하며 리듬체조의 존재를 알렸다. 반면, '리듬체조의 김연아'로 불리는 손연재는 뛰어난 실력과 대중들의 인지도를 확보하며 최고 유망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리듬체조를 논할 때, 이경화(21, 세종대)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7년간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경화는 가장 꾸준하게 자리를 지켜온 '리듬체조계의 맏언니'다. 신수지가 부각되기 이전, '국가대표 에이스' 자리를 지킨 이경화는 이번 회장기대회에서 5관왕(단체전, 시니어 줄, 볼, 후프, 리본)에 올랐다.
이경화는 이번 회장기대회에서 시니어 종목 부분을 석권했다. 비록, 신수지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기권을 했지만 이경화는 국가대표인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이번 회장기 대회를 앞두고 연습이 잘됐었어요. 컨디션도 좋아서 자신감이 넘쳤는데 7일 벌어진 종목별 결선을 앞두고 허리에 담이 걸렸어요. 첫 종목을 마치고 난 뒤, 통증이 매우 심해져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었죠. 하지만, 경기는 끝까지 마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끝까지 임했습니다.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와서 만족하고 있어요"
특별한 재능보다 노력으로 일구어낸 '태극 마크'
8살 무렵, 이경화의 눈에 비친 리듬체조 경기는 매우 신기하게 보였다. 볼과 곤봉, 그리고 리본과 후프 등 다양한 수구를 가지고 현란한 연기를 펼치는 선수들이 매우 예쁘게 보였다. TV 브라운관에 비친 리듬체조를 본 이경화는 어머니에게 저 종목을 배우게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때마침, 이경화의 어머니도 딸에게 리듬체조나 피겨 스케이팅, 혹은 발레와 같은 운동을 시킬 마음이 있었다. 무남독녀인 이경화에게 운동의 길을 권유한다는 점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예쁜 운동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많은 기대를 하고 리듬체조 매트를 찾았지만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매일 하는 스트레칭은 고통스러웠다. 유연성 강화를 위해 팔다리를 늘리고 상체를 누르는 훈련에 이경화는 매일 눈물을 쏟았다. 너무나 힘든 훈련 때문에 잠시 매트를 떠났지만 이경화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유연성 강화 훈련이 얼마나 아픈지, 처음에는 살려달라고 소리칠 정도였어요. (웃음) 제가 지금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후천적인 노력'이 컸어요. 어릴 때는 키도 매우 작았고 유연성도 그리 좋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인해 리듬체조에 적합한 체형이 만들어지고 유연성도 많이 좋아졌어요"
실제로 이경화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매트에서 보낸 '연습벌레'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이경화는 아침 9시에 훈련을 시작해 저녁 9시까지 훈련에 매진했다고 털어놓았다.
"훈련에 푹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어요.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매트에서 보냈었죠. 그때는 국가대표가 되어야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체육관의 문을 여는 것은 물론, 저녁에 문을 닫는 일이 제 일상이었죠. 그러한 노력 덕분에 기량이 많이 향상됐어요. 중학교 3학년 때 태극 마크를 달았는데 그 성취감은 매우 뿌듯했죠"
이경화는 신언진(20)과 함께 국제대회에서 한국 리듬체조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신수지가 시니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 '국내 1인자'로 활약했던 이경화는 '특별한 재능'보다 '끊임없는 노력'이 오늘날의 자신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중고교 시절, 오로지 훈련밖에 모르고 살았던 이경화에게 '방황기'가 찾아왔다. 세종대에 입학한 이경화는 성인이 됐다는 사실과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자유'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 있었다.
"대학생이 되니까 '자유'를 누려보고 싶은 마음이 매우 커졌어요. 리듬체조의 이외의 다른 인생도 알고 싶었던 거죠. 다른 곳에 관심이 가고 한눈을 팔게 되니 자연스럽게 훈련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게 됐어요. 게다가 부상까지 발생했죠.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열정도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이런 모습을 보신 송희 코치님은 호되게 질책하셨고 그 자리에서 짐을 싸고 통곡을 하면서 체육관을 나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웃음)"
그러나 방황은 길지 않았다. 10년 넘게 해온 리듬체조는 이경화의 몸에 배어있었고 수구를 만지고 싶은 충동도 매우 강했다. 결국, 새롭게 마음을 먹고 다시 시작한 이경화는 국가대표의 자리를 지켰고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비롯한 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경화를 이끌어준 은사는 송희 코치였다. '나에겐 두 번째 어머니'라고 스스럼없이 밝힌 이경화는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을 이끌어준 송희 코치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송희 코치님과 잠깐 헤어졌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절 가르쳐주신 선생님과 헤어지니 많이 섭섭했었죠. 또한, 훈련환경도 변해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결국, 반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됐어요. 송희 선생님은 평소에는 매우 엄격하게 지도하시는 스타일이세요. 그동안 함께하면서 야단도 많이 맞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죠. (웃음) 하지만,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제가 이 정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를 지도해 주시는 김지희 코치님에게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은퇴를 눈앞에 둔 상황, 그러나 수구를 쉽게 놓고 싶지 않다
이제 세종대 3학년인 이경화는 선수 이후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할 시점이다. 원래부터 선수생활을 오랫동안 하고 싶었지만 새로운 삶을 선택할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한 것은 없어요. 만약 대학 졸업 뒤, 선수생활을 마감한다면 어학공부에 열중하고 싶어요. 그동안 선수로 뛰면서 실전적은 부분은 많이 배웠지만 '이론'에 대한 공부도 하고 싶습니다. 만약, 대학 졸업 뒤에도 계속 선수생활을 한다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것 같아요. 대회에는 일반인 자격으로 출전할 것 같습니다"
이경화는 그동안 관중이 많이 모인 상황에서 국내대회를 치러보지 못했다. 작년에 있었던 국내대회의 관중의 대부분은 선수들의 학부모들뿐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열린 회장기대회는 더 이상 학부모들만이 모인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다. '텅 빈 관객석'이 아닌 무대에서 국내 시합을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올림픽에 진출한 신수지의 선전과 손연재라는 인기선수가 등장하면서 리듬체조에 대한 관심은 점점 상승하고 있다. 대중들의 관심이 무르익어가는 시점에서 이경화도 '리듬체조의 대중화'를 위해 공헌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7년 동안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해온 이경화는 지금 시점에서 은퇴를 하면 적지 않게 섭섭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신)수지와 (손)연재가 주목을 받으면서 리듬체조의 인기가 올라가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죠. (웃음) 그동안 학부모님들만 모인 체육관에서 경기를 해왔는데 이번 달 초에 벌어진 회장기 대회 때,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많은 분이 찾아주신 경기장에서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어요"
이경화는 현재까지 선수생활을 하면서 큰 부상으로 고생했던 적이 드물었다고 밝혔다. 또한, 작년부터 이경화는 백일루션(한쪽 다리를 머리로 올린 뒤, 수직으로 원을 그리는 기술)을 구사하고 있다. 신수지가 구사하는 '장기'로 알려져 있는 백일루션을 이경화는 실전경기에서 4회전 구사하고 있다.
또한, 7월 달에 벌어진 유니버시아드대회와 회장기전국대회에서 이경화는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펼쳤다. 쉽게 은퇴를 결정하기에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이경화는 "신중하게 생각한 뒤, 결정하겠다"라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 밝혔다.
어느 종목이건 대중들 앞에서 화려하게 부각되는 선수가 있다. 반면, 오랜 세월동안 꾸준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선수도 존재한다. 7년 동안 태극 마크를 달고 한국리듬체조를 대표해온 이경화는 리듬체조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수구를 다루는 기술과, 우아한 동작이 어우러진 점이 리듬체조의 특징이죠. 스포츠이면서도 종합예술적인 측면이 강한데 이러한 점이 리듬체조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하면서 느낀 점은 국내 선수들이 기술적으로는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하지만, 예술성과 정확도에서 아직도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앞으로 이러한 점을 보완한다면 충분히 지금보다 좋은 성과를 낼 거라고 봅니다"
[사진 = 이경화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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