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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s 현장] "고마워·미안해·사랑해·영원히"…H.O.T.는 현재진행형이었다

기사입력 2018.10.14 12:46

박소현 기자

[엑스포츠뉴스 박소현 기자] tvN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처럼, 누군가는 토니부인이고 누군가는 희준바라기였습니다. 멈춰있던 시간이 천천히 다시 흐릅니다.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2018 Forever Highfive Of Teenagers'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이하 H.O.T. 콘서트라고 편의상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1996년 H.O.T.의 인기는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봐도 뛰어난 매력과 캐릭터가 분명한 멤버 다섯명이 커다란 장갑과 털모자를 쓰고 '단지 널 사랑해'라고 하는데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요. 전국의 수많은 '단지'들은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사촌언니 또한 H.O.T. 팬클럽 소속으로 부지런히 플랜카드를 만들고 공개방송과 행사장을 쫓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H.O.T.는 아이돌, 그의 팬들은 아이돌 문화의 효시였습니다. H.O.T.의 멤버들이 생일이 되면 하얀 A4 벽보를 붙여 그들의 생일을 축하하고, 사탕을 나눠줬던 순심(純心)을 기억합니다. 그때 제게 그 생일을 알려주던 6학년 언니들이 이제는 콘서트가 열리는 지하철역 입구와 광고판을 H.O.T.로 화려하게 도배하는 멋진 어른들이 됐습니다. 

교육청에서 H.O.T. 공연으로 조퇴가 잦아지는 것 때문에 '조퇴 금지령'을 내리고, 지하철이 H.O.T. 콘서트 때문에 연장운행을 할 정도였으니 그 시절 H.O.T.의 인기와 파급효과를 더이상 열거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예상대로 주경기장은 하얀 우비를 입은 행렬로 가득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은 아이돌 팬덤에서 입는 경우가 드물지만 우비는 좋은 단체 아이템이었던 것 같습니다. 흰 우비를 입은 사람을 보면 겉으로는 티내지 않아도 '우리는 같은 마음을 갖고 있구나' 안심이 되고 괜히 친숙해지죠. 쉼없이 불어 흔들던 하얀 풍선대신 모두들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서 구매한 원격제어형 야광봉을 손에 쥐었습니다. 후드티며 모자며 굿즈도 가득 품에 안았죠. 


H.O.T.는 한류 1세대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만큼, 이날 콘서트 현장에도 상당수의 중화권 팬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중국에서 온 남자팬은 아예 등에 H.O.T.라고 쓴 하얀 후드티를 입고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더군요. 잠실 야구장 편의점에서는 아예 H.O.T. 콘서트 환영 현수막과 함께 H.O.T.의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갔던 신천의 거리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카페 제 옆자리의 여성 또한 H.O.T.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중국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7시 공연을 앞두고서 입장을 시작했습니다. 솔트이노베이션 측에 따르면 3층 맨꼭대기 자리까지도 모두 가득찼다고 합니다. 이날 공연에 참석한 관객수만 무려 5만명에 달합니다. 팬들은 공연장 곳곳에서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의상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캔디' 무대 의상을 따라 입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각 멤버별 컬러로 반팔티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가방에는 '안칠현', '안승호' 같은 명찰을 달고서요. 


공연은 좋았습니다. '전사의 후예'로 열고 'We Are The Future'로 닫았습니다. 혁신적인 가사와 퍼포먼스로 '원조' SMP의 명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Outside Castle', '아이야', '열맞춰' 등을 쉼없이 소화할 줄은 몰랐습니다. 현역 아이돌들도 대개는 오프닝을 3-4곡 한 뒤 숨을 돌리는데 말이죠. 멤버들은 과거 그 시절과 마찬가지로 '아이돌' 이었습니다. 핑크색 탈색머리가 어울렸던 장우혁을 비롯해 조각같은 비주얼의 강타나 여전히 귀여운 토니안 등 2018년이 아닌 1998년 같았습니다. 하얀 슈트와 흔히 '가쿠란'이라 부르는 검정색 교복 의상도 좋았고, 흰 우비를 떠올리게 하는 겉옷까지. 신경쓴 티가 났습니다. 

이어진 솔로 무대도 흥미로웠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곡은 강타입니다. 강타는 'Right Here Waiting'을 감미롭게 선사했습니다. 그 곡은 1998년 9월 18일과 2001년 2월 27일 같은 곳에서 부른 곡이죠. 센스있었습니다.



뭉클했던 건 이재원의 'A Better Day'입니다. H.O.T.가 SM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한 강타와 문희준 그리고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난 장우혁과 토니안, 이재원으로 나뉘면서 많은 아픔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뒤 JTL이 발표한 첫 곡이 'A Better Day' 였고 이 곡을 H.O.T.가 17년 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울려 퍼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는 곡 말미 "H.O.T. 포에버"를 외쳤습니다. 

'너와 나'를 부르면서는 멤버들도 남다른 감회를 드러냈고 팬들도 쉼이 없이 함께 떼창했습니다. '우리들의 맹세'에서는 '기다렸어 H.O.T.'라는 깜짝 슬로건 이벤트도 펼쳤습니다. '환희'에서는 '고미사영'응원법으로 잘 알려진 그 응원도 자연스레 터져나왔습니다. 돌아와줘서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거겠죠. 그럼에도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까지 담긴 '고미사영' 입니다.

완벽하게 재현된 '캔디' 의상은 그때 그 시절처럼 귀여웠습니다. 옷에 달린 인형이 무겁다며 끝끝내 뜯어버린 '리더' 문희준도 그대로였고, '행복'을 부를 때 행복해보이는 H.O.T.의 모습도 그랬습니다. 이들에게 근심이 있다면 상표권 논란 때문에 스스로를 마음껏 'H.O.T.'라 호부호형할 수 없는 것 뿐이었을 겁니다. 물론 팬들이 대신 쉼없이 외쳤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전광판입니다. 전광판은 공연 도중 켜져야 하는 시점에서 켜지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최소한 멤버들이 본 무대에서 멘트를 할 때는 당연히 켜져서 이들을 비추고 있어야 합니다. 잠실 주경기장은 소규모의 단란한 공연장이 아니니까요. 카메라 또한 멤버들의 동선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즐거웠습니다. 헤어지기가 퍽 아쉬운 듯 'Go! H.O.T.!'에 이어 '캔디' 마지막에는 '빛'으로 앙코르 무대를 마무리 했지만 멤버들도 선뜻 무대를 내려가지 못했고, 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10시를 넘어섰지만요. 17년 만에 만났는데 3시간 만에 헤어지는 건 너무 아쉽죠. 멤버들은 팬들과 함께 '빛' 후렴구만 몇 번이고 반복해 불렀습니다.

아쉬운 듯 느리게 팬들이 빠져나왔습니다. "엄마 콘서트 보고 이제 갈게"라는 통화도 들렸습니다. 앙코르 전 전광판에는 '#2019'라는 메시지가 띄워져 있었습니다. 'THIS IS THE MESSAGE FROM H.O.T.'겠죠? 

부디 17년 사이 엄마가 된 소녀에게 13일과 14일이 한 가을밤의 꿈으로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풍선 대신 원격 제어 야광봉도 페어링해서 흔들 수 있고, 더이상 조퇴하지 않아도 되는 걸요.  

sohyunpark@xportsnews.com /사진=솔트이노베이션

박소현 기자 sohyunpark@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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