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5.04 09:01 / 기사수정 2009.05.04 09:01
[엑스포츠뉴스=최영준 기자] 다사다난한 시즌이었다. 하나하나 일일이 살펴보기는 힘들만큼 많은 흥미로운 사건, 놀라운 사건, 혹은 충격적인 사건들이 올 시즌 프로농구를 휩쓸고 지나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 6개월간 펼쳐진 2008-2009시즌을 7가지의 키워드로 압축해서 살펴보았다.
① '스피드' 바람
시즌 전부터 프로농구를 지배했던 화두 중 하나는 ‘스피드’였다. 하승진의 등장과 외국인선수 신장제한 철폐로 ‘높이’ 바람이 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많은 팀들이 선택한 것은 스피드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눈에 띄는 높이를 지닌 하승진, 서장훈, 김주성을 보유한 전주 KCC와 원주 동부를 제외하면 돋보이는 골밑 자원을 보유한 팀이 없었다. 외국인선수 신장제한이 철폐됐다고 해도 정작 장신에 기량까지 갖춘 선수는 쉽사리 찾을 수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최고의 스피드를 선보인 팀은 안양 KT&G였다. 한국 최고의 속공 전개력을 지닌 포인트가드 주희정을 필두로 5명 모두 뛰는 농구의 진수를 보여준 KT&G는 경기당 무려 5.39개의 속공을 기록하며 리그에 스피드 바람을 몰고 왔다. 비록 악재가 겹치며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정상적인 전력을 가동했을 때 KT&G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한때 하승진, 서장훈을 모두 보유했던 KCC도 서장훈 트레이드와 하승진 부상으로 인한 공백이 생기면서 팀 컬러의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새로 영입한 강병현과 추승균이 주축이 된 KCC의 스피드는 강력한 무기가 됐다. 이때의 눈부신 선전은 향후 KCC의 정상 등극에도 밑거름이 됐다.
② 특급 신인
‘괴물 센터’ 하승진을 필두로 한 특급 신인의 등장에 올 시즌 프로농구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술렁였다. 하승진과 김민수, 윤호영, 강병현 등 국가대표 출신이 즐비한 이번 신인들을 두고 ‘역대 최고’라는 평가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올 정도였다.
시즌 중반까지도 기대에 다소 못 미쳤던 이들은 후반 들어 기량을 활짝 꽃피우며 역시 ‘명불허전’임을 입증했다. 그 중심에는 KCC의 우승을 이끈 하승진과 일약 서울 SK의 에이스로 떠오른 김민수가 있었다. 이들은 경기를 치를수록 향상된 기량을 선보이며 다음 시즌을 더욱 기대케 했다.
이밖에 윤호영, 강병현, 차재영 등은 이미 소속팀의 핵심 멤버로 자리잡았고, 9순위로 지명됐던 창원 LG의 기승호와 10순위 울산 모비스의 천대현은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후순위 돌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지난 시즌 소위 ‘황금세대’에 이어 2시즌 연속 특급 신인들의 등장으로 프로농구는 소중한 재산을 얻었다. 이들이 계속되는 맹활약으로 스타의 자리에, 더 나아가서는 향후 프로농구를 빛낼 주역이 되길 기대해본다.
③ 대형 트레이드
지난 12월 19일에는 프로농구를 뒤흔든 대형 트레이드가 발표됐다. 바로 KCC의 서장훈, 김태완과 인천 전자랜드의 강병현, 조우현, 정선규가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된 것이었다. 이전부터 불화설에 시달리던 서장훈과 포지션 중복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던 강병현이 중심이 된 트레이드였다.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는 양 팀에게 윈-윈이었다. KCC는 강병현의 가세로 향후 미래를 얻음과 동시에 스피드를 보강하며 우승까지 차지했고, 전자랜드도 ‘서장훈 효과’를 톡톡히 보며 5시즌 만에 숙원이었던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다.
1월 19일에는 외국인선수간 맞트레이드가 성사됐다. 원주 동부는 레지 오코사를 대구 오리온스에 넘겨주고 크리스 다니엘스를 받아오며 전력 강화를 노렸다. 지난 시즌 우승 멤버였던 오코사는 좀처럼 기존과 같은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도마 위에 오르곤 했었다.
시즌이 끝난 후의 이야기지만, 지난 4월 30일에는 KT&G의 주희정과 SK의 김태술의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두 선수 모두 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포인트가드이기에 이번 트레이드는 더욱 많은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④ 대마초 파동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후반기 프로농구를 강타한 ‘대마초 파동’이 바로 그것이었다. SK에서 뛰던 디앤젤로 콜린스가 대마초 흡입 혐의로 수사를 받던 과정에서 팀 동료인 테런스 섀넌과 KT&G의 캘빈 워너의 이름을 거론하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해당 선수의 소속팀인 SK와 KT&G는 결국 두 선수를 퇴출할 수밖에 없었다. 콜린스는 이미 무릎 부상으로 SK에서 퇴출이 결정됐던 상황. 핵심 전력이었던 섀넌과 워너를 잃은 두 팀은 대체 선수의 부진까지 맞물리며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대마초 파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2002년에도 재키 존스(당시 KCC)와 에릭 마틴(당시 SK) 등이 대마초의 일종인 해시시를 흡입해 문제가 됐던 사례가 있다. KBL에서는 향후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 등 필수 검사 항목을 확대시키고, 이를 시즌 중에도 시행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⑤ 6강 사투
언제나 시즌 막판이 되면 6강행 막차를 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팀이 생겨나지만, 올 시즌은 유독 그것이 치열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2시즌 연속으로 시즌 마지막 날에 가서야 6강 진출팀이 모두 결정되는 피 말리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었다.
더구나 한때는 3위부터 7위까지의 승차가 단 1.5게임에 불과한 상황도 나오는 등 4강 직행팀을 제외하면 줄곧 5~6팀이 순위 다툼을 계속하는 안개 속 형국이 이어졌다. 감독들 역시 입을 모아 “이런 시즌은 처음이다”는 볼멘소리를 할 정도였다.
승부를 펼치는 당사자는 떠올리기조차 싫겠지만, 팬들은 손에 땀을 쥐는 흥미진진한 6강 경쟁 구도에 즐거워했다. 이는 관중 증가로 이어졌고, 시즌 막판까지도 프로농구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⑥ 쏟아진 대기록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 유독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말 가운데 하나는 ‘사상 최초’, 혹은 ‘역대 최초’와 같은 것이었다.
지난 1월 21일에는 프로농구 사상 최초인 5차 연장 승부가 펼쳐졌다. 동부와 삼성은 5차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를 펼치며 수많은 기록을 만들어냈다. 역대 최장 시간 경기는 물론 한 경기 양 팀 최다 득점, 최다 반칙, 개인 최다 출장 시간 등 신기록이 쏟아졌다.
신임 전육 총재가 부임하면서 내세운 ‘미디어 프렌들리’ 정책도 사상 첫 기록(?)을 만들어냈다. 프로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올스타전,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미디어 데이가 개최된 것이다. 각 팀 사령탑과 선수들이 참석해 입담 대결을 펼치며 본 경기의 ‘전초전’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평이다.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의 흥행 성공으로 관중 동원 역사도 새로 쓰여졌다. 정규시즌에는 총 108만 4,026명이 입장하며 신기록을 달성했고, 플레이오프를 포함해 120만 관중 돌파의 금자탑도 쌓았다. 지난 챔피언결정전 4, 5차전에서는 13,000명이 넘는 관중이 입장해 이틀 연속으로 한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이 경신되는 희소식도 들려왔다.
⑦ 이변의 연속
올 시즌은 시작부터 끝까지 ‘이변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즌 전 선두를 독주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던 동부는 예년만 못한 모습으로 4강에 머물렀고,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KCC는 결국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 과정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중하위권으로 분류됐던 삼성과 KT&G는 예상 외의 돌풍을 일으키며 순항하기도 했다. 특히 삼성은 2년 연속으로 준우승을 차지하며 전문가들의 예상을 일축했다. 반면 6강권으로 분류됐던 대구 오리온스는 급격히 몰락하며 9위에 머물렀다.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팀 역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모비스였다. 모비스는 막판 상승세와 동부의 부진으로 깜짝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그 자신이 삼성에게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정규시즌 우승팀이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한 것도 사상 처음 있는 이변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을 승리하는 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다’는 속설도 세 차례나 깨졌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최종전에 승리한 팀은 1차전에 패배했던 삼성과 KCC였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1차전을 내준 KCC가 정상에 등극하며 확률을 뒤집었다.
[코트 비전 - 프로농구 결산 특집]
① '안개 속' 정규시즌…그 누구도 몰랐다
② '이변 속출' PO, 흥행도 대박
③ 08-09 프로농구를 휩쓴 '7가지 키워드'
[사진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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