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4.13 00:03 / 기사수정 2009.04.13 00:03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12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2008~2009 NH농협 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삼성화재가 현대캐피탈을 세트스코어 3-2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승리의 여신이 최후에 미소 짓는 팀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팀입니다. 만약, 4차전에서 삼성화재가 패하고 천안으로 무대를 옮겨 최종 5차전을 치렀다면 현대캐피탈이 유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화재는 이러한 기회를 현대캐피탈에 헌납하지 않았고 4차전에서 승부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한국 남자배구의 양대 산맥인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의 대결은 흥미로운 요소가 여전히 많습니다. 오랫동안 두 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났기 때문에 이 매치 업에 싫증난 팬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두 팀의 승부가 여전히 매력적인 것은 '한국배구의 집대성'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두 팀은 한국 남자배구를 대표하는 두 명장이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냉철한 승부사'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과 '열정의 화신' 김호철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명장입니다. 프로배구 원년에는 삼성화재가 우승했지만 '전천후 외국인 선수'인 숀 루니의 활약과 세계 배구의 흐름을 적절하게 수용한 '토털 배구'를 구사했던 현대캐피탈이 내리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삼성화재의 '조직력 배구'가 현대캐피탈의 '토털 배구'에 내리 2시즌을 내주자 신치용 감독이 세계배구의 추세에 역행하는 배구를 한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그물망 같은 수비와 주포에 의존하는 배구는 케케묵은 '옛날 배구'라는 지적이 삼성화재를 겨냥하고 있었죠. 그러나 진정한 '조직력'의 배구를 향한 삼성화재의지는 끝내 'V3'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삼성화재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주전 선수들과 벤치 멤버들의 실력 차이가 크다는 점입니다. 만으로 33살 동갑인 최태웅, 손재홍, 석진욱과 이제 35세에 접어든 장병철은 은퇴를 눈앞에 둔 선수들입니다. 이 선수들은 10년 이상을 삼성화재에서 동고동락하며 탄탄한 조직력을 완성했습니다.
이 선수들이 은퇴한 다음의 삼성화재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들이 많습니다. 물론, 젊은 선수들은 새롭게 성장시키는 부분이 삼성화재의 가장 큰 과제겠지요. 벤치 멤버가 약하다는 지적은 누누이 있었지만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할 수 있게끔 체력관리에 성공한 부분은 삼성화재가 인정받아야 할 성과입니다.
양쪽 무릎을 모두 수술하고 팀 우승에 큰 공헌을 한 석진욱은 모든 선수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석진욱은 지난 시즌과 올 시즌 플레이를 통해 진정한 '배구도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줬죠. 특히, 동양권 선수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기'와 관련해 석진욱은 더할 수 없는 교과서적인 선수입니다.
많은 이들은 삼성화재가 안젤코의 공격력 때문에 삼성화재가 이길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물론, 결정타를 터트려줄 거포가 부재한 삼성화재의 특성상, 안젤코의 공격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안젤코가 삼성화재가 아닌, 리시브와 세터의 기량이 털어지는 팀에서 뛰었다면 이 정도의 위력은 발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치용 감독은 이 부분을 항상 강조해왔습니다. "안젤코의 기량은 뛰어나지만 안젤코의 공격은 절대로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점이 높고 위력적인 공격이 생산되려면 스파이크를 하기 전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적으로 안정된 리시브가 필요하고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 공격수의 구미를 맞춘 적절한 토스다. 이 과정이 순조롭게 이어져야만 안젤코의 공격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말이죠.
만약 삼성화재가 안젤코를 받쳐주는 거포가 한 명 더 있었더라면 시즌을 한결 수월하게 치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손재홍과 석진욱은 공격에서 모자란 부분을 수비에서 충분히 채워주었습니다. '월드 리베로' 여오현과 함께 보여준 이들의 서브리시브와 디그는 삼성화재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삼성화재의 큰 약점은 높이가 낮기 때문에 한 치라도 집중력이 떨어지면 모든 팀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시즌 도중, 신협상무와 KEPCO45에게 고전했던 경기가 많은 것도 이러한 아킬레스건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삼성화재는 강팀인 현대캐피탈을 만나면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수비가 연달아 나오고 탄탄한 서브 리시브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챔피언 결정전 4차전에서 삼성화재는 불리한 경기를 극적으로 뒤집었습니다. 팀의 '절대적 공격수'인 안젤코는 20점에 못 미치는 19득점에 머물렀습니다. 최소한 안젤코가 30득점 이상을 찍어야만 삼성화재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컨디션 난조와 체력 고갈로 1세트에서는 공격성공률이 30%대에 머물렀던 안젤코 때문에 삼성화재는 주요 득점원을 상실했습니다.
이렇게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선수는 장병철이었습니다. 2세트에서 알토란같은 득점을 올려준 장병철의 활약으로 삼성화재는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비록 3세트를 내줬지만 팀의 '분위기 메이커'인 고희진이 결정적인 블로킹을 성공시키면서 분위기를 급반전시켰지요. 결국, 운명의 5세트에서 승리에 대한 의지와 집중력이 조금 더 높았던 삼성화재가 현대캐피탈을 누르고 V리그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현대캐피탈은 국내 팀들 중, 가장 좋은 선수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양쪽 날개와 중앙의 센터, 여기에 든든한 벤치 멤버에 이르기까지 선수구성을 놓고 본다면 현대캐피탈을 따라올 팀은 없습니다.
벤치 멤버가 약하고 주전 선수들의 노쇠하다는 약점을 삼성화재는 '탄탄한 조직력'으로 극복해냈습니다. 현대캐피탈이 구사하는 '토털 배구'도 위력적이지만 결국, 삼성화재의 '조직력 배구'가 2시즌 연속으로 승리했습니다.
세계 배구의 흐름을 쫓아가려면 스피드와 다양한 패턴을 활용한 플레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높이와 힘에서 절대적으로 유럽과 남미 선수들과 비교해 떨어지는 한국 선수들에게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삼성화재의 배구는 일깨워주었습니다.
현대캐피탈의 다양한 공격패턴과 빠르기를 삼성화재는 끈질긴 수비와 탄탄한 기본기로 이겨냈습니다. 여기에 공격 점유율은 물론, 결정타를 확실하게 책임진 안젤코의 공로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신치용 감독을 프로출범 이후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한 뒤, "밑의 선수들과 함께 10년 전으로 돌아가겠다"라는 의미 있는 발언을 남겼습니다. 젊은 선수들과 새로운 조직력을 완성하겠다는 신치용 감독의 의지는 3번째 우승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사진 = 신치용, 삼성화재 (C) 엑스포츠뉴스DB 강운, 이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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