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4.08 17:10 / 기사수정 2009.04.08 17:10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지난 3월, 100년이 훌쩍 넘는 한국 피겨 스케이팅 역사에 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한국에서 '피겨 세계 챔피언'이 탄생한 것이죠.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라선 김연아(19, 고려대)는 현역 피겨 선수들 중, 자신이 독보적인 선수임을 전 세계에 증명시켰습니다.
그러나 경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올 시즌을 마무리하는 슬로베니아 트리글라프트로피 대회에 참가한 '팀 코리아' 선수들은 모두 값진 성과를 올리고 7일 귀국했습니다. '피겨 신동' 이동원(13, 과천중)은 한국 남자 피겨 선수로는 처음으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남자 싱글 노비스 부분에서 우승한 이동원은 프리스케이팅 TES(기술요소점수)에서 50.91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 점수는 주니어 선수들과 비견될 수 있는 높은 점수였습니다. 이동원은 이제 중학교에 입학한 어린 선수이지만 트리플 5종 점프를 모두 마스터했고 트리플 악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 피겨 챔피언'인 김나영(19, 인하대)도 여자 싱글 시니어 부분에서 귀중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지난 2월 초에 벌어진 캐나다 4대륙 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김현정(17, 군포수리고)도 여자 싱글 시니어 부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올 시즌을 만족스럽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트리글라프트로피 대회는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총 출동하는 대회는 아니지만 이번 대회에는 지난해보다 많은 선수가 참가했습니다. ISU(국제빙상경기연맹) 랭킹 포인트를 높이고 국제대회의 경험을 쌓기 위해 많은 스케이터들이 트리글라프트로피의 문을 두드렸죠. 이러한 선수들 가운데 '팀 코리아' 멤버들은 나름대로 선전하며 소중한 성과를 얻고 돌아왔습니다.
지난해까지 만해도 한국 피겨계에 대한 인식은 '김연아'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연아 이외에 세계 대회에 도전하는 선수들을 꾸준히 늘어가면서 인식이 전환되고 있습니다. '점프 요정' 곽민정(15, 군포수리고)이 그랑프리 주니어 시리즈 3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지난해 말에 벌어진 아시안컵 트로피 대회 여자 싱글 주니어 부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리틀 연아' 윤예지(14, 과천중)도 같은 부분에서 3위를 기록하며 선전했습니다.
김나영은 지난해 11월에 벌어진 국내 랭킹전과 올 초에 벌어진 종합선수권 대회를 휩쓸며 '국내 1인자'의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그러나 국제 대회에서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지요. 심기일전한 김나영은 가장 중요한 대회인 세계선수권에서 나름대로 선전했고 이번 트리글라프트로피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쇼트프로그램에서는 2위와 7점차의 리드를 보이며 세계 대회 첫 우승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자신의 장기인 트리플 러츠에서 실수를 하면서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습니다.
김나영의 어머니인 신금숙 씨는 "이번 시즌, 국제 대회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해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곧바로 트리글라프트로피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일정이 빡빡해 피로도도 쌓였고 현지 적응도 힘들었는데 쇼트프로그램은 무난하게 수행했다. 그러나 프리스케이팅에서 트리플 러츠와 플립에서 실수를 보이며 1위를 내준 것이 아쉽기만 하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김나영은 이번 시즌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큰 성과는 그동안 부진했던 PCS(프로그램 구성요소)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점이었습니다.
또한, 지난해 말, 플립과 러츠, 그리고 룹을 트리플로 완성하며 '트리플 5종 점퍼'가 된 윤예지는 아쉽게도 여자 싱글 주니어 부분 쇼트프로그램에서 잦은 실수를 범해 20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프리스케이팅에서 66.84의 점수를 기록하며 선전한 윤예지는 프리스케이팅 5위로 뛰어오르며 종합 순위 6위를 기록했습니다.
윤예지의 아버지인 윤영로 씨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다음 시즌 목표인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를 대비해 좋은 경험을 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올 시즌도 큰 부상 없이 마무리한 점이 만족스럽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여자 싱글 시니어 부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김현정도 의미 있는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이번 트리글라프트로피 대회에도 함께 간 어머니인 전윤숙 씨는 "4대륙 선수권 이후, 시즌을 마무리할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싶었다. 그래서 트리글라프트로피 대회를 선택하게 됐는데 좋은 성과를 얻어서 만족스럽다. 특히, 현정이가 구사하는 트리플 토룹 + 더블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와 트리플 살코 + 더블 토룹 점프, 그리고 더블 악셀 등이 모두 국제대회에서 인정을 받은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또한, 현정이는 슬로베니아로 출국하기 전, 자신이 잘하는 것을 충실하게 완성하고 싶다는 뜻을 가졌었다. 그래서 현정이의 특기인 스핀에 전념했고 스텝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프리스케이팅 때 구사한 네 가지 스핀에서 모두 레벨 4를 받았으며 가산점도 챙겼다. 직선 스텝에서도 레벨 2를 기록해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다"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번 트리글라프트로피 대회에서 '팀 코리아' 멤버들은 여자 싱글 시니어 부분에서 은메달과 동메달, 그리고 남자 싱글 노비스 부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값진 성과를 올렸습니다. 최근 국내 선수들의 기량이 높아진 가장 큰 원인은 '정확한 기술'을 위한 훈련이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미와 유럽 선수들에 비해 스핀과 스파이럴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한 것도 국제무대에서 주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피겨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우선적으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수반돼야 할 사항은 바로 '안무'에 있습니다. 국내의 재능 있는 유망주들은 기술적인 발전은 빠르지만 안무에 대한 보완이 부족해 애를 먹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술과는 별도로 안무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도 꾸준하게 증가해야 합니다. 어느 선수는 새로운 점프 기술을 장착했지만 오래된 안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완성되면 그것과 어울리는 창의적인 안무도 수반되어야겠지요.
여기에 국내 선수들이 늘 고전하는 스텝에 대한 향상도 필요합니다. 역동적이고 현란한 스텝은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가 됩니다. 또한, 프로그램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요.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느낌을 확실하게 전달하려면 스텝의 발전도 매우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과제는 건강한 몸으로 시즌을 마치는 부분입니다. 이 문제는 모든 선수들과 학부모, 그리고 코치들이 바라고 있는 사항입니다. 김연아가 부상을 극복하고 온전하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큰 요인은 지상 훈련을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지상 훈련은 그저 많은 시간 안에 땀을 빼는 것으로 좋은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선수의 특징에 맞게 체계적으로 구성된 지상훈련이 필요하겠죠. 또한, 부상 방지를 위한 스트레칭과 근력 훈련도 꾸준하게 병행돼야 안전하게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차갑고 딱딱한 빙판에서 몇 시간 동안 어려운 동작들을 취하며 훈련을 하는 점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이러한 훈련을 감당하려면 '기초체력'이 따라야 합니다. 김연아의 어머니인 박미희 씨는 "준비되지 않은 체력을 가지고 빙판에 들어가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빙판에서 소진해야 할 체력이 필요한데 그 부분이 부족하면 결과는 부상으로 돌아오게 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지옥' 같은 한 시즌을 치르면서 국내 피겨 선수들은 시즌 도중, 크고 작은 부상으로 고생했습니다. 그러나 치명적인 부상 없이 온전하게 한 시즌을 마친 부분이 가장 큰 성과였습니다. 이제 다음 시즌을 위한 체력을 비축할 시간만이 남았습니다.
[사진 = 김연아, 김나영, 윤예지, 김현정, 브라이언 오서 (C) 엑스포츠뉴스DB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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