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연상호 감독에게 '염력'은 고민을 거듭했던, 또 그 고민의 결과물들을 녹여낸 도전의 작품이었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처럼 말끔한 상업영화의 스타일로 가기보다는, 발견되지 않은 대중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1월 31일 개봉한 '염력'은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 아빠 석헌(류승룡 분)을 중심으로, 그의 딸 루미(심은경)가 세상에 맞서 상상 초월의 능력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애니메이션에 이어 2016년 상업영화 데뷔작인 '부산행'으로 1156만 관객을 동원하며 단숨에 충무로의 주목받는 감독으로 떠오른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의 성공 이후 영화감독으로의 삶, 또 창작자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지난 달 발간된 그래픽노블 데뷔작 '얼굴'의 이야기를 꺼내자 연상호 감독은 이와 함께 '염력'을 내놓기까지의 시간을 떠올렸다.
"'부산행'이 워낙 잘 되다 보니까 혼란기가 좀 오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런 혼란기요. 어떻게 보면 제가 약간 말끔한 느낌의 상업영화 감독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만드는 작품마다 흥행도 되고 그렇게 돼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던 시기가 있었죠. 어렸을 때부터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괴리가 좀 있었어요. 그러다가 '얼굴'이라는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예전부터 만들고 싶었던 작품이었거든요. 그런데 상업영화에서는 장르성과는 너무 거리가 먼 시나리오였어요. 저 개인적으로 좀 보고 싶은 작품이었기도 해서, 이렇게 작업하게 됐죠. 이 작업을 통해서 마음이 좀 편해진 게 있었어요."
연상호 감독은 많은 팬들이 붙여준, 자신의 별칭이기도 한 '연상호 월드'라는 말을 꺼내며 "아마도 '연상호 월드'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사이비'가 나왔을 때였을 거예요. 사실 어떻게 보면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을 두 편 정도 내놓은 사람에게 붙일만한 이름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전에 제가 했던 단편 작업들까지 포함해서, 좋은 의미의 얘기였던 것 같아요"라고 밝혔다.
이어 "그 이후가 문제였긴 하죠. '돼지의 왕', '사이비'라는 두 작품과 그 다음에 써놓았던 시나리오가 '얼굴'이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인터뷰를 할 때 '실사영화를 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 때마다 '없다'고 했었어요. 두 작품 후 '연상호 월드'라는 말이 생기면서, 저는 당연히 '얼굴'이라는 작품을 해야 맞다고 생각했죠. 그게 지금까지 단편들부터 쭉 해왔던 제 작업의 일관성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울역'과 '부산행'이라는 영화를 하면서 조금 달라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상업 영화, 실사 영화를 해 볼 생각이 없었는데 하게 됐고 그렇게 되면서 제가 처음에 영화를 하려고 했던 어떤 의도와는 많이 다른 일들이 생기더라고요"라고 말을 이었다.
연상호 감독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일들은 엄청난 흥행과 해외에서의 뜨거운 반응 등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할리우드에서도 미팅을 하자고, 이런 일들이 생기니까 저 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요"라고 천천히 되짚은 연상호 감독은 "그래서 '얼굴'이라는 만화, '염력'이라고 하는 영화를 찍게 된 것 같아요. '부산행'을 하기로 했을 때, 제가 그동안 쌓아왔던 무언가를 깨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거든요. 그런데 이 '부산행'이라고 하는 영화가 단 한 편 만에, 그 이전에 쌓아왔던 것보다 더 큰 것을 만들어버린 것이죠. 흥행감독이라든가 하는 여러 가지 타이틀처럼요"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너무 빠른 시간동안, 어떻게 보면 연상호라고 하는 이름이 일종의 브랜드화가 돼버린 것이죠. 단편, 독립 장편 영화 두 편을 한 상태에서요. '부산행'이 나오고 나서도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이 사실은 제 영화가 많은 관객이 들지는 않았음에도 '내가 알던 연상호와는 다르다'였거든요. 강박 같은 것들이 분명 존재했었던 것 같아요. '전혀 다른 것을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이고, 그게 '염력'이라는 결과로 나온 것이죠. 아마 대부분의 어떤 감독들도 이런 영화를 만들 기회를 얻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에요. 저도 그걸 알죠. 제가 앞으로 영화를 계속한다고 하더라도 이걸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연상호 감독은 지금의 '염력'이라는 결과물이 좋다고도 얘기했다.
"당시에도 상업적으로는 좀 위험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중간에 한 번 고쳐 본 적도 있었죠. 결론적으로는 이 영화가 '부산행'처럼 말끔한 상업영화의 스타일로 가기보다는 다른 걸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리고 그게 대중성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했고요. 단지, 발견이 되지 않은 대중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분들이 그 의견을 존중해주셔서 가보게 됐죠."
연상호 감독은 '염력'에 대해 "어려운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편한데 좀 불편한 영화라고 해야 할까요. 보시고 나서 '이런 영화가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고, 한참 뒤에 그 생각을 하면서 받았던 느낌들을 환기할 수 있는 그런 측면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는 생각을 함께 전했다.
평소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이 담아놓은 메시지를 관객이 발견해주는 것을 염두에 둔다고 전한 연상호 감독은 "비중을 두지만 그것에 아주 집착하지는 않아요. 발견되기를 원하지만,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모든 영화의 의미는 발견돼야 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죠"라며 '사이비'의 오프닝 장면을 예로 들어 외국의 한 평론가가 글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정확히 짚었던 점을 언급했다.
"영화가 재생산되거나 회자되는 과정에서 생명을 갖는 게 사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돼지의 왕'의 경우 1만9천 명 정도가 봤는데, 정말 적은 사람들이 본 것이지만 어쨌든 그 영화는 그렇게 생명력을 가지고, 제가 계속 작업을 하는 한 제 작품으로서의 역할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아요. 한국의 시스템 내에서 단기적인 흥행의 목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재미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늘 꾸준히 작업을 할 뿐'이라고 얘기한 연상호 감독은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에요.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지도 않고요. 늘 계속 꾸준히 하는 것일 뿐이죠. 애니메이션을 하다 보니, 실사 영화가 몇 개월동안 치열하게 작업하는 것에 비해 애니메이션은 매일매일 오랫동안 작업해나가야 하는 과정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한 편을 찍고 끝내고 쉰다든가, 그런 것을 잘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라며 "제 계획대로 늘 되지는 않지만, 계획을 세우고 성실하게 살려고 합니다"라고 앞으로의 계획도 함께 전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김한준 기자, NEW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