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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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뷰] 빌라 파크에서 펼쳐진 新 백년전쟁

기사입력 2008.12.27 06:08 / 기사수정 2008.12.27 06:08

안경남 기자



[엑스포츠뉴스=안경남 기자]
영국 버밍엄 빌라 파크에서 ‘박싱데이(Boxing Day)’ 최고의 경기가 열렸다. 27일 새벽(한국시간) 박싱데이 마지막 경기로 펼쳐진 아스톤 빌라와 아스날간의 ‘빅4 싸움’은 2-2 무승부로 끝이 났다. 패색이 짙었던 아스톤 빌라는 후반 추가시간 수비수 제트 나이트의 극적인 동점골에 힘입어 4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날 두 팀 간의 경기는, 중세 말기 영국과 프랑스 간에 벌어진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을 연상케 했다. 단순히 치열했던 경기 내용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4위 싸움에 중요한 결전 될 이번 승부에 양 팀은 상당히 대조되는 선발 명단을 꾸렸고 이는 마치 국가 대항전 같았다.

프리미어리그 팀 중 가장 자국 선수가 적은 아스날은, 선발 명단을 모두 외국인으로 구성했다. 그 중 대부분은 아르센 벵거 감독의 조국인 프랑스 출신 선수들로 채워졌는데, 갈라스-실베스트르-사냐-디아비-나스리 등 절반에 가까운 선수가 프랑스 국적을 가진 선수들이었다. 여기에 좌측 풀백인 클리쉬 마저 선발 출전했다면 50%를 넘길 수도 있었다.

반면, 아스톤 빌라는 무려 9명의 자국 선수들을 선발 명단에 포함시켰다. 나이트-데이비스-루크 영-레오 코커-베리-시드웰-애슐리 영-밀너-아그본라호르까지, 이정도면 잉글랜드 대표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펠로 감독이 “아스톤 빌라 선수들로 인해 행복하다.”라고 했던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빅4 진입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아스톤 빌라 선수들의 의지는 매우 강해 보였다. 중원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통해 아스날 선수들이 패스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발이 빠른 애슐리 영과 아그본라호르를 활용해 아스날의 수비 뒷공간을 노렸다.

그러나 참으로 운이 따르지 않는 아스톤 빌라였다. 전반 5분 코너킥 상황에서 시드웰이 시도한 헤딩 슈팅은 골대를 맞고 나왔고, 10분에는 공격 가담에 나선 데이비스가 본업인 수비적 역할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머리를 활용해 볼을 걷어내고 말았다. 물론 데이비스는 아스날 골문을 향해 헤딩 슈팅을 노린 것이었다.

아스톤 빌라의 불운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루크 영의 대포알 슈팅은 알무니아의 수퍼 세이브에 막혔고 19분 아그본라호르의 날카로운 슈팅에 이은 시드웰의 쇄도는 갈라스의 몸에 맞으며 무산되고 말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33분 밀너의 슈팅은 골대를 맞고 알무니아의 품에 안겼고 36분 데이비스의 터닝 슈팅은 골포스트를 맞고 튕겨 나왔다.

아스날 팬들은 가슴을 쓸어 내렸고, 아스톤 빌라 선수들과 마틴 오닐 그리고 팬들은 땅을 칠 일이었다. 조금만 운이 따라줬다면 3골은 성공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연이은 불운은 끝내 전반에 단 한 번의 슈팅을 날린 아스날에게 선제골을 내주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40분 레오-코커의 볼을 낚아 챈 데니우손이 왼발 슈팅으로 프리델 골키퍼를 따돌리고 골을 성공시켰다. 아스톤 빌라로선 환장할 일이었다.

충격이 컸던 탓일까. 후반 휘슬이 울리자 아스톤 빌라 선수들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후반 48분 역습상황에서 디아비에게 추가골을 허용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분위기는 급격히 아스날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반 페르시의 슈팅이 골대를 맞는 등 전반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경기가 진행됐다.

하지만 아스톤 빌라-아스날의 ‘新 백년전쟁’은 손쉬운 승부를 허락지 않았다. 후반 63분 아그본라호르가 갈라스에게 파울을 당하며 페널티 킥을 얻어냈고 이를 가레스 베리가 성공시키며 경기 분위기는 또 다시 아스톤 빌라 쪽으로 넘어갔다. 심상치 않은 경기 진행상, 이대로 경기가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치열한 경기만큼이나 양 팀의 감독들 또한 화끈한 신경전을 펼쳤다. 아스톤 빌라가 한 골을 따라 붙자 벵거와 오닐 감독은 서로에게 상처 될 말을 연신 내뱉으며 서로의 신경을 건들렸다. 심판이 다가와 제제를 가하자 억지로 화해의 악수를 건네던 오닐의 얼굴이 아직도 머리 속을 맴돈다.

이후 경기는 아스톤 빌라의 주도 속에 엄청난 속도전이 펼쳐졌다. 아스톤 빌라는 계속해서 아그본라호르의 스피드를 활용한 공격을 전개했고 아스날은 반 페르시를 축으로 역습을 시도했다. 4분의 추가시간이 주어졌고 아스톤 빌라의 파상공세는 끝내 결실을 보고 말았다. 페트로프의 크로스에 이은 문전 혼전 상황에서 나이트가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극적 드라마를 연출해 낸 것.

빌라 파크에 모인 홈팬들은 마치 승리라도 한 듯 환호성을 내질렀고 경기는 더 이상의 추가 득점 없이 2-2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박싱데이에서 가장 기대를 모았던 대결인 점을 감안한다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았던 경기였다. 두 팀에게는 모두 아쉬운 무승부였지만 축구팬들에게는 그 어느 때 보다 흥미진진했던 명승부였다.

[사진=ⓒ아스날 구단 공식 홈페이지]

[안경남의 풋볼뷰] 축구공은 하나지만 그 안에서 수 많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풋볼뷰(Football-view)는 새로운 시각을 통해 축구를 보는 재미를 더 해 드리겠습니다.



안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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