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2.19 11:11 / 기사수정 2008.12.19 11:11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아시아리그를 치르면서 그동안 끝없이 지적되어온 '조직력 부족'과 '얌전한 플레이'는 이번 시즌들어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패트릭 마르티넥을 제외한 나머지 외국인 선수가 전부 북미 출신으로 바뀌면서 팀 내 부족했던 '파이팅'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인데, 그 속에서 김원중은 그 '파이팅'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Q.올 해 성적이 지난 시즌에 비해 좋다.
A.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팀 스피릿'이 좋아진 것 같다. 밖에서 볼 때도 그렇지 않나? 용병도 체코 선수에서 북미 선수로 바뀌다보니까 성격상 파이팅도 많아지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아진 것 같다.
그리고 선수층이 두꺼워져 경쟁하다 보니 윈-윈 효과가 난 것 같다. 운동할 때도 서로 기분 상할 정도로 견제하면서 열심히 한다.
Q. 외국인 선수들이 팀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A. 근데 오히려 라던스키나 패스트는 북미 선수치고 조용한 편이라 평소에는 차분한 편이다. 그나마 패스트는 부주장이라서 리더십이 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하고.
나랑 (윤)경원이형, (박)우상이, 존 아까지 해외 원정을 가게되면 한 방에 잘 모여 노는 편인데, 존 아가 외국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잘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북미 출신이라 국내 선수를 무시한다거나 그런 것도 전혀 없이 서로 모자란 점에 대해서는 조언도 많이 해준다.
예전에는 지고 있으면 '아, 오늘 지는 건가보다.'했는데 요즘은 세골차정도로 지고 있어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한 번 더 스케이트를 타고, 슈팅을 하고 할 수 있는 거겠지. 벤치에서도 '잘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조금만 더 타자.'고 격려한다. 그런 파이팅들이 팀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선수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Q. 처음 실업에 오고 나서 한동안 출전하지 못했다.
A. 고대 재학 중에 마지막으로 러시아로 대회를 치르러 갔었다. 그 때 어깨를 다쳐서 06-07 시즌은 입단 후 게임을 뛰지 못했다. 승엽이나, 준호나, 상현이나 다 뛰었었는데 그 친구들 이 뛰는 걸 보면서 '큰일 났다.'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정말 조급했다. 친구들은 잘 뛰든 아니든 어쨌든 빙판을 달리면서 자신을 알리고 있는데 난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아마 선수 시절 중 제일 힘들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 해 입단하고 나서 차이나 샥스전이었나…. 신인 선수를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나만 못했다. 그래서 프런트에 장난삼아 따로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더니, 나중에 해주겠다고 그랬는데 지금까지 못했다. 이제 하고 싶어도 너무 늦어서 못한다. 벌써 세 번째 시즌이다.
김원중을 처음 봤을 때 그는 항상 한쪽 팔을 가슴께에 가지런히 포개 놓은 채 빙판이 아닌 유리 건너편에서 동료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8'번을 만나지 못했다. 돌아온 빙판에서 그는 원하던 만큼의 능력은 보이지 못했지만, 빠른 발로 안양 한라 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실력을 맘껏 내보이며 환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팬도 그에겐 빙판을 달리는 힘이 되지만, 안양 한라에는 유난히 그에게 힘이 되는 세 사람이 있다. 같이 빙판을 누비는 고병희, 김선기.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자신을 도와주는 누나다.
Q. 헬멧에 자신의 번호인 8 말고도 15, 32가 붙어있다.
A. (고)병희와 (김)선기의 번호다. 경희 초등학교, 경복 중학교, 경복 고등학교까지 함께 나왔다. 사실, 병희랑 선기 때문에 운동을 시작한 거나 다름없다. 하이원의 (이)용준이랑도 다 같이 학교를 나와서 친하다. 병희와 선기가 함께 뛰고 있어서 선수 생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대학을 용준이랑 병희가 함께 가고 선기가 따로 가고 내가 따로 갔었는데, 실업에서 셋이 만났다. 용준이만 다른 팀에 있어서 많이 외로워하고 부러워했다.
선기랑 병희 헬멧에도 똑같이 8, 15하고 32, 8이 붙어있다. 유난히 선기랑 병희랑 친하게 지내서 선수들이 쟤네들은 저렇게 티내야 되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끼리 모여서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있다. '아, 우리 셋이 헬멧에 번호 붙였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막 이러면서…. (웃음) 이젠 신경 쓰지 않는다. 무덤까지 같이 갈 친구들이니까 이정도 쯤이야….
Q. 누나도 같이 회사에 있는데(김원중의 누나는 안양 한라 팀 사원인 김주희씨다.)
A. 내가 두골 넣은 날 누나가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그렇게 기뻐했다고 하더라.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나한테는 티를 안냈는데, 그 경기에서 내가 역전골도 넣고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해서 많이 기뻐했던 것 같다. 이제 두 시즌 짼데 골을 넣거나 플레이를 잘해서 누나를 기쁘게 해준 적이 없었다.
항상 누나는 기록 박스에 앉아서 경기 기록을 하는데 나는 게임도 못 뛰고 그러니까 말은 못해도 걱정을 많이 했었나보더라. 아무래도 누나 동생 사이다 보니까 별 거 아닌 일로 싸우기도 엄청 싸우는데 누나가 회사에 있어서 그래도 조금 더 마음이 편한 것 같다.
같은 팀에서 일한다고 해서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한다. 너무 낙천적인가? 아, 안 좋은 점이 하나 있긴 하다. 보너스가 나오면 혼자 살짝 챙기고 싶은데, 다 알고 있으니까 챙기려야 챙길 수가 없다.(웃음)
Q. 팀에서 친구들 말고 가장 힘이 되는 선수가 있나.
A. 동환이 형이다. 플레이적인 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2년간 군대를 갔다 왔는데, 알겠지만 운동선수에게 그 2년은 크다. 동환이형은 진짜 혼자서 무척이나 노력했다. 남들 운동 안할 때도 혼자 나와서 운동하곤 했다.
형이 워낙 잘하는 선수라 기대감도 크고 그래서 부담감이 컸을 텐데 그 부담을 극복하고 지금도 잘하는 거 보면 대단한 것 같다. 동환이형은 운동하고 있을 때 와서 조언을 많이 해준다. 슈팅하는 법 같은 것도 그렇고…. 골 넣으면 나중에라도 와서 꼭 축하해주고 해서 좋아하는 선배다. 아, 다른 선배들이 축하해주지 않는 다는 건 아니다.(웃음)
Q. 동기 중에선 이유원이 잘했었다.
A. 07-08시즌에 플레이오프까지 다 뛰었는데 '스포츠는 결과'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골 넣고 이런 선수들만 알아주고 그런 것 같더라. 내 생각이긴 하지만 난 팀을 위해 헌신했고 첫 시즌치고 잘했다고 생각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신인 선수 중에서는 유원이가 많이 받아서 속상하기도 했었다. 유원이가 나쁘다거나 그런 얘기는 결코 아니다. 솔직히 결과가 아닌 헌신은 경기를 꾸준히 보고, 아는 사람만 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점이 서운하기도 했었는데 내가 더 잘하는 수밖에 없다. 나도 기록으로 보여줘야 되지 않겠나. 나 혼자 헌신한다고 생각하고 일부 팬이 인정해준다 그래도 남는 결과는 아니니까….
Q. 지난 시즌 스스로 좋지 못한 기록에 올 시즌 부담은 없었나?
A. '지난 시즌보다 잘해야지'란 생각을 가지고 있긴 했다. 지난 시즌에 못해서 부담이 더 생기고나 그랬던 건 없었다. 항상 그렇다. 항상 나는 열심히 한다 뭐든지. '뭐든지 열심히 하자'가 내 신조인데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느꼈다. 학생시절하고는 다르다. 여기서 뛰고 있는 모두가 이게 직업인데 누가 열심히 안하겠나.
여기서는 열심히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경쟁도 해야 되고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되고….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는 아이스하키가 정말 재밌다. 학생 시절보다 부쩍 재밌어졌다. 평소 운동할 때 '아, 이런 건 고쳐야지.' 라고 생각했던 걸 고치려고 노력했는데, 경기 때 그게 고쳐져서 플레이로 드러났을 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난 그걸 알지 않나.
그럼 플레이 하다가도 '해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포인트가 되거나 하면 정말 신나는 일 인거고. 누가 들으면 웃길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실력이 늘어간다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스하키가 재밌다.
Q. 재밌는 아이스하키를 이어가야겠다.
A. 지금 일단 당장은 세이부를 제치고 1위로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 지금 솔직히 얘기하자면 다른 팀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세이부를 이기는 것, 그 것만 중요하다.
다른 팀에 신경 쓸 여지조차 없다. 먼저 닛코 원정 경기를 치르고 세이부와 일본 원정 마지막 경기인데, 이 경기를 이기면 아마 1위 탈환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동안 가지고 있던 다이도 징크스를 반드시 깨는 것 또한 중요하고….
그 징크스를 깨는데 내가 골을 넣거나 어시를 하거나 그랬으면 좋겠다.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바라던 대로 안양 한라의 '다이도 징크스'는 18일 경기에서 안양 한라가 세이부에게 5-7로 승리하면서 깨졌고, 이 경기에서 김원중은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도왔다.)
시즌이나 아이스하키 선수로서 아직 원대하게 정한 목표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설렁설렁 하는 건 아니다. (웃음) 차이나 샥스에게만 강한 선수가 아닌, 모든 팀에 강한 선수가 되고 싶다.
지금 내게 어울리는 단어는 '상승세' 아니겠나. 부상 없이 쭉 이어가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터뷰 이틀 전 벌어졌던 세이부와의 홈경기에서 펼쳤던 세리머니 사진을 보더니 "악, 창피해! 못 보겠어!"를 외치며 뛰어가는 뒷모습은 관중석을 향해 당당하게 팔을 뻗던 그와는 사뭇 달랐다.
모든 빛을 받을 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가진 빛을 가지고 스스로 발광할 줄 아는 김원중은 이제, 막 빛을 발하기 시작한 신성의 그 것처럼 맑고 순수한 희망을 가졌다.
'밝은 아이' 김원중이 전해주는 행복한 노래가 이 겨울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롤처럼 많은 이들의 가슴에 다가갈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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