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1.15 14:38 / 기사수정 2008.11.15 14:38
15세의 소년과 19세의 여대생이 김나영의 국제 대회 참가를 가능하게 하다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김나영(18, 연수여고)이 팬들의 도움으로 ISU(국제빙상연맹)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참가하게 돼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김나영은 이번 시즌부터 그랑프리 시리즈에 시니어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랑프리 대회에 참가하려면 그 대회가 개최되는 국가의 빙상연맹으로부터 정식 초청장을 받아야 합니다. 김나영은 현재, ISU 여자 싱글 세계랭킹 34위에 올라있습니다. 이번이 첫 그랑프리 시니어 시리즈 데뷔 무대이고 아직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높지 않은 김나영은 그랑프리 6차 대회인 일본 NHK 트로피 대회에만 공식적으로 초청됐습니다.
내심 두 개의 그랑프리 대회에 나가길 원한 김나영에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피겨 여왕' 김연아(18, 군포 수리고)가 참가해 우승을 했던 ‘Cup of China'대회에서 불참선수가 나타났습니다. 후보 선수 목록에 올았던 김나영은 충분히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피겨 선수에게 국제 대회의 참가는 하나라도 많은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김나영의 전담코치인 신혜숙 코치는 대한빙상연맹에 문의해 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빙상연맹은 초청 선수가 아닌 후보 선수인 경우, 대회가 개최되는 국가의 빙상연맹으로부터 정식적인 초청장이 오기를 기다려야 된다고 답변했습니다.
중국빙상연맹으로부터 김나영에게 초청장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나영은 결국, 'Cup of China'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번 달 20일부터 23일까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5차대회인 'Cup of Russia'에 초청선수인 사라 마이어(22, 스위스)를 비롯한 몇몇 선수가 불참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피겨 팬들과 신 코치는 대한빙상연맹에 러시아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경위를 문의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빙상연맹 측은 ISU의 규정을 다시 언급하면서 김나영의 출전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대한빙상연맹이 밝힌 ISU의 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그랑프리 대회에서 후보 선수가 참가하려면 개막일로부터 14일 이전에 신청서를 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후보 선수가 신청서를 내면 항공권 마련과 비자 발급 등의 행정을 거치는 시간이 촉박하고 무리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규정은 동일한 선수가 격주가 아닌 일주일 동안 연속적으로 그랑프리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규정입니다. 김나영이 러시아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이미 공식 초청선수로 참가하게 되는 일본 NHK 트로피 대회를 바로 준비해야 합니다.
Cup of Russia의 일정은 23일에 끝나게 됩니다. NHK 트로피는 27에 시작되는데 한 대회를 마치고 바로 다른 국가로 이동해서 또 다른 대회를 준비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빙상연맹이 통보한 이러한 소식을 들은 김나영은 하마터면 러시아 대회 참가를 포기할 뻔 했습니다. 하지만 피겨 팬들의 열정과 노력이 ‘작은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대한빙상연맹이 하지 못한 것을 피겨 팬들이 해낸 것입니다.
피겨스케이팅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피겨스케이팅 갤러리'와 김나영의 팬 카페에서 'Holic'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양 모(15세)군은 2년 전, 김채화 선수가 주니어세계선수권에 참가한 뒤, 2주도 되지 않아 바로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한 경우를 예로 들며 김나영도 얼마든지 러시아대회에 참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양 군은 이러한 사례를 대한빙상연맹에 문의하고 가능성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빙상연맹 측은 계속 규정을 언급하면서 불가능하다는 말만 남겼습니다. 결국, ISU는 물론, 러시아빙상연맹에 직접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양 군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피겨 팬인 여대생 조모 씨(19)에게 부탁을 요청하게 됩니다.
아직 15세이고 중학생인 양 군은 국제빙상연맹과 러시아빙상연맹에 전화를 하려면 영어가 가능한 협력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조모 씨는 호주에서 6년 동안 살고 온 경험 때문에 영어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양 군의 요청을 확인한 조 씨는 ISU와 러시아빙상연맹에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양 군과 합의하에 김나영 선수의 관계자라고 본인을 밝히고 통화를 시도한 조 씨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바로 러시아빙상연맹으로부터 대회 참가에 필요한 공식문서를 보내주면 김나영 선수에게 대회 초청장을 보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여자 싱글 선수들이 잇달아 불참을 통보해 오면서 러시아빙상연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후보 선수들의 참가를 물색하던 러시아빙상연맹은 한국의 김나영이 참가할 수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바로 초청을 수락했던 것입니다.
대한빙상연맹은 ISU 규정에 동일한 선수가 연이어 그랑프리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그 규정안을 공식적으로 김나영과 신 코치에게 공개할 의사를 전해왔다고 신 코치는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예의 경우는 충분히 존재했었습니다. 올 그랑프리 시즌의 경우, 1차 대회인 Skate America와 2차 대회인 Skate Canada 대회에는 남자 싱글 선수인 에반 라이사책(22, 미국)이 연속적으로 참가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랑프리 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표명한 2008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챔피언인 제프리 버틀(27, 캐나다)도 1차 대회와 2차 대회를 연속적으로 참가할 예정이었습니다.
물론, 미국과 캐나다 국적의 선수가 가까운 북미 대륙에서 대회가 연속적으로 열리는 경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그랑프리 시리즈에 일주일 간격으로 참가한 사례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대한빙상연맹은 올 초에 고양시에서 벌어진 4대륙 선수권에서도 국내 후보 선수 관리에서 팬들의 지탄을 들었습니다. 반드시 참가할 줄 알았던 김연아가 부상으로 이 대회의 불참을 선언하자 빙상연맹은 매우 당황해했습니다. 국내 선수로 김연아와 함께 김나영, 김채화(20, 일본 간사이대)을 출전선수로 확정지은 빙상연맹은 이 선수들이 불참할 시에 참가할 수 있는 후보 선수를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후보 선수로 참가가 가능했던 신나희(18, 대구 경명여고)는 국내에서 벌어지는 4대륙 대회의 무대에 서지 못했었습니다. 선수들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한국피겨의 발전에 대한 열정이 피겨 팬들의 반만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 씨는 김나영 선수의 아버님에게 이 일을 알렸습니다. 공식적인 문서를 보내야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이름으로 발송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로 대한빙상연맹을 통해서 공식적인 문서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조 씨가 러시아빙상연맹에 이 일을 처음 문의했을 때에 모스크바의 시간은 오후 3시였습니다. 러시아빙상연맹은 그쪽 시간으로 오후 5시까지 문서를 보내야 김나영의 출전이 가능하다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촉박한 시간 속에 조 씨는 김나영 선수의 아버님에게 문서 작성을 부탁했습니다.
대회 참가를 위해 필요한 문서는 김나영 선수의 여권과 신 코치의 여권, 그리고 9개에 이르는 신청서였습니다. 이 문서들을 준비한 김나영의 아버지는 메일로 조 씨에게 보냈지만 이 문서들은 개인의 메일이 아닌, 대한빙상연맹의 주소가 들어간 메일로 보내야했습니다. 결국, 조 씨는 김나영의 어머니인 신금숙 씨에게 전해들은 빙상연맹의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늦은 저녁이었고 대한빙상연맹의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상태였습니다. 지금 현재 시각으로는 공식 문서를 보내는 것이 힘들다고 밝힌 빙상연맹 관계자의 말을 들은 조 씨는 그럼 먼저 비공식적으로 문서를 발송하겠으니 공식적인 문서는 차후에 보내달라고 부탁을 호소했습니다.
결국, 김나영의 아버지가 작성한 비공식적인 문서를 우선적으로 발송한 조 씨의 노력과 어린 중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신중함으로 이 일을 계획한 양 군의 열정이 김나영을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시키게 됐습니다.
빙상연맹의 관계자들은 늦은 저녁에 다시 사무실로 집결해 양 군과 조 씨가 이미 보낸 문서를 공식적으로 러시아빙상연맹에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늦은 야간 훈련을 마치고 빙상연맹에 도착한 김나영과 신 코치는 러시아연맹으로부터 도착한 초청장을 확인하며 감격에 겨워했습니다.
정해져있는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전화 한 통화만 했으면 어렵지 않게 끝날 일을 빙상연맹이 아닌 두 명의 피겨 팬들이 해냈습니다. 그것도 이제 겨우 15세에 이르는 소년과 아직도 10대인 여대생의 열정이 김나영의 그랑프리대회 출전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빙상연맹 측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규정만 앞세우지 말고 최소한 ISU와 러시아빙상연맹에 김나영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여부를 구체적으로 묻는 전화를 시도했다면 이렇게 팬들이 나서서 일을 해결하는 사태는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원칙적인 규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팬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김나영의 대회 출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최소한의 노력은 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빙상연맹은 잇따른 초청선수 불참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빙상연맹은 이러한 제보를 팬들에게 지속적으로 들었지만 정해진 규정만을 언급했을 뿐입니다. 김나영이 출전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면 최소한 전화 한통 정도는 ISU와 러시아연맹에 해볼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 전화 한통은 공식적인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대한빙상연맹이 아닌, 아직도 10대에 불과한 두 어린 피겨 팬들이 해냈습니다.
이렇게 극적인 일이 일어나자 김나영의 어머니인 신 씨와 신 코치는 모두 팬들의 열정과 관심에 감사를 표명했습니다. 단순히 경기를 관람하고 즐기는 팬이 아닌, 선수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국제 대회 참가의 길까지 열어주는 훈훈함을 15세의 소년과 19세의 여대생이 이루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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