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팬들의 최근 관심사는 박, 주, 영. 이 세 음절로 요약될 수 있다. K리그 판에 축구천재 박주영(20, FC서울)이 몰고 온 열풍은 생각보다 거세다. 상암 홈 개막전에는 평일 8시 경기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박주영 데뷔전이라는 이유로 2만 5천의 관중이 찾았으며, 13일 성남 경기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홈 개막전보다 많은 만여명의 관중이 입장해 박주영 열풍을 몸소 체험하고 돌아갔다. 박주영이라는 싱싱한 재료 발견한 언론매체
일단 박주영 선수가 해외리그만을 고집하지 않고 국내리그를 통해 먼저 경험을 쌓으려는 생각을 한 것은 백번 옳은 결정이었다는 것이 대다수 축구전문가들의 견해다. 박주영 선수 본인도 그렇지만 최근 침체된 모습을 보이던 K리그 판에 최고로 평가되던 박주영 선수가 합류함으로 인해 시장의 폭이 그만큼 커질 수도 있는 '윈-윈 전략'이 성립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각종 언론이나 미디어를 보고 있노라면 'K리그에는 박주영이라는 선수밖에 없는가'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편협하고 위선적이고, 때로는 과장된 보도를 접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언론의 보도 형태는 우리에게 그리 낮설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런 띄어주기 보도는 좀 잘한다는 젊은 운동선수들을 중심으로 행해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 98프랑스월드컵때 혜성처럼 등장했던 이동국, 불운한 축구천재 고종수, 테리우스 안정환은 물론,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박찬호, 월드시리즈 챔피언 반지의 주인공 김병현까지 언론들은 젊은 스포츠스타들을 집중적으로 보도해왔고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사생활까지 치밀하게 뉴스화 한뒤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철저하게 버려졌다.
이런 보도의 관행은 어쩌면 국내 스포츠 시장이 너무나 협소하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기도 하는 점이다. 매일 발행되는 스포츠신문의 지면을 채우기 위해서는 뉴스거리가 필요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지면을 작은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국내 프로스포츠 소식만으로 채우기에는 대중들의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이럴때 박찬호나 박주영 같은 선수가 갑자기 대중들의 인기를 얻게 되면 그야말로 스포츠지 기자들은 '땡 잡은 꼴'이 되는 것이다. 지면 채우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호기심도 자극해 발행부수도 덩달아 늘어나게 된다.
언론사들간 경쟁으로 박주영 보도 열풍!
그러나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박주영 선수를 다루는 각종 언론매체의 보도 형태는 서로 경쟁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과열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상암 홈개막전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FC서울의 홍보담당자는 빨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었다. "오늘 나간 프레스 카드만 80장이 넘는다. 미처 여분을 준비하지 못해 동이 날까봐 겁이 난다"
서울과 대구가 맞붙었던 상암 홈 개막전을 중계한 모 방송국의 캐스터는 FC서울이 수세에 몰리면 '위기'라는 표현을 썼으며, 서울의 결정적 찬스가 생기면 마치 한국 국가대표가 찬스를 잡은 것처럼 흥분하며, 그 상황을 설명하곤 했다. 방송을 담당했던 방송국이 서울에만 나오는 지역민방이었으면 그런 식의 해설이 당연한 것일 수 있겠지만, 전국구 전파망을 갖고 있는 방송국이라는 점에서 적절치 못한 해설이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또한, 13일 있었던 성남과 서울의 경기를 보도하는 각종 언론들의 형태는 어떠했는가? 성남이 2:1로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박주영 선수의 데뷔골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줘, 얼핏 보면 FC서울이 박주영 선수의 골로 승리를 따낸 것으로 오인할 수도 있을 지경이었다.
매일마다 스포츠 신문의 톱은 박주영 선수와 관련된 기사가 메인을 장식하고, 인터넷에서도 축구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박주영 선수와 관련된 뉴스가 8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형태의 보도인가. 누가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오로지 박주영, 박주영의 소식만 전하면 된다는 말인가. 이러다가 갑자기 박주영 선수가 부진하기라도 하든가 외국 진출이라도 해버리면 K리그는 또 다시 '나 몰라라' 할 심산인가.
박주영이 집중적으로 언론에 부각되는 것이 무조건 부정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적절한 선을 지키지 못하고 '오버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언론매체들이 K리그 판을 키우기는 커녕 죽일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 K리그는 2002 월드컵의 영웅 김남일과 송종국 선수의 수원 이적과 브라질 킬러 나드손의 연속골 행진, 울산의 유상철 영입과 이천수 선수 영입 확정설, 돌아온 해결사 포항의 이동국 선수 등 유난히 많은 대형선수들의 영입과 이적이 있었다. 그러나 과연 언론들은 일반 대중들이 이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선수를 이용한 마케팅과 언론 효과는 분명 한계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동안 언론들이 갖고 놀다 버린(?) 수많은 스타 선수들의 전철을 박주영 선수만은 똑같이 밟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박주영 선수는 언론들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하기에는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박준범 기자>
김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