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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인사이드] 김연아, 어머니의 이름으로 거듭난 스케이터

기사입력 2008.10.30 07:27 / 기사수정 2008.10.30 07:27

조영준 기자



김연아를 완성시킨 사람들 - 어머니 박미희 씨 편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한국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쏟는 관심과 투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식에게 헌신하는 모습은 서구인들의 시선에는 낯선 모습으로 여겨집니다. 한편으로는 자식의 삶에 너무나 개입이 많은 태도에 비판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극성 어머니'라 할지라도 자식의 재능과 방향을 올곧이 잡아주고 인생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18, 군포 수리고)를 얘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어머니인 박미희 씨에 대한 부분입니다. 어릴 적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김연아였지만 박 씨의 올바른 방침이 없었더라면 결코, 오늘날의 김연아가 탄생할 수 없었습니다.

김연아가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신고 나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림자처럼 동고동락했던 박미희씨는 김연아의 가장 가까운 코치이자 매니저이며 인생 상담자이기도 합니다.

부모의 욕심이 아닌, 딸의 재능을 보고 이끌어준 피겨의 길

어릴 적부터 스케이트를 마냥 좋아하고 피겨스케이팅을 TV를 보면서 동경한 박 씨는 가족들이 살고 있던 군포시에서 가까운 과천시에 아이스링크가 생기면서 두 딸에게 그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처음에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에 섰을 때, 두 딸은 모두 흥미를 가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빙판에 녹아들던 쪽은 차녀인 김연아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김연아가 피겨에 남다른 재능이 있고 본격적인 선수의 길로 들어설 것을 권유한 코치의 말에 박 씨는 흥분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취미로 시켜보려고 했던 피겨스케이팅에 김연아가 비범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밀어줄 생각을 가지게 되지만 코치와의 의견 충돌을 일으킨 박 씨는 한창 연습에 몰두하던 어린 김연아를 데리고 빙상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피겨스케이팅 비디오를 계속 틀어보면서 동작을 따라하는 김연아의 모습에 딸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머니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재능도 있는 데에다 진정으로 피겨를 하고픈 꿈을 가진 어린 딸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박 씨는 김연아에게 피겨선수로서의 길을 열어주게 됩니다.

피겨에 대해 동경심과 관심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김연아가 피겨의 길에 들어선 이유는 본인의 의지와 재능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빙판 위에서 점프를 하고 연기를 하고 싶어 했던 김연아의 의지를 박 씨는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길만 열어준 것이 아닌, 어린 딸이 걸어가야 할 험난한 세상에 다리가 되기로 박 씨는 결심하게 됩니다. 본인의 생활을 모두 접고 본격적인 '피겨 맘'의 길로 들어선 박 씨의 앞길엔 창창한 고속도로보다 험준한 산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땀과 눈물로 얼려진 빙판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 그리고 한국 골프의 황금기를 연 박세리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진출한 박지성 등은 모두 아버지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성장한 선수들입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타고난 재능을 적절하게 살리고 올바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부모님들의 조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목에 비해 피겨스케이팅은 부모의 조력정도가 아닌 '헌신적인 희생'이 필요한 종목입니다.

물론, 매일 부모가 따라다니지 않고 홀로 모든 것을 해내는 피겨선수들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매우 어릴 적부터 이루어지는 고된 훈련과 체계적인 선수 육성이 필요한 피겨를 생각할 때,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어린 선수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피겨스케이팅은 합숙훈련이 이루어지지 않는 철저한 ‘개인 종목’이기 때문에 훈련 이외의 다른 부분을 코치에게 전담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전용링크장이 없는 국내의 현실로 인해 늦은 밤까지 링크장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훈련을 소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선수들이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 이곳저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과 스케이트를 비롯해 여행용 가방을 가득 채우는 막대한 장비들을 대동해야 한다는 점은 실로 어렵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어린 선수들이 홀로 움직이기가 어려운 종목이 피겨스케이팅이고 옆에서 항상 선수를 도와주는 조력자가 필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겨 맘'이 된다는 것은 선수의 매니저가 된다는 뜻이고 자신의 삶을 상당부분 포기해야합니다. 부모의 게으름으로 딸의 재능에 타격을 주기 싫었던 박 씨는 김연아의 매니저를 자청했으며 단순히 뒷바라지를 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코치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됐습니다.

워낙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김연아는 출전하는 모든 대회를 휩쓸면서 '피겨 천재'로서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김연아도 피겨스케이팅을 그만둘 뻔했던 큰 고비가 두 차례 있었습니다.

피겨스케이팅은 다른 종목들에 비해 지출이 많고 수입이 적은 대표적인 종목입니다. 그리고 선수생명도 상당히 짧습니다. '가늘고 긴 것'이 아닌, '굵고 짧은 것'을 해보겠다는 큰 다짐이 없다면 쉽게 들어설 수 없는 곳이 바로 피겨의 무대입니다.

김연아의 가족 형편은 그리 풍족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근근이 선수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불어 닥치고 그 여파가 사라지지 않았던 시기에 소규모의 사업을 하고 있던 아버지 김현석 씨가 운영하던 회사는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됐습니다.

김연아가 선수생활을 하는데 유일한 지원처가 끊길 위기에 놓이게 되자 박 씨의 눈앞은 캄캄해졌습니다. 게다가 그 시기에 김연아는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어서 사소한 일로도 어머니와 잦은 충돌을 빚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신뢰와 피겨를 하고픈 마음은 간절했지만 감정의 기복이 일정치 못했던 그 시기에 김연아는 선수생활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훈련이 끝나는 귀가 시간까지 내내 딸과 전쟁을 치러야했던 박 씨도 기진맥진해졌습니다.

모녀의 관계가 이리 어수선할 때, 피겨를 할 수 있는 자금줄마저 끊어졌으니 도저히 앞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해 벌어진 동계체전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접을 것으로 합의를 본 김연아와 박 씨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참가했지만 그 대회에서 트리플 점프 다섯 가지를 모두 성공시키며 우승하자 두 모녀의 마음은 다시 바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김연아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코치의 권유와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김연아는 다시 스케이트의 끈을 잡아 맬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김연아를 지도한 신혜숙 코치는 사춘기를 겪는 선수들의 모습을 수차례 지켜본 경험에 대해 "그 시기에 접어들면 머릿속으로는 하기 싫다는 마음이 강한데 막상 피겨 말고 다른 것을 하기가 어려우니 몸은 빙상장에 오게 된다. 집에서 놀 수도 없어서 피겨를 타지만 하고픈 마음이 없는데 훈련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피겨선수에게 이 시기는 큰 고비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김연아가 또 한 번 스케이트를 벗을 뻔했던 큰 위기상황이 있었습니다. 바로 피겨선수들에겐 ‘생명’과도 같은 스케이트가 말썽을 일으킨 것입니다.

2006년은 김연아와 박 씨에겐 뜻 깊은 한해였습니다. 바로 그해에 열렸던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자랑인 아사다 마오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입니다. 한국피겨역사상 최고의 쾌거에 매스컴은 흥분했으며 장기적으로 김연아를 지원해 시니어 대회에서도 우승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소리만 떠들썩했을 뿐 실질적으로 김연아에게 이루어지는 투자와 지원은 전무 했었습니다. 주니어대회에서 마오를 꺾고 1위에 오른 쾌거는 축복으로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피겨선수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스케이트가 말썽을 일으키면서 김연아는 선수생활 이후 최고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가뜩이나 고질적인 발목 인대부상과 고관절부상으로 신음했지만 부상은 정신력과 극약의 처방으로 최소의 해결점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탈 때마다 무너지는 스케이트는 도저히 해결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국내에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을 위한 전문적인 스케이트를 제작하는 업체가 없었거니와 일본의 스케이트 장인을 찾아가서 김연아의 발에 꼭 맞는 스케이트를 맞추고 3개월을 기다렸지만 도착한 부츠는 허망하게도 김연아의 발과 맞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스케이트에 문제가 생긴다면 피겨선수의 생명줄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 문제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한 박 씨는 가족회의를 통해 김연아를 은퇴시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빙상연맹에 전화로 무거운 목소리를 털어놓았습니다.

"..... 부회장님, 이제 도저히 못하겠어요..... 연아를 은퇴시켜야할 것 같아요..."

대한방상연맹의 이치상 부회장이 듣는 수화기 저편에서는 박 씨가 오열하면서 간신히 말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척박한 국내피겨의 환경 속에서 어떤 힘든 상황이 몰려와도 박 씨는 약한 모습을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넘기 힘든 벽이 있어도 분명히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험난한 길을 걸어왔지만 스케이트문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후에 피겨를 하면서 느낀 고충을 털어놓을 때에도 박 씨는 스케이트 문제를 항상 언급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회고할 때에는 그토록 강했던 어머니가 눈물을 참지 못했었습니다.

각종 부상으로 인한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피겨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던 김연아는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빙상연맹의 이 부회장은 부랴부랴 김연아의 집을 방문했고 박 씨는 그동안 한국에서 피겨를 하면서 느낀 고충들을 구구절절이 털어놓았습니다.

결국, 스케이트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해 김연아와 박 씨는 마음을 돌리게 되었고 2007 세계선수권대회 때, 마케팅에 참가한 한 회사에서 김연아에게 알맞은 부츠를 제공해주면서 지긋지긋했던 스케이트 문제가 해결점을 찾았습니다.

만약, 스케이트 문제로 세계최고의 선수를 잃었다면 한국빙상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오류로 기록됐을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두 가지 문제가 김연아의 선수생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사건들이었지만 열악한 국내 피겨 환경 속에서 꿋꿋이 버티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빙판은 김연아가 흘린 땀과 어머니인 박 씨가 흘린 눈물들이 얼려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부상방지를 대비해왔지만 피겨선수들에게 찾아오는 고질적인 부상은 김연아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트리플 점프를 시도하는 선수들 치고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면 이상할 만큼, 부상이 필수적으로 따르는 종목이 바로 피겨스케이팅입니다.

박 씨는 몸을 움직이고 점프를 할 때마다 치명적인 통증을 느끼는 딸을 계속해서 빙판으로 내보냈었습니다. 강해야만 살 수 있는 스포츠의 무대를 생각할 때, 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노출할 수 없었지만 그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부모의 심경은 자연적으로 밀려왔습니다.



내 아이는 최고의 위치에 있지만 내 딸만이 소중한 게 아니다

국내피겨 훈련이 이루어지는 현장들을 돌아보면서 많은 유망주들이 최고의 우상으로 김연아를 손꼽고 있듯, 대부분의 피겨 맘들도 박미희 씨를 존경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 현지에서 김연아를 돌보는 데에도 바쁜 와중이지만 국내 유망선수들에게도 신경을 쓰며 김연아를 통해 얻은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박 씨는 최고의 선수를 가진 부모로서 내 아이만 챙기는 것이 아닌, 앞으로 성장할 유망주들을 위해 꾸준히 신경을 쓰는 조력자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김연아가 밟았던 그릇된 길을 후배 선수들이 피해갈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부분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고 빈틈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박 씨는 당차고 기가 센 김연아를 유일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김연아와 박 씨는 단순한 모녀관계를 넘어서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꿈을 향해 매진해가는 둘도 없는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박 씨를 가까이서 본 어느 유망주 선수의 어머니는 빙판 안에서는 강하게 보이지만 실생활에서는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김연아는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피나는 노력으로 승화시켰고 그 날개를 달아준 국내의 훌륭한 코치진이 있었기에 기본기가 철저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나고자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코치인 브라이언 오서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을 만나 피겨선수로서 최상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바탕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것은 헌신한 어머니인 박미희 씨의 공로는 오늘날의 김연아를 완성시키는데 최고의 공헌을 했습니다. 헌신적인 부모와 인생의 친구, 그리고 매니저와 코치가 되기도 하는 모정의 힘이 얼마나 큰 지를 박미희 씨는 김연아를 통해 여실히 증명해냈습니다.

[사진 = 김연아 (C) 장준영 기자, 김성배 프리랜서]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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