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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인사이드] 꽃미남 스케이터 김민석, '피겨는 나의 인생'

기사입력 2008.09.23 04:25 / 기사수정 2008.09.23 04:25

조영준 기자



피겨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꽃미남 피겨선수

[엑스포츠뉴스 = 조영준 기자] 국내에서 남자 피겨 선수들에 대한 인지도는 아직까지 미비한 것이 사실입니다. 제대로 활동하는 피겨 선수가 10명도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이지만 이렇게 적은 선수 층에도 불구하고 국제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둔 국가대표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지난 8월 초에 벌어진 국내주니어대표선발전에서 남자 부분 1위에 오른 김민석(15, 불암고)입니다. 필자가 김민석이란 피겨선수를 가장 처음 봤을 때는 7월 달에 서울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한 아이스쇼에서였습니다.

하얀 의상을 입고 나온 소년은 세계적인 남자피겨선수들이 대거 모여 있는 무대에서 전혀 기죽지 않은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수줍은 듯 하면서도 밝은 미소로 늘 웃고 있는 김민석은 어느새 적지 않은 피겨 팬들을 만들게 되었고 지난 주니어대표선발전에서는 김민석이 출전하자 환호하는 팬들의 함성이 과천실내빙상장을 따나게 만들었습니다.

김민석과의 세 번째 만남, 남자 피겨의 가능성을 확인하다

훈련 장소인 과천실내빙상장에서 만난 김민석은 필자에겐 세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7월 달에 벌어진 아이스쇼가 처음이었고 8월 초에 있었던 주니어대표선발전이 두 번째였습니다. 언제나 수줍은 듯 한 미소를 보이며 어색하게 인사하던 김민석은 예상했던 대로 수줍음이 많으면서 내성적인 소년이었습니다.

질문에 항상 짧은 단답형으로 대답했지만 시종일관 웃고 있는 미소 때문에 분위기는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2008 ISU 피겨스케이팅 제3차 주니어그랑프리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김민석은 종합 9위를 기록했습니다.

남자선수로서 주니어 그랑프리대회 10위권 안에 든 것도 나름대로의 성과였지만 자신의 최고 점수를 무려 28점이나 올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김민석을 지도하고 있는 김세열 코치는 "민석이는 지금까지 국제대회에 참가해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포함한 종합점수를 100점 이상 받아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28점이나 끌어올리면서 무섭게 성장했다. 특히 러츠와 플립을 트리플 점프로 익히면서 기량이 많이 향상됐다. 스핀을 보완하고 음악을 타면서 연기하는 표현력을 지금보다 연마해야한다. 또한,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계속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김민석을 평가했습니다.

사실, 이번 멕시코 대회에서 김민석은 가래톳이란 부상을 안고 시합을 펼쳤습니다. 대회일이 일어나기 2주전에 가래톳이 생긴 김민석은 그동안 갈고 닦은 트리플 점프 연습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고 도핑테스트에서 걸린 위험성이 적은 진통제를 태릉에서 긴급히 구해 와서 먹고 난 뒤,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 때의 상황에 대해 김민석은 "그때는 무척 속상했고 대회를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회에 참가해 최고 점수를 올린 것에 만족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현재의 부상 상태에 대해 김 코치는 "한국에 와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얼마 전 다시 부상이 재발해서 고생을 했다. 현재는 민석이의 몸 상태를 체크해가며 훈련의 강도를 조절하고 있고 다음달 8일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벌어지는 주니어 그랑프리 7차 대회까지 최대한 컨디션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트리플 점프를 뛰고 난 뒤, 성공적으로 랜딩했을 때의 기분이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좋다는 김민석은 함께 훈련하는 모든 피겨선수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존경하는 선수로는 일본의 다카하시 다이스케와 스위스의 스테판 랑비엘, 그리고 '피겨 여왕'인 김연아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김민석에게 가장 특별했던 추억은 지난 7월 달에 벌어진 '슈퍼스타즈 온 아이스쇼'에서 피겨스케이팅의 전설인 알렉세이 야구딘과 예브게니 플루센코 등과 함께 무대에 섰던 점입니다. 실제로 플루센코는 김민석에서 동작을 가르쳐주면서 다독여주었고 연습을 할 때, 격려의 박수도 보내주었다고 김민석은 즐겁게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멕시코대회에서 동행했던 선수이자 여자 싱글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쾌거를 올린 곽민정(14, 평촌중)에 대해서는 '재미있고 털털하면서 남자 같은 동생'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최근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자신의 팬들 중, 인상에 남는 열혈 팬 몇 명을 열거하면서 항상 자신을 응원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환한 미소의 뒤편에 가려진 상처와 외아들을 위해 내렸던 어머니의 어려운 결정

현재, 빙판 위에서 땀을 쏟는 무녀 독남인 김민석을 반겨주는 친 가족은 홀어머니인 김성애 씨뿐입니다. 김민석에게 누구보다도 가장 가깝고 최고의 팬이었던 아버지는 올 6월 21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전이 고향이었던 김민석은 본격적인 피겨선수의 생활을 하기위해 어머니와 서울로 상경 했습니다. 노원구에 위치한 불암고에 입학한 김민석은 멀리 있는 아버지와 곁에 있는 어머니의 지원을 받으면서 피겨선수로서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대전에 남아서 언제나 김민석에게 응원을 보낸 아버지는 피겨선수를 하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겼었습니다. 실제로 어린 김민석에게 피겨를 시켰었고 주변의 동료와 친지들에게 늘 피겨선수인 아들의 자랑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였지만 너무나도 빠르게 김민석의 곁을 떠났습니다.

6월 21일 새벽, 김민석의 할머니에게 갑작스러운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아버지가 위독하니 빨리 대전으로 내려오라는 소식에 어머니인 김 씨와 김민석은 황급하게 대전의 병원으로 향했고 응급실에서 위급하다던 아버지를 만나려고 했지만 뜻밖에도 이들을 안내한 곳은 영안실이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현실에 두 모자는 오열했고 피겨 선수로서의 길과 남은 가족의 앞날에 깜깜한 어두움이 드리웠습니다. 아버지와 남편을 잃었다는 크나큰 상처와 앞으로 살아가야할 생계의 막막함이 몰려오는 상황 속에서 피겨의 길을 계속 걸어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7월 달에 벌어진 '슈퍼스타즈 온 아이스쇼'에 김민석이 참가하게 된 것을 가장 기뻐하던 이도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얄궂은 운명은 수많은 관중들 속에서 멋진 연기를 펼친 아들의 모습을 아버지에게 끝내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한달만 더 가족의 곁에 있었어도 그토록 보고 싶어 했었던 피겨선수로서의 아들을 볼 수 있었지만 끝내 작별은 고한 아버지의 텅빈 자리는 아쉽기만 했습니다.

아이스쇼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가려는 생각을 가지게 됐지만 김세열 코치는 가능성이 많은 김민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며 선수생활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스스로 부담하겠다고 김민석과 어머니인 김 씨를 위로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당사자인 김민석의 선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했던 피겨는 어느덧 김민석의 인생이 되었으며 최고의 보물인 스케이트를 도저히 뺏을 수 없었습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떠날 수 없었던 아이스링크

김민석은 피겨를 끝까지 하고 싶고 될 수 있으면 오래도록 선수생활을 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렸던 김 씨는 김민석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을 빼앗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컸었던 김 씨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계속 선수생활을 하도록 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엄마, 나 이거 그만 두면 뭐해?"라는 아들의 말 속에 모든 답이 들어있었습니다. 아들을 위해 어머니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해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큰 상처의 치유는 어머니의 따뜻한 배려와 김민석에게 가장 소중했던 '피겨스케이팅'이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김 씨는 "아버지를 잃은 민석이에게 더 이상 상실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피겨 선수의 길을 계속 걸어가게 하고 싶었고 그 결정에 민석이가 어느 정도 치유됐다고 본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민석이 아버지도 아들이 계속 피겨선수를 하는 것을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어린 아들의 꿈을 이루어주고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김 씨는 일선의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피겨선수들을 따라다니며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피겨 맘'이 아닌, 김민석의 미래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지원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에 대해 김 씨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했으면 한다"라고 답변하며 뜨거운 눈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생계를 꾸려갈 수입이 멈춘 현재, 김민석의 훈련 지원비는 김 코치가 모두 부담하고 있으며 피겨스케이팅과 김민석의 팬 카페 등에서는 어려운 현실에 놓은 김민석을 돕고자 하는 모금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도저히 할 수 없었던 피겨가 김민석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나이를 먹어서도 오랫동안 피겨선수로 활동하고 싶다는 김민석은 자신이 가장 행복해 하는 장소인 아이스링크에 서서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현재 국가대표인 김민석은 더욱 훌륭히 성장해 고생 중인 어머니에게 기쁨을 전해주는 것도 피겨를 하는 목표가 되었습니다. 다음달 초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벌어질 주니어 그랑프리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김민석은 빙판 위에서 포즈를 취해 달라는 필자의 부탁에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보여주었습니다.

김민석은 진심으로 빙판에 있을 적에 가장 행복해하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진 = 김민석 (C) 전현진, 조영준 기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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