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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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야구의 삼성, 그리고 두산

기사입력 2008.09.15 12:11 / 기사수정 2008.09.15 12:11

김영환 기자



[엑스포츠뉴스=김영환] 불펜야구의 삼성, 그리고 두산.


9월 9일, 삼성과 두산의 팀 간 13차전. 삼성은 이날 선발 에니스의 호투를 앞세워 갈 길 바쁜 두산을 2:0으로 따돌렸다.


이날 삼성은 특이한 기록을 하나 세웠다. 바로 올 시즌 외국인 투수가 6이닝 무실점을 한 첫 경기였던 것. 삼성의 올 시즌 외국인선수 잔혹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크루즈의 대체 선수였던 톰 션은 선발로 6경기에 등판해 단 한 경기도 6이닝 이상 투구를 한 적이 없었다. 삼성의 올 시즌 선발 평균 투구 이닝은 4.85이닝으로 8구단 중 최하위.

그렇다면 나머지 이닝은 누가 던진 것일까? 여기에 ‘노예’ 정현욱이 있다.

 


2000년대 최강의 팀을 꼽으려면 현대와 삼성의 대결로 압축된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총 8시즌 동안 현대와 삼성은 각각 3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은 준우승도 두 번 차지해 포스트시즌의 성적은 현대보다 나았다.

페넌트레이스에서도 삼성은 590승 32무 421패를 마크, 567승 22무 453패의 현대보다 .028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현대의 전성기가 2000년대 초반까지였다면 2000년대 중반은 완연한 삼성의 독주체제였다.


2002년 박한이-이승엽-마해영-양준혁-김한수-브리또 등의 강타선을 앞세워 2000년대 첫 우승을 차지한 뒤 2005년과 2006년 한국시리즈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2002년의 우승이 이승엽을 필두로 한 타선의 힘으로 얻은 우승이었다면 2005년과 2006년의 우승은 양상이 달랐다.


2연패의 주인공은 오승환이었다. 여기서 삼성팬들의 불만이 시작된다.

 


삼성이 4위 턱걸이로 준플레이오프 출전권을 얻은 2007년 준PO 2차전. 13,000석 규모의 대구시민운동장은 8,512명의 관중이 든 것으로 집계됐다.


앞선 두 해에 우승을 차지한 팀의 야구열기라곤 보기 어려울 정도의 관중 수였다. 준PO 맞상대였던 한화는 1,3차전 대전공설운동장에 10,500석의 관중을 모두 채웠다. 오매불망 가을야구 하기만을 기다리는 팬들에 비해 삼성팬들의 눈높이는 매우 높았다.


삼성은 전통적으로 타력의 팀이었다. 팀 통산 타율이 .269로 가장 높다. 105경기만 치른 우리나 삼성이 치른 경기의 1/3만을 마친 SK보다도 높은 타율을 자랑하고 있다.

비슷한 경기를 치른 해태+KIA의 타율보다 .007가 높다. 홈런도 3207여개로 2위인 해태+KIA보다 440여개를 더 만들어냈다. 경기당 홈런도 3207HR/3248경기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전통을 갖고 있는 빙그레+한화(2657HR/2861경기)를 앞선다.


이처럼 타력을 앞세운 경기를 하는 삼성의 컬러가 바뀐 것은 선동렬 감독이 부임한 이후부터였다.


선동열 감독이 부임한 2004년부터 현재까지 한 시즌을 선발 등판만으로 마친 선수들은 2005년 해크먼, 바르가스, 2006년 하리칼라, 2007년 브라운, 2008년 오버뮬러, 에니스(3경기)뿐이다. 국내선수들은 모두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투구를 했다.


외국인선수들이 선발로 마운드를 책임지는 동안, 뛰어난 구위를 자랑하는 국내 선수들은 이기는 경기의 승리를 책임졌다. 2004년에는 권오준이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153.1이닝을 던졌고, 2005년에는 오승환이 시즌 중반 구위가 떨어진 권오준과 마무리 보직을 바꾸며 99이닝을 던졌다. 오승환이 마무리를 맡지 않았다면 충분히 100이닝을 넘길 페이스였다.


2006년에도 KO펀치의 위력은 여전했다. 100이닝을 넘기지는 않았지만 권오준이 67경기, 오승환이 63경기를 등판하며, 윤석민(63경기)과 함께 가장 많은 경기에 등판한 선수들이 됐다. (좌완 원포인트 선수들 -등판당 1이닝이 안 되는 선수들- 제외)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와 2005년, 2006년 2연패를 하는 3년 동안 삼성은 줄곧 whip 1위를 내주지 않으며 투수왕국의 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동안 타선은 점점 허약해져 갔다. 2003년 769(616)점의 득점으로 독보적 득점 1위를 달리던 삼성은 선동열 감독이 부임한 이듬해 641(623)점으로 리그 5위를 기록했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심정수, 김한수, 양준혁, 박한이, 박종호 등의 활약으로 614(578)점 - 538(497)점의 득점을 올려 리그 2위의 자리를 유지하는데 성공했지만 2007시즌 497(538)점 7위, 2008시즌 현재까지 5위의 득점기록을 갖고 있다. (괄호 안은 리그 평균 득점 기록)


팀타선이 힘이 떨어지면서 불펜의 부담은 배가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삼성의 야구는 선발이 5이닝만 버텨주면 불펜의 힘으로 경기를 매조지하는 형태가 되었다. 팀 득점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박빙의 승부가 늘어난다는 말이 되고, 동시에 적은 점수차의 상황에서 팀의 승리조 불펜이 출격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삼성의 화려했던 불펜투수 권오준, 권혁, 오승환 등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이전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은 정현욱만이 100이닝을 훌쩍 넘게 던지며 삼성의 불펜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삼성의 올 시즌 방어율과 whip은 나란히 5위에 랭크되어 있다.


삼성 팬뿐만 아니라 모든 야구팬들이 정현욱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노예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불펜의 생명력이 선발의 그것보다 짧기 때문이다. 원포인트 릴리프나 전문 마무리 투수, 등판의 1/3이상을 선발로 나와 던진 선수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불펜으로만 나와 15시즌 이상을 건강하게 던져준 선수는 조웅천, 오봉옥, 송유석 뿐이다.


투수의 보직이 정해지고 일정한 등판간격을 지키는 현대야구가 비교적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되는 2000년대에 들어서 선발로 9회 미만 등판하고 100이닝을 던진 투수는 모두 19명이다. (2000년 오봉옥, 김현욱, 구대성 2001년 김민기, 송신영, 오봉옥, 신윤호, 오상민, 2002년 노장진, 조용준, 이상훈(두산), 이동현(LG), 2003년 전승남, 신용운, 2004년 유동훈, 전준호, 2005년 황두성, 2007년 임태훈, 그리고 올해 정현욱.)


이 중 아직도 전성기 때 보여준 구위로 공을 뿌리고 있는 선수는 누구인가. 그리고 여기서 한 선수를 더 주목해야 한다. 2007년의 임태훈.

 

 

두산의 팀컬러도 삼성과 흡사하다. 불펜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야구를 펼치는 팀이기 때문이다. 두산 역시 2000년대 초반 '우동수 트리오'를 앞세운 힘 있는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이었다.


그러나 2002년 우즈와 심정수가 팀을 떠나면서 두산의 공격력은 리그 중위권에 머물렀고, 2006년에는 '두점 베어스'라는 오명과 함께 팀득점 최하위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러나 두산은 빠른 발을 앞세운 기동력의 야구로 2007년 팀득점 2위에 올랐고 올 시즌도 리그 3위권의 득점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두산이 포스트시즌의 단골손님으로 초대받을 수 있었던 데는 투수력의 힘이 컸다. 두산은 김경문 감독체제 출범이후, 방어율 1,2위를 놓친 적이 없다. 물론 두산은 선발투수의 운용에서 삼성과 차이가 컸다. 두산은 박명환, 레스, 리오스, 랜들 등의 강력한 선발진을 꾸려왔다.


그러나 올 시즌은 이야기가 다르다. 박명환, 리오스는 팀을 옮겼고 레스마저 개인사정으로 야구를 떠났다. 랜들은 꾸준히 에이스 급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 올 시즌 두산은 중간에서 11승을 한 이재우를 제외하면 선발 10승을 넘기기가 요원해 보인다.


미국에서 건너온 김선우가 흔들리고, 레스가 전력에서 이탈했으며, 이승학의 부상으로 인한 2군행, 대체용병 레이어가 패전처리로 전락하는 동안 두산의 선발진은 속칭 ‘땜방선발’로 꾸려져왔다. 선발로 1차례 등판한 선수가 모두 네 명으로 다른 어떤 팀보다 그 수가 많다.


결국 최근에는 팀의 마무리였던 정재훈마저 선발진에 합류를 했지만, 가장 좋은 구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임태훈과 이재우의 보직은 변동이 없었다.

 


물론 투수의 속성상 선발에 합류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혈행장애로 긴 이닝 투구를 할 수 없었던 이상훈이나 직구와 변화구 하나 정도의 레퍼토리를 갖고 있는 투 피치 투수의 경우는 짧은 이닝 힘을 쏟아 붓는 불펜에 더 최적화된 스타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각 팀의 레전드가 될 수 있는 선수들을 한 두 해의 몇 승을 위해 남용하는 셈이 된다. 팀의 주인은 바로 팬들이다.

 

 

10일, 한화는 류현진에게 불펜대기지시를 내렸다. 이 날 선취점을 내주고 유원상이 호투한 탓(?)에 류현진은 등판하지 않았고, 다음 날 선발로 등판해 8이닝을 던지며 올시즌 13승째를 따냈다. 8이닝을 던졌다면 주말 3연전에는 중간으로 등판하지 않을 것이 유력하다.


스포츠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류현진이 한화의 중간에서 불펜에이스의 역할을 했다면 한화의 승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비록 올 시즌은 선발 마운드가 붕괴했지만 2006년과 2007년의 한화는 선발진이 가장 오랜 이닝을 준수한 방어율로 막아준 팀이었다.


2006년 두 번째로 많은 이닝(743.2)을 네 번째로 낮은 방어율(3.35/리그평균 3.57)로 던졌고, 2007년에는 가장 많은 이닝(744.2)을 가장 좋은 방어율(3.48/리그평균 4.13)로 던졌다. 2006년 류현진을 제외한 한화 선발 방어율은 3.76으로 리그 6위권이었으며, 2007년에는 3.82로 리그 3위였다.


류현진은 이닝이터라는 점을 보면, 류현진이 선발로 책임져 준 승리는 팀의 기여도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류현진 등판 시 팀의 불펜을 상당히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일시적이지만 류현진이 중간으로 등판한다면 박빙의 승부에서 팀에 몇 개의 승리를 더 챙겨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프로 첫 신인 트리플크라운에 신인왕-MVP 독식. 2년 연속 200이닝 투구, 3년 연속 10승 이상을 했던 2008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승리투수 류현진은 없었을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한민국 선발진은 봉중근-김광현-류현진을 기본으로 한 좌완 선발진이었다. 선발로 출전한 우완투수는 송승준 뿐이었다. 우완투수들은 모두 어디 갔는가.

 

2007년 불펜에서 맹활약을 펼쳐 두산이 페넌트레이스 2위, 포스트시즌 준우승 차지하는데 큰 공헌을 하며 그 해 신인왕에 뽑혔던 임태훈. 2005, 2006년 불펜에이스에서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의 하나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윤석민. 군 제대 후, 만개한 기량을 뽐내며 무너져가는 삼성 투수진에 외로이 우뚝 선 정현욱.


이들의 선발 대결을 볼 수는 없을까?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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