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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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다이어리] '평화'보다 '통제' 선택한 베이징, 그들에게 올림픽은?

기사입력 2008.08.20 09:16 / 기사수정 2008.08.20 09:16

박형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베이징, 박형진 기자] "올림픽 때문에 못 살겠어요!"

많은 중국인에게 올림픽은 그야말로 축제입니다. 자국 대표팀이 금메달 39개로 종합순위 1위를 달리고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중국 선수의 선전을 전하는 뉴스가 나옵니다.

경기장과 거리에서 느끼는 올림픽 열기는 꼭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을 연상시킵니다. 개막식이 있던 날, 각 도시의 중국인은 너나 할 것 없이 광장에 모여 개막식을 함께 보며 "짜요, 쭝궈"를 외쳤습니다. 오성홍기와 올림픽 엠블럼 스티커를 이용해 온몸을 치장하고, 올림픽 엠블럼 모양으로 머리를 염색한 사람도 경기장과 거리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 관련 상품을 파는 길거리 상인이 생겼고, 올림픽 공식 스폰서인 아디다스가 만든 올림픽 티셔츠는 불티나게 바쁘고 있습니다. 태극기를 이용해 다양한 패션을 연출하고, '대~한민국'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응원구호를 외쳤던 월드컵 당시의 '붉은악마'와 비교하면 아직 수준이 낮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놀랄만한 열기와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중국의 '라라두이(응원단)'입니다.

그러나 올림픽이 모두에게 즐거운 축제인 것은 아닙니다. 올림픽 때문에 즐거워하는 이들 못지않게 많은 중국인이 "올림픽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역에서도 짐 검사‥ 어디서나 "검색, 수색"

올림픽을 주최한 중국 정부가 가장 크게 역점을 둔 것은 역시 '안전'이었습니다. 올림픽을 계기로 일부 소수민족이나 불만분자의 테러 혹은 시위가 일어날 것을 우려한 중국 정부는 보안 검색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마침 올림픽 직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에서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하며 이러한 보안 검색의 수준이 대폭 높아졌습니다.

경기장에 들어가는 관중은 물론이고 기자들과 자원봉사자까지 짐 검사와 몸수색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검색은 안전을 위해서 당연히 거쳐야 하는 것이지만, 베이징 올림픽의 보안검색은 사람을 질리게 할 정도입니다. 션양 올림픽 스타디움을 찾은 기자는 컴퓨터와 사진기 등을 모두 켜보고 작동시켜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선크림까지 직접 몸에 발라본 뒤에야 겨우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이유없이 녹음기 반입 여부를 고민하던 공안과 10분간 승강이를 벌인 끝에 말이죠.

이런 보안검색은 경기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이징의 매 지하철역에는 엑스레이 짐 검사기가 있어 검색대를 거친 후에야 지하철을 탈 수 있습니다. 한산한 역의 경우 이러한 짐 검사가 그리 힘들지는 않지만, 출퇴근시간이나 환승역의 경우 짐 검사 때문에 오랜 시간을 지체해야 합니다. 홀짝제에 올림픽전용차선까지 마련해 가뜩이나 차로 이동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시민의 발' 지하철이 이렇게 묶여버리니 시민들이 짜증을 내는 것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평화' 대신 '통제' 선택한 베이징

강화된 보안검색은 베이징 올림픽의 성격을 보여주는 단면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올림픽 관련 정책과 연계시켜보면,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 정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베이징시 정부는 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후 대대적인 도시 정비에 나섰습니다. 과거 베이징의 모습을 간직해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았던 후통(골목)을 '낙후한 도시경관'이라며 완전 철거해버렸고,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유용했던 인력거 역시 유사한 이유로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후통에 살던 많은 이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보금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베이징시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대다수의 클럽을 폐쇄했습니다. 먹을거리 문제가 불거지며 서방여론이 좋지 않자 양꼬치를 비롯한 길거리 음식의 판매도 전면 금지해버렸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혼잡을 우려한 베이징시는 다른 지방에서 온 유민들을 개막식 전에 시 밖으로 내쫓았고, 비자 정책을 강화해 중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의 숫자까지 제한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을 종합해서 보면, 중국 정부는 문제가 될만한 소지를 철저히 잘라버리는 식으로 올림픽을 준비해왔습니다. 부족한 점을 개선하는 대신 단점을 가리고, 없애고, 쫓아내는 방식을 택한 것이죠.

베이징 올림픽, 중국의 발전 계기 될까?

기자와 친분을 맺고 있는 중국인들은 몇 해 전부터 입을 모아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해질 것"이라 말해왔습니다. 올림픽이라는 큰 국제대회를 치르며 중국이 당당한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될 것이고, 중국 국민 역시 그에 걸맞은 시민의식을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서방언론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 기대보다 걱정스런 예상을 쏟아냈습니다. 서방언론은 베이징의 스모그, 해결되지 않은 인권문제, 공중도덕의 문제, 혼잡한 도심 체증 등을 지적하며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에 회의감을 드러냈죠. 중국 정부는 언론을 통해 서방언론의 보도 방향을 비판하며 부정적인 시각을 억누르고자 애썼습니다.

한편으로는 중국 정부 역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고자 애썼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면 중국 사회가 올림픽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감추는 방법을 선택했고, 그 결과가 지금 엄청난 통제와 감시 속에서 치러지고 있는 베이징 올림픽인 것입니다.

베이징의 공기는 분명 작년에 비해 좋아졌고, 길거리는 깨끗해졌으며, 아직까지 큰 사고 없이 순조롭게 올림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난 후 베이징이 지금과 같을지, 지금보다 나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짝홀제가 끝나면 도심 혼잡은 다시 심해질 것이고, 멈추었던 공장이 다시 가동되면 공기는 다시 오염될 것입니다. 온갖 통제가 올림픽의 폐회와 함께 사라지면 베이징은 이전의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중국이 대외적인 '보여주기'에 바쁜 나머지 내부적으로 발전할 기회를 잃었다고 결론을 짓는 것은 아직 이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올림픽 이전의 중국과 올림픽 이후의 중국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과연 중국이 기대한 만큼 발전되고 성숙한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버릴 수 없을 듯합니다.



박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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