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년 전 이맘 때였습니다. 축구의 본 고장 유럽, 그 유럽의 축구를 직접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듣고 제 온 몸으로 느끼고 와야 속이 풀릴 것 같아 유럽으로 ‘축구배낭여행’을 떠났던 것이... 3주라는 여행 기간 유럽 각국을 돌며 축구경기를 찾아보고 명문 클럽들의 경기장을 탐방했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이 외치는 열정적인 함성을 들으며 축구에 대한 그들의 뜨거운 열기가 얼마 만큼인지 직접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클럽과 경기장을 하나의 관광코스로 만들어 놓은 모습에서는 클럽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들의 자부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축구는 유럽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기사를 통해 유럽축구여행을 통해 제가 보고 느낀 생생한 경험담을 이곳에 풀어 놓으려합니다. 물론 3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축구 몇 경기 보고 왔다고 해서 유럽축구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축구를 사랑하는 유럽인들의 생생한 모습과 문화를 느끼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 됩니다. 덧 붙여 유럽축구여행을 계획하시는 다른 분들에게는 이 기사들이 좋은 지팡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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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단계에서 세운 목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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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뛰고 있는 한국선수들의 경기를 보자 -경기장을 가득 채우며 응원을 펼치는 유럽인들의 함성 속에 파 묻히자 -세계의 유명한 선수들이 플레이 하는 모습을 TV가 아닌 내 눈으로 직접 보자 -유럽 축구 경기 적어도 3경기 이상은 보자 -경기를 못 보는 명문클럽은 경기장 투어라도 해서 그 곳을 경험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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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 유럽축구! 내가 정복해 주마
유럽축구여행이란 것을 처음으로 계획한 것은 군복무 시절 이었다. 전역 후 학교 복학이전 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를 구상하던 중 문득 떠오른 것이 배낭여행이었고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주제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 후 나는 바로 아르바이트를 통해 여행 경비를 모으는 것으로 계획에 착수했다. 목표일을 대략 3달 정도 앞두고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것도 혼자서 외국을 나간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챙겨야 할 것,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 등 준비할 게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축구여행에 대한 정보의 부족이었다. 유럽 배낭여행에 대해 여러 가지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는 여행사들도 유독 축구여행이라는 분야에서는 문외한이었다.
유럽에 가면 축구를 볼 수는 있는지?, 경기 티켓은 어떻게 구입해야 하는지?, 경기장은 또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는데 손쉽게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여행사 및 현지 민박인들로부터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했고, 매일 밤 외국 구단 홈페이지와 축구관련 사이트 등을 돌아다니며 알기 힘든 알파벳들과 씨름을 벌였다. 축구여행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마저 생겼던 준비기간 이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고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미지의 세계를 내가 개척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실재여행보다 더 어려웠던 여행준비를 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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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행 항공티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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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노력 끝에,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정보는 수집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현지에 가서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이런 힘든 준비가 있었기에 여행을 하는 데 있어 성실할 수 있었고 그 만큼 많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04년 1월 26일 낮 설고 낮선 유럽 한가운데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유럽축구! 내가 간다. 네 녀석이 무엇이든 꼭 정복하고 오리라’
@두 번째 이야기<스타드 드 프랑스로 유럽 축구 여행의 문을 열다.[2004.1.27]>
유럽 축구 여행 첫 번째 경기장 방문지는 파리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스타드 드 프랑스
, 바로 프랑스 경기장이었다. 파리 북역에서 RER<도시고속전철과 비슷한 개념> 한 구간 거리에 있는 프랑스 경기장의 주변은 매우 한적한 모습이었다. 경기장을 찾기 얼마 전 까지 내린 눈이 경기장 곳곳에 쌓여 경기장의 아름다움을 더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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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드 드 프랑스 투어 티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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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전 이라 그런지 경기장 주변은 매우 한산했다. 투어를 위해 경기장에 들어갔을 때 내가 첫 번째 방문객이었다. 경기장 가이드 투어 비용은 10유로였는데 나는 학생할인을 받아 8.5유로에 티켓을 구입했다. 아직 가이드 투어 시간이 아니라 일단 혼자서 투어 홀을 둘러보았다. 스탠드로 들어가기 전 전시실에는 경기장 설계도와 중간 중간 경기장이 건설되어 가는 모습을 담은 그림, 사진들 그리고 경기장의 축소모형(이 모형도 크기는 사람 반만했다.)등이 있었다. 이어진 룸에는 경기장 활용에 대한 그림들, 98월드컵 사진들, 각국유니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여러 가지 영상물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연결된 길을 따라가니 경기장 스탠드로 나갈 수 있었다. 지단이 터트린 두 개의 헤딩슛, 머플러를 흔들며 기뻐하던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프랑스 선수들의 모습 등 98월드컵 결승전의 감흥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 했다.
가이드 투어는 영국인 노부부와 나 이렇게 3명이서 함께 했다. 프랑스인 가이드는 약간은 서툰 영어로 설명을 했는데 오히려 나는 알아듣기 편했다. 가이드 투어는 경기장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코스로 이루어져 있었다. 선수락커와 샤워실, 인터뷰 존을 거쳐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가고 오는 입구를 통해 피치<축구경기장의 잔디그라운드>로 나왔다. 솔직히 국내의 어떤 경기장의 내부도 그렇게 자세하게 살펴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가이드 투어의 설명에 따르면 이 경기장은 프로리그 경기가 열리지 않고 오로지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경기에만 사용된다고 했다. 또한 1층 스탠드는 뒤쪽으로의 이동이 가능해 육상경기장으로도 사용가능하다고 했다. 하룻밤을 작업하면 스탠드 이동이 완료된다는 부연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간단한 질문시간과 사진촬영을 마친 후 가이드 투어는 끝이 났다. 같이 투어를 했던 노부부는 영국 런던에서 오신 분들이었는데 같이 경기장을 나서며 어설프게나마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새로 지어지는 윔블던 경기장에 많은 기대를 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나중에 런던에도 갈 거라니깐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며 감사하게도 가지고 있던 첼시 모자를 선물로 주셨다.
http://www.stadefrance.fr <스타드 드 프랑스 홈페이지>
@세 번째 이야기<아인트호벤에서 박지성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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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트 호벤으로 가는 기차티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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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안희조 |
유럽 여행 중 첫 번째로 본 축구 경기는 바로 PSV아인트 호벤의 경기였다. 사실 PSV아인트 호벤의 경기 티켓은 약간 독특한 방법으로 구할 수 있었다. 여행준비하면서 들은 정보로는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서 소위 빅3라 불리우는 PSV, 아약스, 페예노르트의 경기 티켓은 연간회원이 아닌 이상 당일 현장 구매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축구경기티켓을 판매하는 몇 개의 해외 사이트들을 찾아냈었는데 거기서도 네덜란드 리그의 티켓은 판매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내가 선택한 것이 구단에 이 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여행을 가서 축구경기를 꼭 보고 싶은데 한국인인 내가 표를 어떻게 구할 수 있느냐를 물어 보았더니, 회원이 아닌 여행객이 부탁할 경우 특별히 표를 준비해 놓을 수 있다는 답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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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단과의 이메일을 통해 구입한 PSV-Zwole 경기 티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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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당일 경기장에 있는 매표소를 찾으니 나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프린트한 봉투와 티켓이 준비되어 있었다. 가격은 16.5유로. 제일 값싼 좌석이었지만 유럽축구경기 티켓을 처음으로 손에 쥔 느낌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 날 PSV아인트호벤이 상대할 팀은 당시 리그 최하위를 달리고 있던 FC 쯔볼레였다. 경기 시간은 오후 8시였는데 내가 경기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1시정도, 경기장에서 5분정도 거리에 숙소를 잡고 경기장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PSV아인트호벤은 지역축구클럽이 활성화 된 유럽에서 흔하지 않은 기업구단이다. 모 기업은 전자회사로 유명한 필립스, PSV도 Philips Sport Vereniging의 역자이다. 홈 구장 역시 기업의 이름을 그대로 딴 필립스 스타디움이다. 그러나 PSV는 우리나라의 기업구단과 달리 구단 경영이 독립적이고 자체 수익이 가능한 하나의 자회사나 다름없다.
경기장의 외관은 상당히 세련된 느낌이었다. 각 코너마다 세워진 은색 기둥들은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우주선을 연상시켰다. 스탠드를 받치고 있는 뒤편의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우리나라 월드컵 경기장과는 달리 여기는 경기장 외부를 모두 막아 공간을 만든 뒤 팬샾을 비롯해 매표소, 상가, 음식점, 사무실 등을 비치해 다용도로 활용하고 있었다.
팬샾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반갑게도 이영표와 박지성의 캐리커쳐 상품이었다. 유럽 땅 한가운데서 우리나라 선수의 상품을 보니 어찌나 반가웠던지... 유니폼과 스포츠 용품 이외에도 팬샾에는 구단 엠블럼을 새겨 넣은 각종 생활용품이 즐비했다. 그리고 이날 경기 프로그램책자도 구비되어 있었다.
날씨가 추워 숙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시간은 6시. 6시30분부터 경기장 입장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나온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경기장 주변은 한산한 모습이었고 6시 30분이 되어도 문을 개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지연시간 덕분에 나는 박지성선수를 직접 만나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선수들은 그냥 회사출근 하듯이 양복입고 가방 메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관중들로부터 전혀 격리되지 않은 상태로...
여러 선수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박지성선수를 만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에 있을 때도 만나기 힘들었던 선수를 유럽땅에서 만나게 되다니, 너무나도 놀랍고, 신기했고, 기뻤다. 적어도 이것만으로도 내 여행 계획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예상외로 박지성은 꽤 쑥쓰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같이 사진 찍고 사인 받고, 오늘 멋진 경기 부탁한다는 말을 할 때 까지 내가 들은 대답은 네 번의 ‘네’ 뿐이었다. 박지성을 만나기 직전 같이 경기를 기다리던 할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했었는데 박지성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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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성의 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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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에서 확실한 입지를 굳힌 지금과 달리 당시 박지성은 홈팬들로부터 야유를 받는 등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는데 헛소문은 아니었다. 그런 만큼 이날 박지성이 경기에 출전에 멋진 골을 터트려 주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박지성의 모습은 경기 전 몸 푸는 장면이 전부였다.
덧붙이자면 박지성에게 싸인을 받는 동안 이영표선수도 옆으로 지나갔었는데 차마 박지성 선수에게 사인 부탁해 놓고 다른 데로 달려가기 그래서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다.
@유럽축구를 보다- 1
네덜란드 에레디비지-PSV Eindhoven-FC Zwole[2004.1.28]
경기시작하기 한 시간 20분 전에서야 입장은 시작되었다. 아주 특이한 점은 경기장에 들어가는 입구가 한 명씩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좁고 검표를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한다는 점이었다. 쇠창살 같은 철골 구조물을 지나간 뒤에는 경기진행요원들의 소지품 검사도 받아야 했다. 경기장 폭력으로 여러 차례 홍역을 치른 유럽이다 보니 경기장 폭력 방지에 아주 철저한 모습이었다. 이런 소지품 검사는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빠짐이 없었다.
내가 워낙 일찍 입장을 하는 바람에 관중석이 거의 비어있는 경기장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이곳의 관중석은 우리나라 프로축구와 달리 철저한 지정좌석제였다. 입구번호에 구역번호줄, 행 번호까지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빨간색 스탠드로 둘러싸인 경기장에 붉은 미등이 켜져 있는 내부의 모습은 신비감을 불러 일으키며 첫 번째 유럽축구경기 관전을 앞두고 있는 나를 더욱 들뜨게 했다. 경기장 대형화면은 골대 뒤편이 아닌 각 코너마다 네 개가 설치되어 있었고 음향도 아주 깔끔했다. 그리고 독특한 점이 경기장 지붕에 전열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었다. 추운 겨울에 리그를 치르다 보니 고안해 낸 아이디어 같았다.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팬 서비스가 인상 깊었다.
또 한 가지, 경기장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바깥 외출 한 번도 힘든 우리나라 장애인들에 비해 몇 만의 사람이 모이는 축구장에도 여유 있게 나서는 네덜란드 장애인을 보니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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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V-Zwole 매치 프로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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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안희조 |
이 날 아인트호벤의 스타팅에 특이한 점은 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던 마테야 게즈만의 이름이 빠져 있는 것이었다. 상대가 워낙 약팀이라 컨디션 조절을 시켜주느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먼 곳에서 찾아 온 나로서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영표는 예상대로 선발출전 했고 앞에서도 말했듯 박지성은 후보명단에는 이름을 올렸으나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아인트 호벤 스타팅--
Ronald Waterreus<바테루스>
Kasper Bøgelund<보겔룬트>,Jurgen Colin<콜린>,Wilfred Bouma<보마>,Lee<이영표>
Theo Lucius<루시우스>,Mark van Bommel<봄멜>,Johann Vogel<보겔>,Arjen Robben<로벤>
John de Jong<욘데 용>, Jan Vennegoor of Hesselink<하셀링크>
경기 시작 10분을 앞두고 관중석이 사람들로 가득 차 갈 무렵, 낮에 내리다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모양새를 보니 쉽게 그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굵은 눈발이 떨어지는 가운데 경기는 시작되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써포터즈석 반대편 골대였는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조용하게 경기를 보는 편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일어나고 소리 지르는 것 빼고는.
경기는 예상대로 아인트호벤의 일방적인 공세였다. 전반 16분과 22분 콜린과 욘 데용이, 25분에는 골키퍼의 어처구니없는 실책으로 하셀링크가 한 골을 추가하며 3:0으로 앞서나갔다. 30분이 막 지난 순간 쯔볼레의 ‘안드레 데 리더‘ 라는 선수가 멋진 중거리 슛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한 골로 경기의 분위기가 바뀌지는 않았다.
전반전이 끝나도 눈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 덕에 후반전에 또 다른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눈 내린 하얀 그라운드에서의 오랜지 색 축구공이 나타난 것이다. 겨울에 리그를 쉬는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들이 재밌게만 느껴졌다.
양 팀 모두 소강상태를 보이던 후반전, 25분이 되자 경기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게즈만이 경기에 나서기위해 트레이닝복을 벗고 있었던 것, 장내 아나운서의 멋들어진 소게와 함께 케즈만이 그라운드에 나서자 경기장은 골을 넣은 것 못지않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아인트호벤에서 케즈만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케즈만이 나오자 지리하게 진행되던 경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모두들 케즈만의 골을 기대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PSV는 공격의 고삐를 더 조았다.
아쉽게도 케즈만은 득점을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74분과 86분, 하셀링크와 볼란텐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자신이 PSV공격의 중심임을 입증했다. 이 날 90분 풀타임을 소화한 이영표는 그렇게 많은 오버래핑을 시도하지는 않았고 가끔 올라가서도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수비를 기본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해 나갔다. 이영표가 오버래핑 할 때 Lee! Lee!를 외치는 팬들의 소리를 들으니 이영표만큼은 팬들로 부터도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늘은 실력 차가 많이 나는 팀 간의 경기라 관중들도 그렇게 경기에 열광하지는 않고 비교적 여유 있게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이었다. 그냥 골 잔치를 즐기기 위해 왔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 했다.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그렇게 쏟아져 내리던 눈도 기세를 다 하며 자취를 감췄다. 유럽을 떠나오기 전 ‘과연 유럽에서 축구를 볼 수나 있을까?’라는 불확실성은 이영표, 박지성, 히딩크 감독의 아인트 호벤 경기를 보는데 성공함으로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게다가 박지성선수를 직접 만나보는 행운도 가지지 않았던가? 유럽축구여행의 첫 단추가 아주 짤 꿰어졌다는 기분에 행복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덧 붙여서...숙소에 돌아와 TV를 보니 이 날 있었던 에레디비지 모든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보여주었다. 몇몇 경기는 눈 때문에 연기되었었다. 페예노르트에서 뛰고 있던 송종국의 모습을 네덜란드 TV를 통해 확인한 것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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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익일 네덜란드 메트로 신문에 실린 송종국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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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메트로 지에 실린 장화, 홍련의 임수정. 외국에서 한국영화 기사를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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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