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6.19 14:24 / 기사수정 2008.06.19 14:24
꼴찌에 머무르며 총체적인 위기에 봉착한 LG 트윈스.
시즌 전 강력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시즌을 운용하겠다는 김재박 감독의 계산은 수틀린 지 오래다. 박명환-옥스프링-브라운의 1,2,3선발에 봉중근, 정재복, 최원호, 이승호, 심수창 등 풍부한 4,5선발 요원들까지 갖춰 약한 타격의 약점을 투수력으로 보완하여 2002년 이후 가을의 잔치에 나가지 못했던 LG를 4강권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시즌 전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박명환은 수술대에 오르며 시즌 아웃이 되었고 지난 2년간 삼성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쳤던 제이미 브라운은 올 시즌 '베팅볼 투수'로 전락하여 타자들의 구미에 맞는 볼을 선사하며 퇴출당하였다. 그나마 지난해부터 LG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는 크리스 옥스프링과 지난해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환골탈태'한 봉중근만이 선발진에서 버팀목으로서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시즌 초부터 LG의 허리를 굳건히 지켰던 선수는 정재복과 신인인 정찬헌이었다. 하지만, 박명환과 브라운의 부재로 선발진에 바닥이 드러나게 되자 김재박 감독은 정찬헌을 선발진으로 돌리게 되었다. 두산의 이재우-임태훈만큼의 파괴력은 아니었지만, 나름 정재복과 정찬헌, '더블J' 콤비는 경기 중,후반 상대타선을 효과적으로 잠재우며 LG의 핵심불펜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정찬헌의 선발진 진입은 정재복을 더욱더 외롭게 만들었다.
지난해 홀드왕인 류택현의 부재와 맞물려 정재복의 짝을 이룰만한 인재는 찾기 힘들었다. 김민기는 예전의 포스를 찾긴 힘들었고, 신인인 이범준은 빠른 공을 보유하긴 했지만 투구시 헤드업이 되는 불안정한 투구자세로 인한 제구력 부재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공익근무를 마친 김광수 또한 2군 에이스로서의 모습과는 달리 1군에서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좌완 사이드암으로 변신한 김재현은 '백전노장' 류택현을 대신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마무리인 우규민도 연방 불을 지르며 LG에게 '뒷심부족'이란 커다란 숙제를 부여했다.
이러한 일련의 힘든 상황에서 LG가 믿을만한 투수는 정재복뿐이었다.
정재복은 인하대 시절에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대표로 참가하여 우승한 덕에 병역을 면제받은 유망주였다. 그 당시 이상훈, 박명환 등의 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프로들 사이에서 아마추어로는 유일하게 대표로 선출될 만큼 그 기량을 인정받았다. 192cm의 훌륭한 하드웨어와 높은 곳에서 내리찍는 직구가 인상적이었던 정재복은 2003년엔 1군에 단 1게임만 출전하는데 그쳤지만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무대에 진입하게 되었다.
2006년엔 선발로 23번 등판하여 7승 10패 평균자책점 3.59라는 호성적을 올리며 143이닝을 소화하여 이닝이터로서의 가능성도 인정받았고, 2007년엔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126이닝을 투구하며 LG의 마당쇠로 자리를 잡았다.
정재복 본인은 선발을 원하지만, 팀의 사정상 허리에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역시 팀이 자신에게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 불펜에서 항시 대기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현재 정재복은 LG불펜의 핵심으로서 31게임에 출장하여 3승 5패 평균자책점 3.24를 기록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그리 뛰어난 성적은 아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4월에 정찬헌과 함께 역할을 분담했을 때에 그의 성적은 2승 1패 평균자책점 1.59, 이닝당출루허용율(WHIP)은 0.79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언터쳐블' 피칭을 선보였다.
직구 구속은 140초 중반대로 형성되었지만 192cm라는 큰 키에서 내리찍는 직구는 전광판에 찍히는 구속이상의 힘을 지녔다. 그리고 정재복에게 지난해까지 항상 지적되어온 투구시 공을 끝까지 응시하지 못하고 고개가 땅으로 처박히는 투구폼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일정부분 고쳐짐으로써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정재복은 컨트롤이 그리 좋은 투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올 시즌 현재 50이닝을 투구해서 볼넷을 18개밖에 허용하지 않은 모습은 점차 컨트롤에 눈을 떠가고 있다는 증거로 삼기에 충분하다.
4월의 호성적과는 달리 5월부터 체력에 급격한 문제를 보이며 점차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정재복이 현재 던진 50이닝은 선발 투수를 제외하고는 2위에 해당되는 기록이다. 1위인 한화의 윤규진이 51.2이닝을 투구하였지만, 시즌 초반 선발이었던 것을 감안했을 때에 8개 구단 불펜진 중 정재복이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가 살얼음판 리드를 하고 있을 때나, 동점인 상황, 1~2점 뒤지고 있지만 승부가 가능한 상황 등 항상 정재복은 마운드로 걸어나왔다.
5월에 14번이나 등판하며 LG의 허리를 수호했지만, 죽음의 9연전에서의 1승8패와 더불어 9연패를 달리며 최하위로 곤두박질친 팀성적 때문에 아무도 정재복의 고생을 알아주지 않았다. 홀로 LG의 불펜을 책임지며 고군분투한 정재복은 점차 과부하에 걸려갔고, 6월엔 누적된 피로로 인해 자주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여 4,5월의 좋았던 모습을 뒤로한 채 '비운의 투수'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6월 7일 서울라이벌인 두산과의 잠실경기에서 김동주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고개를 떨어냈고, 6월 10일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6월 10일 SK와의 문학 원정 경기에서 SK킬러 봉중근에 뒤에 이어 7회말 구원등판한 정재복은 1루 주자로 있던 박재상을 견제사 시키며 잡아냈다. 견제사를 잡자마자 온몸을 뒤흔들며 그간의 고생과 설움을 털어버리는 듯한 포효를 내지른 모습은 과히 압권이었다. 하지만, 9회 말에 흔들리며 7회 견제사로 잡아낸 박재상에게 결국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며 팀의 승리를 지키지 못한 채 마운드 위를 쓸쓸히 내려왔다.
LG로서도, 정재복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6월이었다.
마무리인 우규민이 신뢰를 주지 못한 채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고,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 투입할 수 있는 대안은 정재복뿐이었다. 끝내기 안타를 맞고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더라도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LG팬들은 정재복에게 쓴소리를 하지 않았다. 정재복이 나홀로 LG의 허리에서 고군분투하며 활약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명환과 브라운의 부재와 선발진에서 활약해주어야 할 이승호, 최원호, 심수창의 부상과 컨디션 저하에 따른 2군행, 여기에 허리에서 같이 활약해 주어야 할 신인 정찬헌의 선발진 진입으로 정재복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게다가 두산에서 LG로 둥지를 옮긴 이재영마저 선발로 쓰겠다는 김재박 감독의 복안에 LG의 중간라인은 휑하기만 하다. 류택현이 돌아오긴 했지만, 원포인트 릴리프로서 활용될 전망이기에 정재복이 더욱더 힘을 내주어야만 한다.
LG를 지키는 든든한 '선산'인 정재복. 장마가 도래하였기에 체력을 충분히 비축하였다가 필요할 때 등판하여 모든 힘을 집중시키고, 우천 취소된 경기에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장마와 올림픽 휴식기가 다가오기에 LG로서도, 정재복으로서도 막판 대반격을 위한 몸부림이 필요한 시점이다. LG가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정재복의 부활이 절실히 필요하다.
과연 정재복의 부활이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는 LG에 어떠한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정재복 (C) LG트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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