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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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휩쓴 챔피언스리그, 열기만은 '모스크바'

기사입력 2008.05.22 07:07 / 기사수정 2008.05.22 07:07

박형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박형진 기자] "어제부터 잠도 못 잤습니다."(첼시팬)
"내일 출근하려고 정장까지 챙겨왔어요."(맨유팬)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둔 서울은 그야말로 '잠못드는 밤'이었다. 서울 시내 일부 클럽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즐기기 위한 팬들을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 평일 밤임에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기 위해 밤을 지내는 집들도 적지 않았다. 언론에는 '새벽 경기를 보기 위한 건강 수칙' 등의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그 열기는 한국에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중계하는 MBC GAME 히어로 센터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측 중계사 MBC ESPN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의 열기를 한국에서도 재현한다는 취지 하에 양 팀 서포터를 대동하고 경기를 중계하기로 결정한 것.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첼시의 팬들은 밤잠도 마다하고 이른 시간부터 중계장소를 찾아 장사진을 이루었다.
 
각 팀 서포터의 열정은 정말 대단했다. 한 첼시팬은 이미 이틀째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경기를 앞두고 너무 긴장되어 잠을 잘 수 없었다는 것. 결국 이 팬은 이른 새벽잠을 포기하고 11시부터 히어로 센터에 나와 입장을 기다렸다고 고백했다.

한 직장인 맨유팬은 내일 출근을 대비해 정장까지 준비해서 이곳 히어로 센터를 찾았다고 말했다. 경기가 6시나 되어야 끝나기 때문에 집에 가서 단잠을 청하는대신 곧바로 출근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 이 팬 역시 오늘 밤잠은 포기했다고 밝혔다.

맨유와 첼시 양 팀 서포터는 모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자신했다. 맨유팬들은 박지성이 꼭 선발출장해 골을 넣어 맨유의 승리를 이끌고 한국의 위상도 높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맨유의 현란한 공격이 첼시를 앞도할 것이라는 분석도 곁들였다.

자신을 '12년째 첼시를 사랑하는 올드팬'이라 소개한 첼시팬의 분석은 거의 해설가 수준이었다. 첼시의 득점원이 맨유에 비해 다양하기에 오늘 경기에서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것. 첼시팬들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드록바, 존 테리 등이 골을 넣어주었으면하는 소망을 숨기지 않았다.

박지성 결장에 '배신감', 경기 시작하자 '환호'

히어로 센터의 분위기를 일시에 가라앉힌 소식이 있었다. 박지성의 선발명단뿐만 아니라 후보명단에서도 빠진 것. 맨유팬들은 "이런 식으로 팬들을 기만하는 데에 배신감을 느낀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부상 때문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지만 실망한 마음을 위로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팬들의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하자 양 팀 서포터들은 경쟁적으로 함성을 지르며 자신의 팀을 응원했고, 선수들이 경기장에 나오자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경기가 시작되면서 긴장감은 극에 달했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선수들의 플레이에 환호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박지성의 결장에 실망한 맨유팬들은 박지성 대신 출장한 하그리브스가 오른쪽 측면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치자 열광적으로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하그리브스에 이어 호날두가 개인기로 측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자 맨유팬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첼시팬들 역시 좋은 찬스가 나오자 박수와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스콜스와 마케렐레가 충돌하는 장면에서는 장내 분위기가 잠시 어수선해졌지만, 비디치의 헤딩이 자살골로 이어질뻔한 상화이 연출되자 아쉬움 섞인 환호가 터져나왔다.

호날두-램파드 '치고 받고' 뜨거워진 히어로 센터

골이 많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는달리, 선제골은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나왔다. 전반 26분, 브라운의 크로스를 이어받은 호날두가 높은 타점에서의 헤딩슛을 성공시킨 것. 신장이 작은 에시앙의 마크를 절묘하게 뚫은 '득점왕' 호날두의 놀라운 골이었다.

한 골이 들어가자 경기도 뜨거워졌고, 히어로 선터의 분위기도 함께 뜨거워졌다. 발락의 헤딩슛이 반 데 사르의 선방에 막히고, 이은 역습 상황에서 체흐가 두 차례 선방에 막히자 첼시 서포터의 분위기도 함께 고조되었다. 지루한 경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무색하게 할 만큼 흥미진진한 대전, 흥미진진한 응원전이었다.

맨유의 우세로 갈듯한 상황에서 첼시의 반격이 성공했다. 에시앙의 중거리슛이 수비를 맞고 튀어나오자 이를 램파드가 골로 연결시킨 것. 램파드가 최근 사망한 어머니를 추모하는 세레머니를 하자 팬들도 램파드의 세레머니를 따라하며 골을 넣은 기쁨을 첼시 선수와 함께 하는 모습이었다.

하프 타임에도 식지 않은 '축구사랑'

양 팀 서포터들은 하프 타임이 되자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정비하는 모습이었다. 허기진 배를 빵으로 달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서도 축구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맨유팬들은 전반전 막판 한 골을 실점한 것이 안타깝지만 전반적으로 경기를 잘 치루었다고 평가했다. 맨유팬들이 뽑은 맨유 최고의 선수는 역시 골을 넣은 호날두였지만, 박지성 대신 출전해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준 하그리브스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내렸다.

첼시팬들은 전반 초반 밀리는 분위기를 극복하고 한 골을 넣은 자신의 팀에 대해 흡족해하는듯 했다. 첼시팬들 역시 골을 넣은 램파드와 열정적인 활동량을 보여준 발락을 전반전 최고의 선수로 뽑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반전 분위기는 첼시, 첼시팬도 '의기양양'

후반전은 후반전은 첼시의 분위기였다. 첼시는 수비를 안정시키며 공격에서도 짜임새를 갖추기 시작했고, 조 콜의 컨디션이 올라오면서 첼시의 일방적인 공세가 이어졌다. 일방적인 공세가 계속되자 응원전도 첼시팬들이 이끌어가는 분위기였다.

첼시팬들의 분위기는 후반 33분 드록바의 슈팅이 나오자 절정에 달했다. 드록바가 다소 먼 거리에서 정확한 슈팅을 했고, 이 슈팅은 거의 골이 되는듯 했으나 골포스트를 맞으며 빗나가고 만 것. 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드록신'을 영접하고자 했지만 골포스트의 방해로 신과의 교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맨유는 스콜스 대신 긱스를 투입하면서 공격을 강화했지만, 미드필더 싸움에서 밀리며 힘겨운 싸움을 계속했다. 맨유에게 별다른 골 찬스가 나오지 않자 맨유의 팬들도 기가 죽은듯 조용히 경기를 관람했다. 간간히 나오는 호수비에 박수를 치거나, 역습 찬스를 숨 죽이고 보고 있었을뿐 전반전과 같은 좋은 분위기의 응원은 나오지 않았다.

'120분으로는 부족해?' 승부까지 간 승부

결국, 양 팀의 승부는 90분으로 끝나지 않았다. 1-1 상황에서 더 이상 골이 터지지 않으며 연장전으로 승부가 넘어간 것. 팬들은 아침 출근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경기 결과에 몰두한 팬들로서는 경기 외의 어떤 것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듯 했다.

첼시팬들은 다시 한 번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램파드의 감각적인 터닝 슈팅이 또 골포스트를 맞은 것. 첼시팬들은 결정적인 골 찬스를 놓친 것이 무척 아쉬운듯 자리에 앉을 줄을 몰랐다.

양 팀 선수 모두 좋지 않은 잔디 상태 때문에 연장전 들어 크게 체력이 저하된 모습이었고, 위협적인 골찬스가 점점 나오지 않았다. 팬들을 긴장시킨 상황은 뜻밖의 퇴장이었다. 드록바가 테베즈와의 언쟁 과정에서 테베즈의 얼굴을 가격해 퇴장을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던 것. 드록바의 퇴장으로 10명이 뛰게 된 첼시는 승부차기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양 팀은 종료 직전 마지막 교체를 지시하며 승부차기를 대비했다. 첼시는 마케렐레 대신 벨레티를, 맨유는 브라운 대신 안데르손을 투입한 것. 이제 승부는 승부차기로 넘어갔고, 히어로 센터에는 환호 대신 적막이 감돌기 시작했다.

'일희일비'의 러시안 룰렛, 그리고 맨유

챔피언스리그 결승답게 양 팀의 승부차기 역시 '박진감 최고'였다. 첫 번째 위기는 호날두의 실축. 호날두의 슈팅이 체흐 골키퍼에게 걸리며 승리의 여신은 첼시를 향하는듯 했고, 기세등등한 첼시팬들 역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맨유팬들은 고개를 숙이며 긴장감 속에 경기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불과 2분 뒤,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존 테리가 미끄러지며 페널티킥을 실축하자 이번에는 첼시팬들이 고개를 숙였다. 맨유팬들은 코 앞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헌납할 위기를 벗어나자 다시 기운을 찾은듯 했다.

결국, 승부는 맨유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아넬카의 슈팅은 반 데 사르의 손에 걸렸고, 그것이 기나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의 끝이었다. 맨유팬들은 소리를 지르며 우승의 기쁨을 감추지 않았고, 첼시팬들은 첼시 선수들처럼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첼시팬은 인터뷰 도중에도 눈물을 보이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듯 했다. 첼시팬은 모든 선수들이 잔류해서 다음 시즌 꼭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히면서 불거진 눈시울을 훔쳤다. 맨유팬은 여전히 박지성의 결장을 아쉬워하면서도 기쁨에 겨워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한국에는 어느덧 아침이 밝았다. 출근과 등교를 준비하는 팬들은 이제서야 현실로 돌아온듯 했다. 이들이 있었던 히어로 센터, 오늘만은 이곳이 모스크바였다.

사진 : 장준영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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