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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업튼 파크'...역사 속으로 사라진 또 다른 경기장은?

기사입력 2016.05.11 06:00 / 기사수정 2016.05.10 17:09

신태성 기자


[엑스포츠뉴스=신태성 기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가 11일(한국시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112년을 동고동락한 불린 그라운드(Boleyn Ground)를 떠난다. 웨스트햄은 토트넘 홋스퍼와 입찰 경쟁 끝에 2016~2017시즌을 시작으로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을 임대해 사용할 예정이다. 축구팬들에게 지역 이름인 ‘업튼 파크’로 더 유명한 불린 그라운드는 1904년부터 웨스트햄의 홈 경기장이었다. 경기 전 날리던 비눗방울은 단연 불린 그라운드의 트레이드마크. 영화 ‘훌리건스’에서도 모습을 보인 불린 그라운드는 2009년 ‘런던 라이벌’ 웨스트햄과 밀월FC의 칼링컵 2라운드에서 양 팀 팬들의 칼부림까지 이어진 집단 난투극을 겪기도 했다. 해당 부지는 웨스트햄에 의해 매각된 뒤 상점들을 포함한 주택가로 변할 계획이다. 이제 곧 역사에서만 볼 수 있게 되는 불린 그라운드를 기리며, 21세기에 같은 운명을 겪은 경기장 네 곳을 소개해본다.

하이버리 스타디움(Highbury Stadium)-아스널
 
공식 명칭 아스널 스타디움. 일명 하이버리 스타디움은 1913년부터 2006년까지 아스널의 홈 경기장으로 사용돼왔던 북런던의 경기장이다. 오래된 아스널 팬들에게는 지금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보다 훨씬 익숙한 이름이자 ‘축구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1910년 아스널을 인수한 헨리 노리스는 재정적 이유로 이전까지 런던 남동쪽 울위치에 있었던 아스널을 북런던 지역으로 옮겨오고 싶어 했다. 기존의 주민들과 지역 축구팀 팬들은 축구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했지만 노리스는 계획을 강행해 하이버리를 건설한다. 이 때 아스널의 하이버리 입성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바로 1899년부터 북런던에 자리 잡고 있던 토트넘 팬들이었고, 이는 ‘북런던 더비’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참고로 하이버리와 토트넘 홈 경기장 화이트하트레인 사이의 거리는 약 6km에 불과했다.
 
아스널은 1913~1914시즌부터 ‘성 금요일’과 크리스마스에 경기를 하지 않고, 경기장 내 과음을 금지하는 조건으로 하이버리를 사용했다. 해당 시즌 하이버리에서의 역사적인 첫 득점자는 아스널 선수가 아닌 레스터 포스(현 레스터 시티)의 토미 벤필드였다. 하이버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에 의해 일부가 붕괴되기도 했고, 1948년 제14회 런던 하계 올림픽의 축구 경기장으로도 사용됐다.
 
개장 당시 동쪽 스탠드만 존재했던 하이버리의 수용 인원은 9,000명이었으나 1930년대 보수·증축 공사로 약 60,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는 1990년대 들어 ‘힐즈버러 참사’를 계기로 안전 문제가 대두돼 스탠드에 좌석을 전면적으로 설치하면서 38,419명으로 줄어들었다.
 
1998~1999시즌과 1999~2000시즌 하이버리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아스널의 홈 경기장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굴욕도 맛봤다. 광고판을 설치할 장소가 부족해 챔피언스리그 규정상 경기장 조건에 미달된다는 이유로 아스널은 챔피언스리그에서 웸블리 스타디움을 사용했다. 하이버리는 2003~2004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과 49경기 연속 무패 행진 기록의 영광을 함께 했고, 2005년 아스널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충돌했던 ‘하이버리 터널 사건’을 겪으며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93년 동안 아스널의 안방이었던 하이버리는 수용 인원, 안전 문제로 이전이 확정되며 2005~2006시즌을 마지막으로 역사를 마감했다. 5월 7일 위건 애슬레틱과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하이버리의 왕’ 티에리 앙리는 페널티킥으로 득점 후 그라운드에 키스하며 정든 경기장에 작별을 고했다. 이후 역사적인 장소의 보존을 위해 동쪽 스탠드와 서쪽 스탠드만 남기고 철거, 현재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에쉬버튼 그로브(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로 이전한 뒤 아스널은 한동안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2013~2014시즌, 2014~2015시즌 FA컵 우승이 에미에리츠와 함께 한 우승의 전부다. 오히려 3억 9,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건설비용의 후유증으로 한동안 구단 차원에서 긴축 재정만 펼쳤다. 새 구장 이전 후 관중들의 열기가 약해졌다는 말도 나온다. 여러모로 아스널 팬들에게 하이버리는 아직도 그리운 이름이다.
 
Tip - 하이버리는 닉 혼비의 소설 ‘피버 피치’에서도 등장한다. 아스널 팬으로 유명한 혼비가 자신의 경험에 소설적 요소를 가미해 만든 작품이다. 아스널 팬이 주인공인 이 소설의 주 무대가 바로 하이버리다. 1997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에도 하이버리는 심심치 않게 모습을 비춘다. 주연은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 나왔던 콜린 퍼스다.


 
메인 로드(Maine Road)-맨체스터 시티
 
메인 로드는 맨체스터 시티의 두 번째 지정 경기장이다. 1880년 창단 후 여러 경기장을 전전하던 맨시티는 1887년 하이드 로드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1920년 하이드 로드에 화재가 발생해 경기장이 손상되자 새로운 둥지를 구하던 맨시티는 1923년 경기장을 건축하게 되는데, 이곳이 메인 로드다. 메인 로드가 위치한 지역은 원래 개 사육장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메인 법(절주 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지역을 매입하면서 ‘메인 로드’로 불리게 됐다.
 
메인 로드는 8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 규모의 경기장으로 ‘북런던의 웸블리’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개장 후 첫 경기에 58,159명의 팬이 입장한 이래 1934년 FA컵 스토크 시티전에서는 84,569명의 관중들이 몰린 적도 있었다.
 
맨시티는 자신들의 안방 메인 로드를 다른 팀과 공동으로 사용한 적도 있다. 그 팀은 더비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올드 트래포드가 폭격으로 심하게 파손되자 맨유는 1946년 같은 지역의 맨시티에 경기장 공유를 부탁한다. 맨시티가 허락해 ‘한 지붕 두 가족’이 성사되고 두 팀의 동거는 올드 트래포드가 복구된 1949년까지 계속됐다. 맨시티는 1956~1957시즌에도 맨유의 요청에 의해 메인 로드를 빌려준 적 있다.
 
맨시티는 1990년대 들어 노후화된 메인 로드의 일부를 재건축했다. 이어 45,000석을 추가하는 증축 공사를 계획했으나 1996년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을 당하며 잠시 보류하게 된다. 프리미어리그에 안착한 2003년에 경기장 증축과 이전 사이에서 고민하던 맨시티는 결국 메인 로드를 포기하고 1년 전 새로 개장한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으로 안방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현재는 에티하드 스타디움으로 이름 붙여진 이 경기장은 맨체스터 시의 외곽에 위치해 있다.
 
메인 로드의 피날레를 장식한 골은 맨시티 선수가 아닌 사우샘프턴의 미카엘 스벤손이 기록했다. 맨시티 선수 중 메인 로드의 마지막 득점자는 올림피크 리옹에서 임대 온 카메룬 출신의 마르크 비비앙 푀다. 푀는 2003년 4월 21일 선더랜드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는 쐐기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푀는 2003 국제축구연맹(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4강에서 콜롬비아를 만나 경기를 치르던 도중 ‘비후성 심근증’으로 사망했다. 맨시티는 푀의 등번호였던 23번을 영구 결번 처리하고 그를 추모했다.
 
Tip - 메인 로드에서는 1996년 맨시티의 팬으로 알려진 밴드 그룹 ‘오아시스’의 공연이 열린 적 있다. 인기곡 ‘Don't Look Back in Anger’이 실린 2집 앨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의 발매 기념으로 이틀간 열린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There and Then’이라는 비디오로 나오기도 했다. 맨체스터 시티 유소년팀 출신이자 오아시스의 팬인 한 축구선수도 콘서트를 보기 위해 메인 로드를 방문했는데,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라이언 긱스다.
 


에스타디오 산 마메스(Estadio de San Mamés)-아틀레틱 빌바오
 
스페인 바스크 지방 빌바오 주에 있었던 에스타디오 산 마메스는 약 100년간 ‘바스크의 심장’ 역할을 했다. 1913년 건축가 마누엘 마리아 스미스의 주관 아래 산 마메스는 3,500석 규모로 지어졌다. 산 마메스의 이름은 경기장을 건축할 때 근처에 위치한 ‘산 마메스 성당’에서 비롯됐다. 때문에 산 마메스는 ‘성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산 마메스의 역사적인 개장 경기는 당시 코파 델 레이 우승팀 라싱 클럽(현 레알 우니온)과 치렀는데, 전반전 5분 만에 라파엘 모레노 아란사디가 첫 득점을 성공시켰다. 라파엘 모레노는 160cm도 안 되는 작은 키 때문에 ‘피치치(작은 오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데, 이는 현재 스페인 언론 ‘마르카’에서 프리메라리가 득점왕에게 수여하는 ‘피치치 상’ 덕분이기도 하다. ‘마르카’는 피치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52~1953시즌부터 자신들이 주는 상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산 마메스는 1953년 증축공사를 통해 4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으로 거듭났다. 이때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경기장 지붕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1982 FIFA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대회에 쓰일 경기장으로도 지정돼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쳤다. 1997년에는 UEFA 안전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그라운드와 관중석 사이의 펜스를 제거했다. 이 과정에서 관중석은 39,750석으로 줄어들었다.
 
2012~2013시즌을 마지막으로 산 마메스는 100년의 역사를 뒤로했다. 산 마메스에서 펼쳐진 빌바오의 마지막 경기는 바스크 선수들로 구성된 ‘비스카이 선수들’과 맞대결이었다. 비스카이 선수들 소속으로 뛴 알라인 아로요가 산 마메스에서 마지막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빌바오는 2013~2014시즌부터 ‘누에보 에스타디오 산 마메스’를 사용하고 있다.
 
Tip - 산 마메스의 이름이 된 ‘산 마메스 성당’은 기독교의 ‘마메스 성인(San Mamés, 259~275)’에게서 온 명칭이다. 마메스 성인은 기독교가 탄압받던 시절 선교를 펼치다 로마군에 잡혀 사자우리에 던져지고도 신의 가호를 받아 살아남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빌바오의 애칭은 ‘사자군단(Los Leones)’인데, 산 마메스 경기장을 사자우리에,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사자에 비유해 만들어진 것이다. 빌바오에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몸담으며 118골을 기록한 페르난도 요렌테의 별명은 ‘사자왕(El Rey León)’이었다.
 


스타디오 델레 알피(Stadio delle Alpi)-유벤투스, 토리노FC
 
스타디오 델레 알피는 짧은 기간 모습을 보이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만들어진지 20년도 안 돼서 철거된 델레 알피는 토리노의 두 팀 유벤투스와 토리노FC가 16년 동안 홈 경기장으로 사용했다.
 
이전까지 양 팀은 ‘스타디오 올림피코 그란데 토리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올림피코 그란데의 처음 명칭은 ‘베니토 무솔리니’였고 유벤투스의 홈으로 쓰일 때 ‘스타디오 무니시팔레’, 토리노의 홈일 때 ‘스타디오 코무날레’로 불렸다. 그러다 대규모 공사를 위해 1990년 문을 닫았고 유벤투스와 토리노는 근방에 신축된 델레 알피로 옮겨갔다.
 
스타디오 델레 알피는 ‘알프스 경기장’이라는 뜻이다. 토리노가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탓에 알프스 산맥과 인접해있기 때문이다. 델레 알피는 이탈리아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1990년 건축됐다. 델레 알피의 관중석에는 69,000명이 들어설 수 있었다.
 
유벤투스는 델레 알피로 온 이후 전성기를 맞이했다. 열여섯 시즌 간 한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17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후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며 두 번의 리그 우승이 취소되기는 했지만 유벤투스에게 델레 알피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토리노 역시 같은 기간에 우승한 경험이 있다. 1976년 세리에A 정상에 오른 다음 한동안 우승이 없던 토리노는 1992~1993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컵을 든다. 물론 좋지 않은 기억도 존재한다. 2003년 토리노와 AC밀란 팬들의 충돌로 토리노에게 5경기 동안 델레 알피 이용 금지 징계가 내려진 적도 있다.
 
델레 알피는 2006년 여름 유벤투스의 강등과 동시에 문을 닫았다. 유벤투스와 토리노는 공사가 끝난 올림피코 그란데로 돌아가게 됐다. 그리고 2008년 2월 델레 알피는 새로운 경기장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철거됐다.
 
유벤투스는 2009년 델레 알피가 철거된 부지에 새 경기장을 짓기 시작했고, 2011년 완공 후 ‘유벤투스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을 붙여 2011~2012시즌부터 사용했다. 그렇게 유벤투스는 1958년부터 이어진 토리노와의 오랜 동거 생활을 끝냈다.
 
Tip – 영광의 순간들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델레 알피는 팬들에게 사랑받는 구장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1993년 육상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육상트랙을 설치해 관중석에서 경기를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라운드와 관중석의 거리가 162m나 차이나는 곳도 있었다하니 팬들이 불만을 가질 만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 2003년 리모델링을 계획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현재 유벤투스의 경기장인 유벤투스 스타디움은 육상트랙이 없는 축구 전용구장으로 지어졌다.
 


vgb0306@xportsnews.com / 사진 ⓒ AFPBBNews=News1

신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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