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현정 기자] “주어진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걸 알았을 때 아버지는 이미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소중한 그 이름 가족. 늘 옆에 있으면서도 소중함을 잊기 쉬운 존재다. 어리석게도 가족이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가족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그런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김광탁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간암 말기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제6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으로 故 차범석 선생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공연 중이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사람 냄새나는 연극이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관객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단순한 무대 세트를 채워나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정겹고 소소하고 따뜻하다.
무뚝뚝하지만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간직한 남편, 그리고 그렇게 싫은 양반이 막상 간다는 사실에 서러워하는 아내 홍매, 아버지의 진심을 뒤늦게 깨닫고 마당에서 마지막 추억을 함께하는 아들이 큰 축을 이룬다. 이들의 대화와 독백, 방백이 어우러져 먹먹함을 낳는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 아들에게 “나 좀 살려주라”라며 흐느낀다. 언제나 강한 존재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늙고 나약해진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면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함이 묻어난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그 누구의 입장에서 봐도 공감할 만하다.
생사를 앞둔 아버지와 병간호하는 가족의 이야기에 치중하면 극이 무겁게만 흘러갔을 터지만 곳곳에 웃음코드를 배치해 균형을 맞춘다. 그러나 그 웃음마저도 가슴을 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작품의 감동을 배가한다. 연극계의 기둥 신구와 손숙은 50년 연기 인생의 내공을 발휘한다. 삶의 고뇌와 아픔을 남들에 표현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아버지, 겉은 괴팍하지만 속은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를 먹먹하게 소화한다.
아픈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아내 홍매를 연기한 손숙 역시 명품 연기로 감동을 준다. 남편과 티격태격하지만 누구보다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슬퍼하는 홍매와 하나 된 그의 연기는 관객의 눈시울을 붉힌다.
초연부터 함께한 아들 역의 정승길도 현실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차남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홀대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죽어가는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는 아들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주책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며느리 캐릭터를 맡은 서은경과 정 많은 이웃집 아저씨 정씨 역을 맡은 최명경도 감초 노릇을 톡톡히 한다.
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다. 100분. 만 7세 이상.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 신시컴퍼니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