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도쿄(일본), 이종서 기자] 박지성의 ‘산책 세리머니’가 떠올랐던 마무리였다.
한국야구대표팀은 19일 일본 도쿄 도쿄돔에서 펼친 일본과의 '2015 WBSC 프리미어12' 준결승 맞대결에서 4-3으로 승리했다. 8회까지 0-3으로 뒤지다가 9회에 4점을 내고 뒤집은 대역전승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승리 순간을 요란하지 않게 즐겼다.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환하게 웃은 정도였다. 한일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리였지만, 오히려 승리 세리머니는 가장 간결했다.
이 장면을 본 많은 팬들이 2010년 박지성의 ‘산책 세리머니’를 떠올렸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직전 일본은 한국을 초청해 평가전을 치렀다. 당시 경기 전까지 이런저런 논란이 많았다. 가장 신경쓰이고 까다로운 한일전을 큰 대회인 월드컵 본선 직전에 치렀기 때문이다. 이는 선수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비난이 나왔다. 게다가 일본이 한국을 초청하는 모양새는 ‘안방에서 한국을 이기는 것으로 성대한 출정식을 하고 남아공으로 떠나겠다’는 속셈이 들여다 보였기에 더 찜찜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당시 한일전은 ‘한국의 출정식을 일본이 열어준’ 꼴이 됐다. 한국은 2-0으로 일본을 격파했다. 더구나 전반 5분 만에 결승골을 터뜨린 박지성(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경기가 열린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마치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는 듯 태연한 표정의 ‘산책 세리머니’였고, 이 세리머니는 그야말로 일본의 자존심에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팬들은 박지성의 세리머니에 열광했다.
이번 프리미어12 경기는 일본의 ‘사전 꼼수 작업’이 훨씬 더 심했다. 자국의 우승을 기정사실화하고 한국과의 준결승전이 열리기도 전에 결승전 선발을 예고했다. 경기 일정까지 뜯어고쳐서 준결승을 하루 앞당겼고, 일본이 결승에 갈 경우 휴식일을 확보하게 만들었다. 한국과의 준결승에는 일본 심판을 배정하는 상식 파괴 진행까지 감행했다.
한국이 극적으로 일본을 꺾으면서, 이번 대회는 일본이 온갖 꼼수까지 동원해 가면서 정성들여 차린 잔칫상을 한국이 맛있게 먹어치운 꼴이 됐다. 준결승전 8회까지 패배를 예감했던 한국팬들은 극적인 역전승에 ‘이보다 통쾌할 순 없다’며 열광했다. 만일 한국 선수단이 일본 앞에서 보란 듯이 요란한 세리머니를 했어도 한국팬 모두가 함께 응원했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수단은 간결한 자축 세리머니만 했다. ‘일본에, 9회 단 한 이닝 만에, 그것도 3점 차를 단숨에 뒤집어서 역전승 한 것은 별 것 아니다’는 듯한 몸짓이었다.
일본의 고쿠보 감독은 선발 오타니 쇼헤이를 빨리 내린 것, 이해하기 어려운 불펜 운용을 한 것에 대해 엄청난 비난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김인식 한국대표팀 감독은 경기 후 “당신이 일본 감독이라면 오타니를 교체했겠는가”라는 다소 악의적인 질문에도 “그건 그 팀 감독만 알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답할 문제가 아니다”고 점잖게 답했다.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한국의 완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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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서 기자 bellstop@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