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1998년 데뷔 후 1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룹 핑클의 막내로 무대 위에서 청순한 매력을 뽐내던 성유리는 이제 배우라는 타이틀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대중과 마주하고 있다.
이제는 가수보다 배우로 지내온 날들이 훨씬 더 오래된 그다. 이전의 앳된 미모는 변함없지만, 그 사이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들로 내면을 훨씬 더 꽉 채웠고, 그 깊이 역시 한 뼘을 더했다.
성유리가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감독 전윤수)로 돌아왔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는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각양각색 사람들에게 찾아온 일상의 가장 빛나는 고백의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성유리를 비롯해 김성균, 김영철, 이계인, 지진희, 아역배우 곽지혜 등이 출연한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 속에서 성유리는 '사랑해' 편에 출연해 김성균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맡은 역할은 완벽한 외모에 반비례하는 까칠한 여배우 서정. 태영(김성균 분)을 향한 진심을 깨달아 가는 과정 속에서의 감정 연기와 막장 드라마 주연으로 짙은 메이크업과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선보이는 등 이전에 볼 수 없던 모습들이 눈에 띈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성유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저 때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라며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는 성유리는 "영화가 각각의 에피소드로 돼 있지 않나. 김영철, 이계인 선생님의 복싱 장면 촬영은 응원을 간 적이 있었는데, 지진희 선배님 촬영장은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어서 정말 궁금했다. 제가 나오는 신에도 물론 애정이 가긴 하더라"며 웃음을 보였다.
본격적인 멜로 연기에 도전하게 된 만큼, 상대 배우에 대한 궁금증도 컸던 그다. "처음에 (김)성균 오빠가 확정되기 전까지 수많은 배우들을 상상해봤었다"고 말한 성유리는 "성균 오빠가 캐스팅 됐다고 했을 때 의외의 조합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처음 리딩을 같이 했는데 정말 느낌이 좋더라.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성균 오빠 자체가 감수성이 풍부한 분이라는 것이 느껴져서, 작품도 감성적으로 잘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때로는 까칠하고 도도하고, 또 고혹적이면서도 감정이 무르익어가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고민하고 생각했던 만큼 얻은 재미와 느낀 점들 역시 많았다.
성유리는 "막장 연기를 할 때는 재미있었다"면서 "코미디 같은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어서 재밌게 찍었었다. 또 태영과의 멜로라인에서 서정이가 갑자기 진지하거나 힘이 빠진 것처럼 연기할 때는 감독님이 좀 더 일상적인 말투로 해줄 것을 요구하시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뭐가 다른 거지' 고민이 생기더라. 그런 중에 실제 성균 오빠와 호흡을 맞추면 정말 일상적으로, 평소 말투처럼 연기를 하시니까 저 역시 감독님이 원하는 자연스러운 말투가 나오게 됐다.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을 이었다.
서서히 자신의 감정을 꺼내가는 서정과 달리 실제의 성유리는 표현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평소에는 말도 없고, 차에 있을 때는 묵언수행하는 것처럼 감정표현에 서투른 편인 것 같다. 물론 일하면서는 서정이처럼 까칠해질 때가 있긴 하지만, 그건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때로는 서정이보다 더한 분노가 생길 때도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했다가는 지금의 저는 이 자리에 없지 않겠느냐"며 유쾌함을 덧붙인 솔직한 생각을 꺼내놓아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영화가 표현하지 못한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만큼, 성유리 역시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부모님, 친구들을 비롯해 자신의 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고 또 떠올렸다.
2002년 드라마 '나쁜 여자들'로 연기에 데뷔한 성유리는 지금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 아이돌 출신 연기자의 시초 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유리는 "요즘 드라마를 보다가 '저 친구 참 연기를 잘한다' 싶어서 찾아보면 아이돌이더라. '어떻게 저렇게 잘 하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고 놀라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과거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새롭게 배움을 얻은 점도 털어놓았다.
그는 "제가 어렸을 때는 뚜렷한 주관이 없이 시키니까 열심히 하는, 시험공부 하듯이 했던 면도 있었던 것 같다. 감정적인 부분보다는 발성이나 발음이 약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는 내려놓을 수 있는 장면들은 내려놓고, 연기라는 것에 있어서 스킬만큼이나 감정과 교감이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는 성유리에게는 특별한 작품이었다.
이런 확고한 생각이 정립되기까지, 성유리에게도 수많은 고민이 시간이 자리했다. 연기를 시작하고 얻은 많은 기회들 속에서 자신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노력해서 되는 일일까',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걸까'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는 순간순간 찾아왔다. 성유리는 "연기를 하는 것이 즐겁지 않고 괴롭고 힘든 순간에 그 때마다 정말 하고 싶은 작품들이 생기는 거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하지 않나. 지금 이렇게 꽤 긴 시간이 지났는데, 이렇게 작품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늘 감사하면서해야겠다고 되새긴다"고 전했다.
성유리는 연기를 '어렵지만, 할수록 매력이 있다'고 정의했다. 그는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다음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데 또 어렵고 어렵다. 선생님들께 여쭤보면 '우리도 늘 어렵다'면서 격려해주시더라. 사실 평소의 저의 일상은 긴장이 풀려있는 릴랙스한 상태고, 굉장히 루즈하다고 느껴질 만큼 단조롭다. 그런데 연기할 때만큼은 항상 긴장해야 하고, 끊임없이 제 능력치를 뛰어넘어야 한다. 평소에는 휴대전화 번호도 잘 못 외우지만, 연기를 할 때는 긴 대사도, 급하게 나온 쪽대본도 다 외우게 된다"고 시원하게 웃으며 "나의 한계를 극복하는 재미와 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멜로를 한 만큼, 그는 차기작에서는 좀 더 강렬한 멜로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악역, 로맨틱코미디 등 다양한 캐릭터 역시 꼭 도전해보고 싶은 부분이다.
조금은 느리고 더딜지라도, 연기를 시작한 후 13년이 가까운 시간 속에서 성유리는 부딪힘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렇게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조용한 발걸음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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