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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일의 변화, 슈틸리케는 아직 배가 고프다

기사입력 2015.10.13 12:53 / 기사수정 2015.10.13 16:34

김형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형민 기자]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이 온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정확하게는 365일을 넘겨서 408일이다. 숨가쁘게 지나간 날들에는 많은 변화도 있었다. 지금까지 실패보다는 성공의 기억들이 더 많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 후 새롭게 단장한 대표팀은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 8월 동아시안컵에서 우승을 거두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도 남겼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직도 대표팀을 바꾸는 고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지금도 배가 고프다. 처음에 대표팀을 이끄는 일을 '집을 짓는 일'에 비유하면서 차근차근 기둥부터 세우고 지붕을 올리는 작업을 해나가야 된다고 말했던 그는 지금까지의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더욱 발전된 한국 대표팀 공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수비부터 공격까지, 슈틸리케의 공사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을 만들어가는 한명의 건축가였다. 그는 지난해 9월 8일 처음 지휘봉을 잡고 대표팀을 이끄는 바에 대해서 집은 짓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집을 짓든지 지붕부터 짓는 법이 없다. 기초를 탄탄히 지은 후에 지붕을 세운다"고 말하면서 공격보다 수비부터 손을 봤고 이어 "대표팀 선발 명단을 보면 수비에 중점을 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대표팀 수비를 믿고 전개되는 플레이에 따라 판단해 경기를 풀어갈 생각"이라며 자신의 구상을 밝혔다.

이러한 말들이 특별해 보였던 이유는 공격수 부족에 오랫동안 허덕였던 한국 축구의 사정에 있었다. 보는 사람마다 골잡이가 없다는 말들이 많았다. 많은 이들은 골을 넣고 승리할 수 있는 대표팀을 원했지만 생각을 달리 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이를 위해서도 공격이 아닌 수비라인부터 틀을 잡아야 된다고 강조했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생각대로 움직였다. 초기 4개월동안 수비라인을 세우는 데 힘을 기울인 뒤 1월 호주 아시안컵에 나섰다. 여기에서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일명 '늪 축구'라는 견고한 수비력을 보이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결승전에서 호주에게 내준 골이 유일한 실점이었다. 매경기에서 한국이 승리하는 조건에는 단 한 골이면 충분했다. 조별리그 3경기를 무실점 3전 전승으로 통과했고 8강전에서도 연장전까지 가는 120분동안 한 골도 내주지 않고 2-0 승리를 거머쥐었다. 0의 행진은 4강전까지 이어졌다. 이라크를 상대로 나온 스코어도 2-0이었다. 작년 브라질월드컵 이후 한국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했던 수비가 강력한 무기로 탈바꿈되는 순간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반복해서 강조했던 빌드업이 이뤄질 수비 조직에 대한 감을 잡자마자 미드필더와 공격진을 갖춰나갔다. 미드필더는 많은 조합들을 매경기 실험했다. 기성용을 중심으로 그와 함께 발을 맞출 선수들이 바뀌었고 기성용의 전진배치 여부와 그 효과들도 확인했다.

8월 동아시안컵에서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 없이 나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새롭고 젊은 선수들을 얻으면서 활용할 수 있는 선수층은 두터워졌다. 풍부해진 자원들을 바탕으로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의 틀을 완성하는 데 이르렀다.

현재 한국은 4-1-4-1과 4-2-3-1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단계에 올랐다. 중원에서 기성용이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에 따라 달리 경기를 운영할 수 있는 유연성이 생겼고 정우영-권창훈-기성용으로 이어지는 중원 삼각편대를 발견, 대표팀의 심장으로 만들었다. 공격쪽은 부상이 있어 소집되지 않았지만 슈틸리케호에서 중요한 인물로 통하는 이정협을 비롯해 최근 석현준까지 맹활약해주면서 대표팀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자신감이 생긴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쿠웨이트 원정길에 오르기 전 "대표팀의 틀이 완성됐다"고 선언한 바도 있다.



59명이 왔다간 대표팀, 최다는 김승규

대표팀에 대한 공사가 계속됐던 탓에 대표팀에는 많은 선수들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매번 소집때마다 명단에 적힌 이름들이 바뀌었다. 일각에서는 태극마크에 대한 무게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최상의 선수 구성을 찾고 대표팀내 선수들의 운영 폭을 넓히는 데 중점을 맞춰 슈틸리케호는 움직였다.

그 결과 최소 한번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은 59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 최다 소집 기록을 세운 이는 수문장 김승규다. 김승규는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 초기부터 계속해서 대표팀에 발탁됐다. 중간에는 주전 골키퍼를 둔 경쟁을 비롯한 여러 사정으로 인해 넘버원과 넘버투를 오가면서 다른 행보를 보여준 적도 있었지만 꾸준하게 자신의 선방 능력을 보여주면서 슈틸리케 감독이 믿고 부르는 대표 골키퍼로 자리를 잡았다.

이중에는 K리그에서 뛰다가 슈틸리케호에 승선한 이들이 29명이었다. 대표팀에 K리거들이 늘어나고 중심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슈틸리케 감독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여기에는 특별한 배경도 있었다. 이전 감독들과 확실히 달랐던 점은 슈틸리케 감독의 K리그 탐방이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을 돌았다. K리그 경기가 있는 날에는 경기장에 가서 직접 선수들을 지켜보고 나중에 대표팀 명단을 발표할 때 참고했다.



흙속의 진주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했다. 이정협(상주)과 이재성(전북), 권창훈(수원) 등은 모두 그가 발굴해낸 보석들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상주에 직접 가서 다섯번 보고 뽑았다고 한 이정협은 1월 아시안컵과 각종 월드컵 예선, A매치를 통해 이제는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골잡이로 자리를 잡았고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선물하면서 잠재력을 인정 받은 이재성과 K리그에서 반짝이는 활약을 보인 권창훈 등은 슈틸리케의 손을 거쳐 완성형에 가까운 선수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이러한 확실한 내용물들이 나오면서 슈틸리케 감독이 호명하는 명단에 대한 의구심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대표팀 명단이 발표되면 축구팬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큼 슈틸리케 감독이 온 이후 대표팀의 안과 밖으로 신뢰와 믿음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슈틸리케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슈틸리케 감독이 오면서 아시아의 호랑이도 다시 깨어났다. 한국은 아시아 축구의 대표격으로 불렸지만 최근 5-6년 사이 이러한 미명에서 멀어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시안컵에서 오랫동안 우승을 거머쥐지 못했고 차츰 아시아 축구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월드컵 예선을 어렵게 치뤄야 했다.

치욕적인 기억들도 있다. 2003년 오만 쇼크, 2004년 베트남-몰디브 충격, 2011년 삿포로와 베이루트 참사처럼 한국은 간혹가다 아시아에서 발목이 잡히곤 했다. 더구나 아시안컵에서는 우승은 커녕 1988년 대회 이후 결승에도 올라가지 못하면서 아시아 최강을 주장하기 부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슈틸리케 감독과 손을 잡은 호랑이는 다시 아시아의 맹주로 올라서고 있다. 지난 쿠웨이트 원정경기까지 슈틸리케 감독의 아시아 상대 성적은 13승3무2패로 상당한 우위를 보였다. 월드컵 예선에서는 4연승으로 일찌감치 다음 라운드 진출을 예약해뒀고 2연속 중동 원정승이라는 새로운 기록도 남겼다.

대표팀은 분명하게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구석이 있다. 바로 마무리다. 대표팀의 틀과 체계가 갖춰지면서 한국은 최근 A매치 경기들에서 점유율을 높이 가져가면서 경기를 주도해 왔다. 자연스럽게 많은 득점 찬스가 났던 것에 비해서 골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슈틸리케 감독의 생각이다.

쿠웨이트 원정에서 귀중한 승리를 거두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어지는 자메이카와의 평가전에 이러한 부분들을 점검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우선은 점유율이 많은 가운데서 우리가 계속해서 위협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수비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 수비가 안정적인 이유는 지금 공격수들이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좋은 활약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면서 수비보다는 공격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자메이카전은 슈틸리케호가 가는 여정의 또다른 시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기에는 슈틸리케 감독의 취임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함께 하며 특별한 의미도 더한다.

khm193@xportsnews.com / 사진=울리 슈틸리케 ⓒ 협회 제공,  엑스포츠뉴스DB

김형민 기자 sport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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